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링해를 건너설 무렵
베링해의 서쪽 끝자락인 알류샨 열도의 아투 섬을 왼쪽으로 하여 이제 일본에 접근하기 위한 변침을 시도하는데 뒤바람과 함께 그동안 밀어주던 너울이 왼쪽에서 쳐 올라오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어지면서 갑판 상에 물을 퍼 올려주면서 사라지기를 반복하려 한다.
이미 파도에 맞아 한쪽이 부러져 있는 상태의 파이로트 사다리가 그 와중에 또 목표물이라도 된 듯이 다시금 물을 덮어쓰는 것을 보니 할 수 없이 변침을 포기하고 다시 서쪽을 향해 달리도록 지시했다.
배를 조선(操船)하며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인 바람과 파도가 제 각각인 상태에 맞닥뜨린 것이다.
이제 또 한 번 센 파도가 왼쪽 파이로트 레더를 때린다면 이번에는 갑판에서 떨어져 나가는 그야말로 잃어버리는 상황으로도 변할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배를 오른쪽으로 돌려 270도로 달리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아투 섬 동쪽에 있는 천소를 빗겨 위험한 해역을 지나가야 하는 입장이라 좀 더 신경을 써가며 침로 변경 설정을 해야 할 판이다.
가랑비가 내려주며 하늘은 완전히 구름에 뒤덮인 담천(曇天)의 날씨다.
기우뚱거리는 배를 살살 어르고 달래 가며 순항하도록 만드는 이 심정은 마치 두세 살배기 천방지축 막무가내인 아이를 꼬셔가며 지겨운 시간을 축내야 하는 베이비 시터(BABY SITTER)의 심정과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겨우 날이 밝아오는 새벽 여섯 시인데 말이다.
배를 오른쪽으로 돌려 바람을 뒤로 받게 해놓고 내려왔는데 배의 흔들림이 심상치 않다. 급하게 다시 뛰어 올라가 보니 파도가 아무래도 옆으로 들이닥치며 당장이라도 뒤집어엎을 듯이 흔들어 젖히는 형상이라 급하게 왼쪽으로 돌려서 280도에 잡게 했던 침로를 200도로 다시 바꾸게 해 놓으니 많이 괜찮아지긴 하는데 앞 파도로 바뀌어 배의 진행 속도는 3 knots 부근에서 헤매게 한다.
바람보다는 너울(스웰 SWELL)의 영향이 선체의 운동에 끼치는 영향이 더욱 크다는 실감을 다시 한번 느낀다.
뒤바람에서 10시 방향의 앞바람으로 바뀌니 바람소리는 심하게 나지만 좀 더 보침 상태를 지켜보았다. 이윽고 보침이 안정적으로 되어서 선체 운동이 많이 순화된 걸 확인하며 한 시름 덜어 놓으며 기압계를 찾아 시도(示度)를 확인해 본다.
993 hpa.
아직 얼마가 더 내려가야 할지는 모르지만 어지간히 내려간 상태이고 그 하강 속도가 많이 누그러져 한참을 그 시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게 항해일지의 기록으로 확인한다.
이제 저기압의 중심 부분이 우리의 위치와 슬슬 멀어지기 시작하는 상태임을 머릿속으로 그려주며 브리지를 내려왔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