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수전 다 겪은 둘째 이야기.
엘라 피츠제랄드의 Misty를 귀에 꽂고 월요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회의시간이 되지 않아서 지난주 업무 정리와 기획안을 정리해두고 잠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죠.
이번 주도 이래저래 바쁜 한 주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가한 것보다는 바쁜 것이 요즘엔 체질에 맞습니다. 그래야 돈 받는 재미가 있죠. ^^*
오늘이 성년의 날이라는 말이 나오네요. ^^ 벌써 11년 전에 成年을 맞이했다는 얘긴 데 지금까지 뭐했나 싶더라고요.
쩝.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헤헤.. 생각해보니 공부가 가장 쉬웠더라고요. 정말 후회만 마구 남네요.
그래도 이제는 그런 실수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한 번 실수는 몰라도 두 번, 세 번 되풀이하는 것은 바보니까요.
막내가 내일이면 나오네요. 힘들지 않은 생활이라고 해도 GOP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닐 텐데 늘 웃으며 집에 안부를 전하는 녀석이 기특하기만 합니다.
나오면 맛난 것에 술 한 잔 할 생각입니다. 헤헤 그래도 녀석과 한잔 할 수 있는 이가 저뿐이잖아요.
애궁 곧 회의가 시작됩니다. 아버지. 다시 소식 전할게요.
2001. 5. 14 사무실에서 둘째가.
며칠에 한 번씩, 들어오는 줄 모르는 사이에 슬쩍 밀려드는 밀물 마냥 슬그머니 다가와 있는 둘째의 세상살이 이야기가 들어있는 편지를 보며, 그 애와 나 사이에 놓여 있었던 간극을 가늠해 본다.
20여 년 전. 녀석의 취학통지서를 받으며 초등학교- 예전엔 국민학교라 했지만- 들어갈 때가 찾아왔을 때, 우리 부부는 사립 국민학교에 넣으려고 작정했었다.
첫째도 이미 다니고 있는 그 학교에 넣으려 했건만, 지원자가 많아 추첨에 참가했지만 떨어지게 되었다. 할 수 없이 동네에 있는 공립학교로 들어가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1학년 때 처음 만난 담임 선생님은, 교대 졸업 초임으로 미혼이었던 처녀 선생님으로 사명감까지 곁들인 교육열이 듬뿍한 분이었다.
그렇게 녀석은 자신을 알아주는 잘 만난 담임선생님 덕분에 신이 나는 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더 이상 사립학교에 보낼 생각은 접어두고 있었다.
헌데 2학년에 올라가서 새로 반편성을 하고 새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이제 신나는 학교 생활에 새로운 즐거움과 기쁨에 들떠 나서야 할 무렵. 녀석은 학교 생활이 시들해진 모습으로 기가 죽어가고 있었다.
내용을 살피고 유추해보니, 새로운 담임 선생님의 둘째를 대하는 태도가 아이의 기를 꺾으며 차별하는 경향이 심하다고 판단되는 점이 발견되었다.
담임 선생님이 그런 태도를 취하게 된 이유가 가당찮은 것이었으니, 학년초 학부형들의 참관 학습 중, 환경정리를 하였을 때, 교실 칠판 위쪽에 걸어 둔 태극기가 거꾸로 걸려있는 것을 둘째가 손을 들고 지적한 일이 있었 단다. 그 일로 같이 있던 학무보들에게 면목이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그 후부터 학습시간 중에 아이가 손을 들고 발표하는 일에 제동을 거는 식으로 기를 죽인 모양이다.
그런 담임 밑에서는 더 이상 있으면 있을수록 아이의 성장에 손해라는 판단을 하게 되어 결국 경제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즉시 사립학교로 보결 전학 가도록 조치하였다. 맹모삼천지교가 그런 거였는지....
인생에 있어서 공부의 길잡이가 시작될 중요한 시기에 둘째가 경험한 형편은 이렇듯 좀은 부정적인 상황에서 시작되어 그대로 굳어지며 이어져 온 것 같다.
그 후 녀석은 공부하기가 싫어서 엇나가며 은근히 속 썩이려 작정이라도 한 듯 삐뚜로 나가며 애를 먹이는 학창생활을 하면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였다.
결국 공부보다는 다른 것에 정신을 팔며 학교 생활을 끝냈으니, 당연히 떨어진 대학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는 동안 군에도 다녀왔고, 어느 날 스스로 다시 시작한 공부로 늦깎이 대학도 졸업하게 되었으니, 이제 와서 공부가 제일 쉬운 일이란 걸 깨달았다며 씁쓰레한 미소를 짓는 둘째의 심정을 색칠로 표현하려면 과연 어떤 색의 크레파스를 손에 들어야 할까?
고교 졸업 후 방황하는 시간이 좀 흘러갈 때, 그런 방향으로 계속 나가지 않고 마음을 다잡아서 지금의 형편에 들게 된 것도 본인이 노력한 끝이니 좋게 이야기해서 대기만성을 이루었다고 이야기하며, 덧없이 흘러간 시간의 아쉬움을 달래며, 오늘에 열심히 최선을 모두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