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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Sep 23. 2017

도미회

낚시터에 닻을 내렸네요.

호주 뉴캐슬에서 낚인 도미는 이 사진의 도미보다 훨씬더 분홍빛이 선명한 때깔을 가지고 모양도 좀더 유선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사진 인터넷에서)

 .

  때는 하루의 밝은 날이 거의 다 지나갈 무렵이고, 장소는 지구의 한 귀퉁이 호주의 동부 지역 뉴사우스 웨일스(NSW) 주의 한 항구인 뉴캐슬항 외항이다.

 날씨도 많이 수그러져 있고 조류도 그에 따라 흐름을 멈추고 있는지, 바다는 잔잔한 폼으로 자신 안에 품고 있는 닻을 내려놓고 있는 배들에게 마냥 편안함을 안겨주고 있다.

 그중의 한 배인 우리 배 안에서는,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선미 쪽으로 나가 있는 낚시꾼들의 손놀림이 꽤나 바빠지고 있다.

 지금 우리 배의 꽁무니가 머무르고 있는 곳이, 이 부근 바다에서는 도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도미의 왕국이 펼쳐져 있는 곳이라도 되는 것일까?


 맨손으로 낚싯줄을 들고 드리우고 있는 사람들의 손놀림이 현란하다. 이곳저곳에서 잡고 있던 낚싯줄을 힘껏 채어 들이며 손끝에 전달된 감각을 확인하고 있다.

이윽고 그 감각이 맞아서 걸려든 고기를 끌어올리느라 잽싸게 두 팔을 교대로 움직여 낚싯줄을 당기어 걷어 올리는 모습도 심심찮게 이어지고 있다. 수심이 40 여 미터를 오르내리는 곳이다.


그 바쁜 속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낚시꾼들 사이를 요령껏 돌아다니며 그들이 낚아 올린 고기를 연속하여 걷어 바스켓에 담느라고 바쁜 사람도 있다.


-오늘 저녁에 횟감 고기는 얼마나 잡았어요? 

나는 오늘의 어획량(?)을 알아보려 나타난 사람답게 무게를 주며 물어본다.


-모두 도미로 두 양동이 채우도록 잡았어요. 

고기 모으느라 바쁘던 조기장이 얼른 대답한다.


-와 이번에는 모두들 낚시 실력 좋았는데요? 

절로 즐거운 목소리로 환호하는 나를 향해,

-아니어요, 선장님이 좋은 자리에 투묘해 주셔서 그렇지요. 


어쩌면 아부의 말일 수도 있지만, 결코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 어조로 대답을 하며 진짜로 두 양동이 가득 채운 도미를 보여주는 조기장이 절로 믿음직하다.

조리장으로부터 얻어온 회칼을 들고 팔을 걷어 부치며 즉석 생선회를 뜨기 위한 준비를 하느라 조기장은 다시 바쁨 속으로 묻혀간다. 그런 조기장을 보며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배에서 조리를 한다면 조리장이 나서야 할 일이지만, 조리장의 입장에선 가욋일로 된장, 고추장, 식초 등의 부식까지 소비해 가며 끼어들기에는, 늘 해야 하는 자신의 일이고 게다가 관리하는 물품의 소모도 만만치 않음을 생각하는 때문인지 잘 나서려 하질 않는다. 하지만 회를 썰어 줄 사람이 없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평소 조리와는 관계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로 열심히 나서서 생선회도 뜨고, 즉석구이도 하면서, 또 다른 부류인 고기 잡는 것이 좋은 사람들과 대조를 이루며 바쁜 낚시의 즐거움에 동참하는 것이다.


 본선에서의 마지막 낚시 부류로 나와 같이 그야말로 입만 가지고 나타나서, 젓가락 하나만 더 보탠 생선회 접시에서 회 한점 먼저 집어 먹는 재미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아니 그런 부류가 배 안에서는 제일 많아 보인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말마따나 낚시가 잘 되는 곳을 찾아가서 투묘하여 될수록 고기를 많이 낚이게 하는 일에 동참하였으니, 미안한 마음을 좀 누그러뜨려도 좋으리라 자평해오고 있는 것이다.


 시내의 횟집 에서와 같이, 속칭 방석을 깐다고 하는 무채를 가 늘게 썰어 깔아 놓은 위에 펼쳐 놓는 식으로 회를 장만한다면, 몇 만 원짜리 접시로도 몇 개나 만들 수 있는 분량의 순 생선회로만 산같이 쌓인 두 접시의 회를 두고두고 먹어도 다 먹지 못하고 남겨야 할 정도이다. 


-오늘 호주 사람들 큰 손해 보는 거야! 

연신 생선회를 입에 넣으며 누군가 우스개 소리 한마디를 거들며 소주 한잔을 시원스레 들이킨다.


 적당한 대기의 따스함 속에 해 저문 선미 갑판에는 두 바구니 가득 잡은 싱싱한 도미를 회를 쳐서 앞에 놓고 소주 한잔 파티가 벌어지는데, 한편에선 이 시간 이후 달라질 낚시 어종을 생각하며 분주하게 낚시 바늘을 바꾸는 꾼들의 손길도 같이 바빠져 가고 있다. 


  그런 밤낚시를 거들려고 또 한 무리의 갑판 당직자들이 도미와는 또 다른 회유 어족의 도래를 기대하며 선미에 드리우는 환한 카고 라이트를 내려주고 있다.

바야흐로 공갈 낚시에 훌치기를 당할, 전갱어(아지)나 고등어의 입질이 다가올 시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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