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운동 중에 만난 어느 갈매기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새벽이다.
구름에 가려가며 어스름 빛을 발하는 음력 17일 달밤 속의 갑판 가장자리 길을 따라 조심스레 그러나 열심히 걷고 있는 새벽 운동 중이다.
저만치 몇 발짝 앞에 희끗거리는 모습의 물건이 보이고 있다. 마치 마구 풀어헤쳐서 한데 엉키게 만든 털실 뭉텅이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 물건은 그대로 달려와서 발길로 힘껏 걷어 차도 될 것 같은 유혹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무조건 발길질을 하기에는 어딘가 마음에 와 닿는 섬찍 함이 있어 살짝 걷어차기를 포기하며 가까이 다가선다.
그렇게 바로 눈앞에 까지 접근하여 확인하니, 자기가 있는 주위에 똥을 싸놓아 희끗거리게 해놓은 속에서 날개 깃털 안쪽으로 완전히 목을 파묻은 채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한 마리의 갈매기 모습이다. 내 맘대로 뛰어 와 힘껏 발길질을 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화들짝 놀라려는 가슴을 진정시킨다.
하나 녀석은 어떤 갈매기의 꿈속에 파묻혀 지금 자기 옆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니 벌어질 뻔했는지도 모른 채, 미동도 없이 선채로 깊은 잠에 빠져 있다.
한 바퀴 도는 데 약 8분이 걸리는 갑판 돌이를 다시 해서, 또 한 바퀴 되돌아올 때 까지도, 아니지 오늘따라, 나 말고도 갑판에 나와서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는(운동하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으니, 8분이 안 걸린 인기척이 녀석의 주위를 맴돌았을 텐데, 여전히 같은 자세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 바퀴를 더 돌고 이제 어둠도 어느 정도 가셔지기 시작할 무렵 아무래도 녀석이 그 자리를 뜨게 만드는 게 옳을 것 같아 가까이 접근하면서 손뼉을 치고 흥흥 콧소리를 일부러 불어내며 인기척을 내니 녀석은 파묻었던 목을 들어내며 힐끗 쳐다보고는 얼른 난간 너머, 아직도 어둠이 남아있는 바다 위로 훌쩍 날아가 버린다.
자신의 배설물로 허옇게 되어있던 갑판 귀퉁이에서 단잠에 빠져있던 그 녀석은 어떤 꿈을 꾸며 잠들어 있었을까? 원도 한도 없이 고기를 많이 잡아 배를 채우는 꿈을 꾸었을까? 아니면 좋은 배필 만나 시집가고 장가가는 꿈을 꾸었을까?
대양에서 갈매기 녀석들이 배를 따라다니며 보여주는 모습은, 배 옆을 쉼 없이 날면서 배와 같이 항해를 하는 것이고, 며칠을 그리 지내다가 어느 날 그냥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는 습성을 보여주곤 한다.
그렇게 배 옆을 날다가 선수의 스템에 의해 갈라지는 파도에 놀란 날치 떼라도 뛰어오르면 쏜살같이 물로 다이빙하여 잠시 후 입에 퍼덕이는 고기를 물고 나타나는 모습을 보인다면 운수 대통한 것으로 여겨지는 녀석들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기에 삶의 목적이 그저 고기를 잡는 일로 하늘을 날다가 고기를 보면 물로 뛰어드는 것뿐이란 생각으로 그들을 보게 되니, 잠깐 그들에게도 삶의 애환과 목적이 있을까? 의문을 가져 본 것이다.
어쨌거나, 그것은 사람들이 제 형편에 빗대어 제멋대로 생각하는 다 부질없는 상상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