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박 속 기다림이 마지막 되는 새벽 운동
드디어 내일 0415시에 도선사가 헬리콥터로 승선할 것이란 최종 예정을 통보해주는 팩스가 대리점으로부터 날아왔다.
지난달 25일 밤에 도착했으니 자그마치 열흘이란 기간을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며 그것도 한 이틀을 빼고는 계속 바람이 20 knots를 오르내리는 거친 바람이 일으킨 파도 밭 속에서 긴장한 신경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으니 힘들었던 대기 기간이었다.
매일 새벽 깨어나기는 비슷한 시간에 하지만 그때마다 조금만 더 누워있다가 하는 게으름을 부추기는 마음 때문에 미적거리는 시간을 보내다가 갑판으로 나가곤 하는 바람에 시간이 좀 늦춰진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오늘 새벽도 영 나가기가 싫어 꾸물대다가 나보다도 더 열심히 새벽 운동을 하는 갑판부의 B갑판장인 H 씨가 먼저 나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커튼을 걷고 창 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아이 좋아라! 오늘은 안 나가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이 반짝 드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그런 식으로 자꾸 빼먹으려고 하면 안 되지 열심히 운동은 계속해서 건강을 좋게 유지해야지 하는 염려의 반동도 고개를 든다.
우선 브리지에 올라가 어느 정도의 비가 오는지 알아보고 결정하자 싶어 브리지로 오른다.
나트륨 투광등의 비치는 빛살이 좀 독특해 보인다. 불 빛 찾아 모여드는 하루살이 떼 모양으로, 가는 빗방울이 어둠을 밝히는 투광등에 의해 반짝이며 반사되어 군무를 추는 모습이다. 비가 아직도 제법 오고 있는 모양이다.
직접 나가서 확인도 할 겸 어지간하면 브리지의 윙 사이드를 도는 약식 통로를 걷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하리라 마음먹고 나가니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별로 센 것 같지가 않다.
투광등의 불빛에 비치는 빗살을 향해 손을 내밀어 그 빗물을 받아보려 하니 불빛에 비쳐서 크고 많아 보이는 것이지, 손등에 감각도 안 끼치는 는개에 동반한 작은 물방울이 휘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갑판으로 내려가 정식 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아래로 내려간다.
조심스레 오른쪽으로 후부 갑판을 돌아 선수에 갔다 오는 한 바퀴를 채워왔는데 평소에는 빠지는 일이 없는 운동 하러 나온 부지런한 H 씨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아침에 내리는 빗발이 그를 젖히고 나 혼자 운동을 계속하게 만들어 준 모양이다.
나도 처음에는 비가 온다고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며 새벽 운동에서 빗겨서려던 태도였는데, 아마 H씨도 그런 유혹에 지는 때문에 안 나온 게 아닐까? 내 편한대로 갑판장의 운동 안 함에 우쭐해보는 이 심보는 왜 그런 걸까?
당분간 정박 중 새벽 운동으론 마지막이 될 운동을 열심히 하며 갑판을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