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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Oct 12. 2017

애들과의 편지

집안 소식 두루 꿰어서 보내 준 큰애 편지

 아버지, 언제부턴가 등줄기를 흐르는 땀이 있어 어느덧 여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막내는 휴가를 무사히 마치고 오늘 귀대했습니다. 점심까지 먹여서 보내긴 했는데 보내고 나니 섭섭함이 밀려(!) 옵니다. 

워낙에 바쁜 새끼줄(?) 속에 휴가를 지내다 보니 식구들과 저녁 한 끼 같이 먹기도 어려울 정도였죠. 

그래도 전에 면회 갔을 때 보다 의젓해 보였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순전히 계급장 때문이었을 겁니다.-가을에 한 번 더 휴가를 나온다니 그때를 기대해 봐야겠습니다. 


막내가 워낙 바쁜 일정을 보내어 죄송스럽게도 아버지께 편지를 남기지 못하였다고 귀대 후 편지를 하겠다고 하였으니 궁금하시더라도 막내 소식은 저나 둘째를 통해서 들으시는 것으로 당분간 만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편지가 도착하면 바로 메일로 날려 드릴게요.- 


 어머니의 투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1차 회신-사측-에서는 앵무새와 같이 같은 말만 되풀이해서 2차로 금감원에 일체의 문서와 함께 다시 한번 바른 보험금을 지급케 해 달라고 민원을 제출했습니다. 

아마 늦어도 다음 달 중순까지는 회답이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농민들의 걱정을 더 하더니 그나마 며칠 전의 반가운 비가 내려 남쪽은 모내기가 완전히 끝났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직 중부지방과 영동 쪽은 가뭄의 완전한 해갈에는 못 미친 듯합니다. 뭐 세상일이 우리 좋을 대로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만. 


그러고 보니 낼모레가 할아버지 기일이로군요. 벌써 11년 전이네요. 

지금도 서울대학병원에서 바나나를 건네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선한데 내일 작은집 식구들과 추도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다 함께 모여서 예배드린다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니까요. 저는 제사를 모셨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당장은 좀 힘들겠지요? 


아버지, 어머니도 요새는 아버지의 편지를 은근히 기다리시는 것 같아요. 그러니 제 편지 받으시고 답장은 학실하게(!) 써 주세요. 


 다음번엔 어머니를 졸라서 편지를 쓰시게 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아버지도 편지 쓰는 맛이 더 하겠지요? 

또 편지드릴게요. 아버지 건강하세요. 이번에 오시면 아버지를 뵐 수 있을까 모르겠네~~~ ^^; 

5월 23일 아버지를 무지무지 보고 싶어 하는 큰 아들이 썼습니다. 

  편지 쓴 것 또 덧 붙여 보내드립니다.

  어제 추도 예배는 잘 마쳤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편지도 잘 받아 보았습니다. 그 걱정 증후군이 더 이상 발병하지 않게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둘째도 회사일로 많이 바쁘답니다. 부서 조정이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마케팅 쪽인 것 같던데 뭐든지 잘 해내는 둘째이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고요. 


집을 새로 짓는다는 것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지금 어머니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는 전 잘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건 어머니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 시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지붕의 방수공사는 마무리를 지었고요. 다시 지을 때까지 버텨 주길 기대해 봅니다. 


요즈음은 난 여태 뭘 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뭐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것도 없이 넋만 놓고 앉아서 하늘만 바라보는 격이라니 때로는 우습기도 하고 때로는 처량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누구도 아닌 저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만 하고 있기에는 지나가는 시간이 두렵고 좀 갑갑한 생각에 조급증도 나는 거지요.

고민만 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알고 있기에 뭔가 해 보려 해도 선뜻 일에 대한 감은 잡히길 않고...... 답답하군요. 우선은 건강을 되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믿으려 합니다.

담에 또 편지 쓸게요 아버지. 

2001년 5월 26일 토요일 큰아들이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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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야 뭐하니?


 오늘은 일요일. 主日날이니 우선 성당에 가 네 할 일은 했겠지? 

 모르고 이용하지 않았을 때는 그냥 지나치던 날짜들에 아무런 아쉬움이 없었는데, 요새 멜을 주고받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매일 같이 소식을 기다리다가 없으면 서운해지곤 하는 습관이 생기는구나. 


 어제는 전 승조원이 후부 갑판에서 야외로 소풍 나간 기분으로 숯불갈비를 구어 가며 한잔까지 곁들여 즐거운 저녁시간을 가졌단다. 

그런데 비가 억수같이 퍼부어서 판이 깨지는가 싶었었는데, 오히려 시원한 적도 부근을 만들어 주어 실컷 먹게 하여 먹는 양만 더욱 늘어나게 했단다. 


 사정 두지 않고 퍼붓는 비를 보며 우리나라가 지금 가뭄을 타고 있다는데 그곳에다가 이렇게 비를 뿌려주면 얼마나 좋을꼬? 하는 바람을 떠올려가며 열심히 먹었고 오래간만에 노래방을 찾아가서 목청껏 노래도 부르고 나니 오늘의 새벽 운동을 예상 못한 채 거르게 되었더구나. 그러나 오늘 중에 해야 할 운동량은 오후에라도 꼭 채울 작정이란다. 예외를 두려고 시작한 운동이 아니니 그렇게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내 몸을 날씬하게 만들어 줄 수가 없는 거 아니겠니? 


 지난번 호주에 입항해 있을 때 너의 막내 삼촌이 머무르고 있다던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었더니 호텔 프런트 데스크가 나오더라. 


 그래 한국인으로 OOO이라는 이름을 가진 손님을 찾았더니 이름의 스펠링을 물어 오더구나. 갑자기 영문 이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이것저것 대며 확인하다 보니, 그런 사람 없다는 말을 하면서 연결을 안 시켜주더구나.


 그래서 이야기인데 우리 집안 식구들의 여권에 쓰여 있는 영문 이름을 모두 적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네 가 조사해두기 바란다. 


 호주를 포함해서 서양 사람들이 선물을 줄 때 많이 이용하는 방법으로 스테인리스 스틸 제품에다 축하의 글자와 이름을 새겨 넣어 주는 걸 보고 나도 언젠가는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졌는데 막상 이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한 생각이 들 더구나 글쎄. 

그러니 우리 식구들의 영세 본명을 포함해서 여권에 쓰인 영어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를 다음 편지에 알려주기 바란다. 

 가족들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있단 생각에 나 자신이 한심한(?) 생각도 들지만 이제라도 확실하게 알아두면 되겠거니 여기고 물어보니 여권 가진 사람 모두의 이름을 빼놓지 말고 정확히 챙겨주기 바란다. 

그리고 너 네 엄마한테 왜 나한테 편지를 안 써 보내는지 따져주기 바라며 오늘은 여기서 끝 하자. 

우리 식구 모두에게 안부를........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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