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UTOR의 마지막 할큄
사진 : 파곡을 타고 넘어야 하는 그 극심한 운동. 낮에는 그래도 이렇게 상황을 보면서 움직일 수 있으니.....
그러나 밤에 만나게 되는 이런 황천은 그야말로 깜깜한 오리무중 속의 공포이다.
사진 : 한 번씩 치고 빠지는 파도는 이렇게 선수를 못살게 하며 당직 중인 브리지의 선원들 마음을 괴롭히지만, 밤중에는 이것도 볼 수 없는 상태이니..... (인터넷에서 찾아본 황천 사진들)
오후 네 시가 되어 수신한 JMA기상 텔렉스는 태풍 UTOR가 US NAVY가 주장하는 경로와 같게 서북서진으로 바시 찬넬(대만 남부와 필리핀 루존도 북쪽 사이의 해협)을 빠져나가는 것으로 그려 보내고 있다.
그전까지도 실제의 위치는 서북서진으로 보이면서도 예상 진로는 고집스럽게 대만 쪽을 향한다고 보내더니 결국 자신들의 주장이 틀려진 것을 인정한 모양이다.
미 해군과 같은 의견을 가진 우리의 항로 추천 회사인 KS WEATHER가 설명한 상황이 맞아떨어진 것이고 그 추천대로 움직인 우리 배는 파도야 좀 만나게 되었지만 그런대로 내일까지는 태풍과 240마일 정도까지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는 사이로 될 것이다.
이런 생각 그런 수치로 저 정도면 괜찮아하는 식으로 마음을 달래는 형편은 태풍과 240해리 떨어져 항해한다는 뜻이 과연 얼마나 안전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은 떠 오르지 않는 것처럼 무시해보는 <눈 가리고 아옹>식의 괜찮아질 거야 하는 바람에 기대를 걸며 점점 높아지는 바람과 깊어지는 파곡을 곁눈질하며 맞이하고 있었다.
벌써 순간 풍속이 50 knots를 기록하며 한 번씩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마치 수천의 기마병들이 말을 함께 달리게 하는 소리 같고 그럴 때마다 15만 톤의 화물을 잔뜩 싣고 있는 배를 일엽편주 만들어 흔들어줌이, 마치 황천에 대비하여 묶어 놓고 있는 선내의 물건들이 제대로 묶여 있는지 검사해보려고 억지로 훑고 지나는 것 같다.
이제 밤 시간이 서서히 찾아오려니, 어둠이 주는 공포마저 가미되어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이 어둠의 시간이 덧없이 길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까지 겹치고 있으니, 밤 시간아! 어서 빨리 지나가거라! 바랄 뿐이다.
태풍이 현재 24 knots의 속력으로 움직인다는 정보가 이 참에는 그나마 반갑다. 태풍이 제대로 진로를 잡아 달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며 그만큼 빨리 우리와 멀어지는 확률을 포함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때문이다.
기압이 1002로 떨어져 있으며 얼마나 더 떨어져야 하는지는 얼마나 접근하느냐에 따르는 것인 데, 해상상태로 인해 현재 우리 스피드가 6 knots 정도밖에 나지 않는 게 너무나 아쉽다.
저녁 열 시가 되었다. 좀 전인 아홉 시 현재 태풍의 상태가 인마 세트-C에서 타전되어 나온다. 예상하던 위치보다도 조금 더 아래쪽을 25 knots의 속력으로 지나갔다는 통보를 보면서 태풍은 우리 배와 거의 비슷한 경도 상 340 마일 정도 아래쪽으로 떨어져서 계속 서북서진을 하고 있는 거다.
이제 우리의 기압은 1002 hpa, 바람의 순간 상대 속력 60 knots이다. 아울러 후덥지근한 대기 때문에 나는 쉼 없이 땀을 흘리며 이런 현상도 태풍이 몰고 온 특성 중 하나라는 걸 떠올리고 있다.
밤 12시가 다 되어갈 무렵, 태풍이 지나치며 흔들고 뒤엎어 놓은 삼각파도의 바다에 들어섰음 일까? 어느새 배의 선체 좌우 상하 운동 상황이 매우 불규칙해진 느낌이 불길하다.
포수의 등장에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놀란 사슴의 뜀박질이라도 되는 양 배는 파도에 휩싸인 채 어쩔 줄 모른 채 울렁거리며 빨리 달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형국을 보이고 있다.
-그르릉~ 꽈과강 꽝!
