때 묻지 않은 점이 좋긴 하지만
첫 휴가라고 환대해주며 엊저녁엔 모처럼 가락시장까지 다녀오며 녀석이 좋아하는 생선회를 사다가 조촐한 파티로 기를 살려주었든 막내였다.
아침 식사 후 어디서 걸려온 휴대폰 전화에 굉장히 공손하게 응대를 하더니 무엇인가 받아 적으며 메모를 하더니 또 불러주어 알려주기까지 하고 있다.
아무래도 불러주는 내용이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와 은행 통장 번호 같아서 귀를 기울이고 들어 본다.
통화를 끝낸 후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컴퓨터 오락 게임인 삼국지 신판을 보내 준다 해서 자신의 은행계좌번호를 알려준 것이란다.
옆에 있던 아내가 금세 열이 받친 표정으로 방금 통화한 전화번호를 빼앗아 전화를 걸어 담당자를 바꾸라고 한다. 담당자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서 이야기의 전말을 들어주면서도 이따금 깐죽거리는 말을 하여 아내의 화를 은근히 부추기는지 아내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언성을 높인 전화 통화를 서슴없이 하고 있다.
나중에는 물건을 수취한다는 장본인이 군에서 휴가 나온 군인으로 불러준 은행계좌도 돈이 입금되어 있지 않다며 그대로 취소시키라는 이야기로 매듭지었다.
잠시 후 그래도 못 미더워서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하니 취소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끝을 내었다.
-너는 약삭빠르고 세상 물정도 많이 알고 있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맹탕이구나!
뒤처리가 모두 끝나고 난 후, 아내가 막내를 보며 말한다.
-결코 모든 것을 무료로 서비스한다는 광고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일이 거니와, 결국 은행계좌를 물어봐 왔다는 자체는 돈을 빼어 나가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냐?
-그런 곳에다 자신의 모든 금융 정보를 알려준다는 것은, 어느 날 스스로를 느닷없는 세상살이에서 제한 받는 금융 불량자로 만들어 주어 - 하루아침에 블랙리스트에 들게 하는 일이 아니냐?
이런 물음에 막내는,
-그런 거 정말 몰랐어요.
하며 머쓱한 표정으로 쑥스러워 한다.
황당한 표정의 막내 모습을 보니 녀석이 아직까지 때 묻지 않은 순진하고 순수한 아이로 우리 앞에 서있음이 반가운 것이다. 비록 아침 시간 30분 정도를 언성 높이는 아내의 모습을 옆에서 응원하고 거들면서도 쓸데없는(?) 시간을 가졌던 게 아닐까?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결코 그렇지 만은 않은 것이 따스한 울타리 닮은 가족이란 바람직한 분위기가 우리들 모두 위에 남겨진 결과가 새삼 기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