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잘못 보다는 타인의 잘못이 먼저 보이는
이번 항차 나와 같이 포항에서 승선한 세 사람의 직장인 갑판장, 조기장, 조리장이 새로이 멤버로 참석한 선내 안전품질회의를 점심식사 후 개최했다.
회의를 주재하며 느낀 사항은 참석자들이 각자 자신이 관장하고 있는 일에 대해 타 부서의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있지 않거나 모르고 있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 모두가 굉장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제 모처럼 브리지에 올라가 둘러보다가 화재탐지 경보기의 경보음 발사 장치를 꺼 놓은 것을 보고 왜 그렇게 해두었냐고 옆에 있던 일항사에게 물으니 시도 때도 없이 너무 자주 우는 것 같아 시끄럽다는 이유로 기관장이 OFF 시킨 상태로 유지하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항사의 전언을 들으니 그런 미봉책으로 어쩌자는 말인가? 하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든다.
-안품회의에서 바로 잡도록 이야기를 해야겠다.
라고 공언을 하며 그 자리를 지나쳤었다.
이제 예정했던 안품 회의를 시작하여 여러 가지의 안건을 치러낸 후, 어제 일항사의 앞에서 공언했던 그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현재 브리지 내 FIRE ALARM의 ALARM 스위치를 OFF 시킨 상태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그야말로 잘 작동하고 있는 기계를 도와줘서 그대로 작동이 원활히 유지되도록 합시다.
-용접과 같은 기관실내에서 화기나 가스가 유출될 수 있는 인위적인 작업을 할 때 가스로 인해 발생하게 되는 경보음을 막기 위해서는, 작업 전에 미리 브리지로 연락해서 그 부위의 센서를 차단시켜 경보음의 발생을 방지하고, 작업이 끝나면 즉시 연락하여 꺼줬던 스위치를 적극적으로 원상 복귀시켜 놓도록 합시다.
이야기를 끝낼 때까지 브리지의 경보음 스위치를 꺼 놓은 상태로 두도록 지시했다던 기관장은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있었다.
나 역시 누가 그렇게 지시해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언급은 하지 않고 단지 브리지에 있는 화재 탐지 경보기의 경보음 스위치는 항상 켜 둔 상태로 놔두고 사용하여 제대로 경보 작동을 하는 경보기의 센서를 고마워하는 풍토를 이룰 수 있도록 하자며 말을 끝냈다.
나의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안건이 있다면 들어주겠다며 발언을 청하니 일기사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나선다.
일기사의 발언은 해치 폰툰 오픈을 위한 HYDRAULIC PUMP 작동시킬 때, 선수 앞쪽으로 나가도록 이어진 파이프의 중간 밸브를 꼭 잠가서 기름이 선외로 새어 나가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듣기에 따라서는 그 일을 갑판부에서 잘 안 하고 있어서 지난번의 기름이 없어진 일이 발생했다는 식으로 오해하기 좋은 톤으로 들리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 일항사는 자신의 책임 아래 그 밸브를 조작하는데 그렇게 허술하게 조작한 적이 없다며 좀은 섭섭한 표정으로 말을 자르고 나선다.
일기사가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만약 그때 기름이 진짜로 새어나가서 없어졌다면 어디로 새어나갔나를 확인했느냐고 묻는다.
기관실 쪽은 이상 없었다고 하면서 말했는데, 일항사 역시 갑판 위로 새어나간 일은 발견치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일기사의 말처럼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기계는 거짓말을 안 한다는 명제에 대입하여 이 상황을 판단해 보려 한다면 대관절 그 기름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해서일까? 아니면 그 기계의 어디가 고장 나서 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 상황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의 잘못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생각은 그 현상의 이유를 잘못 판단하여 발생한 일이라고 느끼지만, 기름이 새어 나간다- 즉 지구 환경오염이라는- 크나큰 일에 직결되는 사항이므로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세히 살펴주어야 할 일이다.
양측 모두 상대방이 지적한 이유를 아무런 선입견 없이 자신들의 입장으로 다시 한번 살펴야 할 것이라 결론을 이야기하면서 다음 사항으로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