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낼뻔한 하찮은 일
오늘 원래의 저녁 식사 차림표는 미트볼 백반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쇠고기보다는 생선이 영양적으로 낫다는 기관장의 의견에 귀가 솔깃해져서 원래의 메뉴를 벗어나 보기로 작정해보는 만만한 이유가 있었다.
호주에서 낚시로 잡아 몇 마리 말려 두었던 도미를 생선구이로 하여 한번 맛도 볼 생각도 겸해서, 조리장에게 저녁 식탁에 준비해주도록 미리 부탁을 해두었던 것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찾아가 서빙해놓은 식탁을 받으니, 원래의 메뉴대로 미트볼도 다 나오고 거기에 덧붙여 도미 구운 것 한 마리도 내놓고 있다.
큰 접시 하나 가득 자리한 채 나온 도미는 사실 우리가 뉴캐슬 외항에 투묘 중일 때 낚시로 잡은 놈이니, 부식 재료와는 별도라 남에게 눈치 보이는 특권을 누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특별히 차려진 것 같은 모습의 식탁을 대하니 다른 사람들 보기가 좀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뭐 그 정도의 편의야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먼저 구이에 젓가락을 대어 맛을 본다.
소금 간 하여 꼬들꼬들하니 잘 말린 생선구이인데, 껍질이 좀 억세어서 젓가락만으로 살을 발가내기는 좀 불편했지만 그렁저렁 살을 잘 비집어 먹어본다.
그러다 보니 어두일미라고는 하지만 먹을 때 보면 제일 나중에 손이 가게 되는 머리 부분만이 남게 되었다.
볼때기 부근의 살이 맛있다는 속설을 생각하며 가시를 골라내 가며 먹던 중 어느 순간 약간의 이상한 감각이 목구멍 너머에서 살짝 찾아온다.
얼른 침을 삼켜본다. 역시 감각의 이상함이 조금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가시가 목구멍 너머에서 걸린 것을 직감하면서도 제발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번 더 침을 삼켜본다. 역시 찌르르한 이질감이 목젖 뒤에 계속 남아 있다.
열심히 긴 가시는 골라내어 가며 살만 잘 발라 먹었지만 좀 작은 가시가 씹히지 않은 채 넘어가려 다가 목젖 뒤에 걸린 상태라는 생각이 확정적으로 든다.
혼자만 생선을 먹는다는 상황이 옆 사람에게 좀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하여 어딘가 서두르는 마음으로 먹었던 게, 그런 작은 가시를 그냥 삼키게 한 모양이란 생각도 들었다.
어쨌거나 신경이 쓰이게 아프거나 크게 이물감을 주는 건 아니지만 음식을 삼키려고 할 때 한 번씩 찾아오는 감각이 껄끄러운 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넘어가지 못하고 걸리긴 했지만 상태를 미루어 봐서, 심하게 박힌 가시는 아닐 거라는 작은 안도에 기대해 보기로 한다. 그걸 제거한다고 좀 고생이야 하겠지만, 그렇게 큰 걱정거리는 아닐 것이라는 느낌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식사가 끝나자마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식탁을 떠났다.
3 항사를 찾아가 목구멍 너머를 후벼볼 수 있는 기구가 있는지 물었다. 같이 선내 의료실을 찾아가서 핀셋과 탈지면을 꺼낸 후 침대에 누웠다.
플래시로 비쳐가며 목구멍 너머를 살펴 훑어보도록 했건만 가시가 눈에 들지도 않는다며 더 이상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막연히 해결될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그냥 방으로 와서 한 시간 가량 신문을 보며 침을 모아 삼키는 일을 계속했지만, 그때마다 이상한 감각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나타나니 어쩔 수 없이 브리지로 다시 3 항사를 찾아 나섰다.
그동안 배는 좁은 수로를 눈 앞에 둔 곳에 도착하고 있었다. 마침 변침점을 3 마일 정도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인데 앞쪽 8 마일과 15 마일에 두 척의 배가 나타나서 한 척은 거의 마주 보는 코스로 접근하고 있다.
