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를 자주 다니다 보니, 어느새 우리들 사이엔 유명한 곳이 되어 버린 조마드 수로 입구를 약 30 마일 정도 남겨두고 있는 오늘 형편은 무척이나 무더운 기온을 가지고 다가서는 열대 해역의 행세를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런데 발전기의 LO COOLING SYSTEM에 온도가 상승하여 에어컨디셔너 마저 정지시켜준 후 수리를 해야겠다는 연락이 왔다.
안된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일방적인 통고이지만 어찌하겠는가 알았다고 이야기할 밖에. 전화를 받는 2 항사가,
-그건 제가 알아서 헐게요.
하는 말을 하는 걸 보니 아마도 육지 하고는 얼마나 떨어져 있나 물어오는 모양이다.
-네가 어떻게 알아서 한단 말이야? 그들이 육지와의 거리가 얼마 정도 떨어져 있다고 깨닫고 있는 것하고 네가 일방적으로 알아서 한다고 하는 것 하고는, 나중에 무슨 일이 발생해도 너만 책임지는 이야기이지, 그들에게는 아무런 귀책사유가 없을 수도 있게 되는 거야.
안 그래도 덥고 짜증이 풀풀 피어나고 있던 중인데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2 항사를 보니 ‘뭐 저런 식으로 말을 해’ 하는 생각에 짜증부터 나기에 괜히 큰소리로 나무람부터 하며 나섰다.
좋은 분위기의 서로 믿고 돕는 분위기의 인화가 좋은 배 안의 분위기라면 그런 투로 이야기해줘도 얼마든지 서로가 이해하고 알아주는 일이지만, 지금 우리 배의 분위기로 봐서는 만약 잘못된 일이라도 생기면 꼬투리 잡힌 약점으로 꼼짝없이 당하는 일도 있을 수 있는 그런 삭막함이 느껴지는 분위기이다.
그러니 무언가 수리를 위해 피치 못 할 기관 정지 요청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들의 힘들게 수고함을 먼저 생각해주기보다는, 아니 그것도 못 해결해서 결국 배를 세워야 한단 말인가? 하는 비난하는 심정부터 떠오르는 형편이 새삼 신경질 나게 하는 거다.
1430분 엔진을 끄고 배를 세웠다. 조용한 날씨이건만 제자리에 서있는 우리를 골탕이라도 먹이려는지 파도는 자신과 배가 서로 직각이 되게 배를 돌려주더니 마구 롤링을 주면서 흔들어 준다.
수리에 예상되는 시간도 19시나 19시 반이 되어야 끝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며 수리에 들어가고 나머지 승조원들은 무더위가 찾아드는 선내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을 몰라하는 상태로 어서 수리가 끝나고 에어컨디셔너도 다시 가동되기를 그야말로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이번 올라가면서는 에어컨디셔너도 잘 돌아가 시원합니다,
하는 말에 덧붙여
-냉동고도 온도 유지 상태가 좋지요?
오늘 아침 과업 정렬 시 일항사가 두 번씩이나 에어컨디셔너가 잘 돌아간다고 칭찬하는 말에 보태어 조리장까지도 냉동고를 칭찬하게 만들어 주고 있어서,
-야! 그만 해 둬라. 삐 끼면 금방 나빠 진단 말이야.
하며 너무 칭찬의 입쌀에 오르면 삐딱이 나가는 징크스가 생기는 분위기를 떠올리며 말렸던 일이 벌써 말의 씨가 되어 찾아온 셈이다.
기관부의 책임자들이 이번 광양에 입항하면 모두 연가로 하선하게 되는 사람들이기에 그냥 무사히 입항해서 하선하기를 원하고 있기에 될수록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었다. 한데 이렇게 무더위에 꼼짝없이 노출시키게 만들어 놓아 도랑물 흐르듯 땀을 흘리게 하니 솟구치는 구시렁거리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온 배 안이 안 더운 곳이 없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이곳저곳의 좀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다 결국에는 브리지로 올라갔다.
역시 조마드의 출입구 앞이라 배들이 많이 지나다녀 흑구 두 개를 수직으로 게양하고 어두워질 때를 대비하여 NUC (NOT UNDER COMMAND, 운전 부자유 상태를 나타내도록 켜주는 수직선상 홍등 두 개)등도 켜주고 그나마 땡볕이 비치는 쪽에서 묻어오는 바람의 기미를 받아보려고 기를 쓰고 있는데, 19시로 이야기한 수리 완료될 예정 시간이 17시 35분으로 당겨지어 기관을 재가동시킨다.
3시간 5분을 정지하였지만, 처음부터 시간을 많이 잡아 놓고 보자는 의도에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다섯 시간 정도 예상했던 작업이 두 시간이 빨리 끝났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점을 노리고 했다면 그 역시 부풀려진 허위보고로 타인을 놀라고 걱정하게 만든 점을 유감으로 생각안 할 수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 점도 내가 그들을 불신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주어져 심지어는 미워하는 마음까지 들게 하는 걸 느끼며, 내가 왜 이래야 하는 거야? 하며 나 스스로를 새롭게 컨트롤하려는 딜레마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보기에 엔진을 다시 작동시키고 나서도 에어컨디셔너는 아직 재가동할 엄두를 안 내고 있다.
일단은 소기의 수리 목적이 끝나고 나니 좀 쉬느라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더위에 지쳐 있는 사람들의 생각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3 항사, 에어컨을 작동할 예정이니 선외로 통하는 모든 문들을 닫으라고 방송해라.
하는 지시를 3 항사에게 내리어 아직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빨리 알림을 주도록 독촉하는 분위기를 만들도록 한다.
3 항사가 즉시 마이크를 잡고 선내 방송을 하는데도 아직 에어컨디셔너는 더운 바람만 내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에어컨디셔너실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데 마침 3 기사가 바쁘게 기관실로부터 올라오고 있다.
-3 기사 에어컨. 작동하러 가는 거야?
하고 물으니
-예, 그렇습니다.
하는 대답이 즉시 되돌아온다.
방송을 안 했으면 아직도 그들은 그냥 쉬고 있어서 에어컨디셔너의 재가동을 생각치 않고 있었을 것이라는 지레짐작을 하고 있음은 내가 너무나 더위에 약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