갑자기 대포 소리보다도 더 큰 음향이 온 배에 울려 퍼지며 우리 모두를 바짝 긴장시키며 진저리 치게 만들어 준다. 순간적으로 순식간에 찾아든 죽음의 공포에 선체는 부르르 몸을 떨어, 자신의 몸 위에 덮쳐 씌워지는 파도를 흩어 내기라도 하려는 양 몸부림치고 있다.
-조타수! 갑판 앞쪽을 비쳐주는 Flooding Light를 모두 켜요.
어딘가 크게 부러지거나 부서져있는 무서운 광경을 상상하며, 어쩌나 걱정도 들지만, 그래서 더욱 확인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예,
나보다도 더 놀랐을 조타수가 얼른 대답을 하며, 바쁘게 갑판상 정박등들의 스위치 패널을 플래시로 비쳐가며 해당 스위치를 골라 켜주기 시작한다.
스위치를 찾아서 넣어주는 동작을, 비바람 소리가 휘~잉 휭 난무하는 속에서, 귓등으로 찾아내는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은,
-이제 태풍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건가?-
어쩔 수 없이 코너에 몰린 기분에 빠져들며 귓속을 울려오는 소리들을 그냥 지우고 싶는 것이다.
아울러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무궁화호나 대양 하니 호 같이 태풍 속에서 영원히 실종한 한때는 나도 승선했던 광탄선 들의 옛 사건을 다시금 떠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도 방금 우리가 받은 그런 굉음을 몇 번씩 들었으면서도, 어떤 상황이 와서 배가 침몰했는지를 증언해 줄 자리도 갖지 못한 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상황 아래서도 그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최후를 맞이 했을까를 갑자기 궁금해하고 있으니...
-그런 배 같이는 안 될 거야! 하는 강한 삶에 대한 애착이 솟구치며, 나도 모르게 부정을 뜻하는 도리질을 쳤다
깜깜한 선수 쪽 갑판 위로 몇 개의 멈칫하던 등불 빛이 어느새 커지기 시작한다. 드디어 수은등 특유의 기다림을 끝내준 등불들이 푸른빛 도는 밝은 불빛을 발산하여 폭풍이 휘감고 있는 갑판 위를 차갑게 비쳐준다.
좀 전 선체를 강타하며 올라왔던 파도의 잔재가 온 갑판 위를 누비며 닥치는 대로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는 모습이 밝아오는 등불 아래 점점 처절한 모습으로 뚜렷이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 허연 이빨을 보이는 파도에 속수무책인, 갑판 위 구조물들이 후줄근하게 얻어터진 모습 되어 주마등같이 지나치니, 온몸은 짜릿하니 공포에 얼어 들고 있다.
잠깐의 눈썰미지만 커다란 이상을 발견치 못하면서, 그렇듯 밝혀지는 불빛이 오히려 더욱 공포감을 키워주는 성싶어, 즉시 등불을 끄라고 지시한다.
다시 갑판 등이 꺼진 어둠을 맞이하며 잠깐 사이에 느낀 상황을 감안하여 즉시 침로를 오른쪽으로 10도 더 주도록 지시해준다.
-010도 스티어링 써~
쿼터 마스터(조타수)의 변침을 끝내고 정침 한 동작에 대한 복창이 나오고 있으나, 배는 얼마나 더 돌려주었는지 아랑곳하지 않은 별 변화 없는 모습으로 흔들리고 있지만 내 마음에는 이미 작은 안정감이 들어서고 있다.
될수록 파도와 다투지 않고 그냥 물 위에 안전하게 떠있는 상태로 시간만을 보내어, 그동안 태풍이 제 혼자 멀리 가 주길 바라는 마음만으로 가득 차 있는 내 가슴은 잠깐에 얻은 안정감에 기대를 가지면서도 꽁꽁 막힌 이 시간에 어쩔 수 없는 매달림으로 온몸은 축 쳐 저 가고 있다.
-아~아~아-
아직도 어둠은 내 마음을 가둔 채 그렇게 흔들어 대고 있다.
잠시 후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으며 새로운 지시를 당직사관에게 내려준다.
-기관실에 연락하여 물이 새어 드는 곳이 있는지 기타 이상 누수 여부를 잘 챙겨 보고 하라고 해라.
-날이 밝는 대로 관련 탱크를 철저히 사운딩 하여 물이 새어 들어온 곳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할 것.
다행히 좀 돌려준 침로를 항행하며 배의 흔들림이 나아진 것 같은 느낌이 커지어서 그대로 보침 한 채 다음 기상도 수신 시간까지 기다리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