다른 한 척은 우리 배가 변침 하고 나면 서로 마주 보는 상황이 될 포지션에서 모든 선박이 한 곳으로 모이게 되어있는 변침점을 향해 열심히 접근하고 있는 상황이라 내 목구멍 일로 말을 부칠 수 있는 정황이 아니었다.
초자 배기 3 항사였다면 좁은 곳에서 만나는 여러 배들에 주눅 들어, 벌써 나를 불러 올렸을 그런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지만, 선임 측에 드는 3 항사라 보고 없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사정을 알고서야 어찌 모른 채 할 수 있으랴, 올라온 김에 우선 안전항해를 위한 조선부터 직접 하기로 한다.
양선의 접근 거리를 계속 체크해 가며 현 상태로는 우현대 우현으로 가까이 있는 배를 먼저 지나치기 위해 변침점에 도달하기 좀 전에 미리 좌현으로 변침 하여 상대선으로 하여금 확실히 우현대 우현으로 통항하겠다는 우리 배의 의도를 알려주게 했다.
앞선 배를 그렇게 지나치고 나서, 다음 배도 결국 우현대 우현으로 지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으로 즉시 커다란 모션으로 좌현으로 좀 더 배를 돌리도록 지시한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멀리 있던 배도 무사히 우현을 보이며(녹등을 보이며) 지나칠 무렵 3 항사가 준비해 준 녹차를 마셨다.
따뜻한 녹차를 마시니, 얼마 동안 조선에 정신이 팔려 잊고 있던 목젖 뒤의 이질감이 다시 찾아왔다. 마시던 찻잔을 들고 윙 브리지로 나갔다.
목구멍을 양치질하듯 입 속에 찻물을 머금고 목을 뒤로 젖힌 채 우걱우걱 양치질을 해대고 나니 이물감을 느끼던 자리가 조금 변해진 것 같다.
생선가시가 목젖 옆에서 까시락 대든 느낌이 었는데, 새롭게 목젖 뒤로부터 약간의 감각이 온다.
배들도 다 무사히 지나쳐 갔고, 3 항사가 특별히 도와 달라고 할 일도 없는 것 같아 내방으로 내려와 느긋한 마음으로 가시 제거를 재시도해보기로 한다.
미지근한 소금물을 준비한 후 콧속에 넣어가며-실은 막힌 코를 뚫는 일을 그렇게 하지만- 혼자 빼어보리라 작정을 하고 소금을 가지러 찾아간 일층 조리실에는 설탕, 조미료, 그리고 소금 세 가지의 양념이 같은 크기의 통 안에 하얀색을 띄운 가루로 제각각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중 어느 것이 소금 그릇인가를 맛을 보아 확인한 후, 갖고 내려간 컵에 두 스푼 정도 넣은 후 물을 채워 방으로 올라왔다.
세면대의 거울을 마주해 보며 콧구멍으로 소금물을 끌어올리게 한 후 목을 뒤로 젖혀 목젖 뒤로 소금물이 넘어가게 만든 후 킁! 캉! 하며 뱉어내려고 기를 쓰기 시작했다.
한번. 두 번, 세 번, 잘 안 되는 것 같던 내뱉음이 세 번쯤 계속되었을 때, 무언가 걸려 올라온 느낌에 얼른 뱉어 놓은 세면기 위를 저어가며 살피니 도미 아가미 옆 살 속에 묻혀 있음 직한 작은 물렁뼈 조각 하나가 얌전히 나타난다.
-어휴! 시원한 것.
눈으로 보면서 이미 목젖 뒤의 감각도 시원한 듯한데, 역시 침을 꿀꺽 삼켜보니 좀 전까지도 가칠 거리든 목구멍이 아무런 이상 없이 침을 잘 받아 넘겨주고 있다,
-어휴! 큰일 하나 잘해 내었군!
입가심을 하고 세면장을 나선다. 마치 옅은 지옥에라도 빠졌던 몸이 부웅 떠서 하늘로 솟는 듯싶은 상쾌한 기분이 된 것이다.
살짝 발을 굴러 몸을 공중에 띄워보고도 싶은 기쁨이 찾아왔지만, 또다시 호사다마에 걸릴까 싶어 참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