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선내에서 나무를 키우는 마음.
-이거 이따가 해가 앞으로 오면 그쪽으로 옮겨줘라.
아침나절 브리지에 올라가서 하루의 일과를 보살피며 해가 비쳐 드는 동쪽 창 곁으로 옮겨 놓아줬던 화분을 가리키며 3 항사에게 지시한다.
-예, 알겠습니다. 근데 그거 무슨 나무예요?
대답을 하며 궁금한 듯 묻는 3 항사에게
-잘 키우면 오렌지 따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거야.
-예, 그게 그럼 오렌지 나무네요.
3 항사는 미심쩍은 표정 되어 화분을 살펴본다.
-우리가 점심 식사에 후식으로 나오는 오렌지를 먹고 나온 씨를 심어서 나온 나무이지.
3 항사는 설명을 듣고서도 조금은 신기한 듯 한 느낌이 드는지 갸웃하는 표정이다.
-자! 그럼 부탁한다. 수고해라.
브리지를 물러나 방으로 내려오며 생각해본다.
과연 저 오렌지 나무는 자그마한 화분에서 싹을 틔우고 살아가야 하는 지금의 자신이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라면 불행한 삶을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넓고 싱그러운 평야에서 하늘을 향해 팔 벌리고 햇볕을 듬뿍 받아들이며 마음껏 기지개를 켜는 생활을 하며, 여러 동료 나무들과 함께 키 겨루기도 할 수 있었을 생애 대신에, 그런 평야 보다도 더 넓고 넓은 바다 한가운데이긴 하지만, 결국 조그마한 화분에 뿌리를 묻고, 그것도 답답한 실내에서 살아가야 하는 제약받는 환경에서의 생활이 과연 행복한 나무의 일생일까?
나의 답답한 선내 생활에서 자그마한 활력이나마 살려내 보려고 심고 가꾸는 그 나무가 나무 자신의 의지로는 과연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지 궁금증이 생긴다.
지금 브리지에 올려다 놓은 오렌지 나무 화분은 같이 심었던 다른 나무보다 잘 자라지 못해서 특별관리를 하려고 그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원래 내 방에는 브리지에 올려다 놓은 그 녀석과 함께 두 개의 화분이 더 있다. 화분에서는 제법 잘 자라고 있는 셈인 오렌지 한 그루와 레몬 한 그루가 그들인데 셋을 함께 햇볕이 잘 드는 창턱에 놓아두기에는 창 크기가 좀 좁고 까다로워서였을까?
녀석은 셋 중 자람이 제일 좋지 않은, 치이는 것 같아 보여 아무래도 내 방보다는 햇빛을 더 쐴 수 있는 브리지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그 들이 살고 있는 화분도 호주 제품이고 그 흙도 호주에서 돈을 주고 산 거름흙으로 이런 조처는 까다로워지는 호주의 검역을 무사히 피하려는 의도도 있어서다.
골프 클럽의 헤드나 골프화에 묻어있는 흙이나 검불이 발견되어도 큰 일이나 난 듯 호들갑을 떨며 식물검역을 강화하는 이들 국가(호주, 뉴질랜드)를 다녀야 하는 입장에서, 방안에서 키우는 작은 화분의 식물이라도 검역대상이 된다고 나서게 되면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아예 그들 나라에서 생산한 흙이요 화분이며 씨앗조차도 그들 나라에서 산 오렌지를 먹고 난 후의 뱉어 낸 씨앗을 심어 나온 나무이니 시비 거리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며 기르고 있는 것이다.
방의 한구석에다 쓰고 남은 거름흙을 포대와 같이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다로운 검역을 대비해서 갖추고 있는 한 가지 일이다.
이렇게 복잡한 환경을 품고 있는 속에서 살고 있는 오렌지와 레몬 나무는 그나마 자신의 목생(木生)을 즐겁게 살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햇볕을 따라 화분을 옮겨주고 물을 주며 생각해본다. 너의 생이 그래도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낫고 즐거운 생이 아니겠느냐? 고.
씨앗이 씨앗으로 만 있다가 사라지느니, 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인고하며 싹을 틔워서, 어쨌든 생으로 나섬이 그래도 살아있는 생물로서는 훨씬 의미 있고 잘하는 일 일 거라 믿기로 한다.
그 역시 나 혼자 만의 짐작이요 생각일지라도 옳은 생각이라고 말해 주렴아~ 오렌지야!, 레몬 나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