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인내
배가 아프단다.
혈변을 누고 구토 증세도 좀 있단다. 그런 증세가 나타나도록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거나 병원에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은 채 오늘까지 생활해 오다가 이제 좀 심하게 아픈 느낌이 드니 실토를 한 모양이다.
기관부 실습생으로 승선 중인 필리핀 선원이 지난 한 달 정도 미련이 곰 통 같은 짓을 해서 일으켜 놓은 현실의 이야기이다. 처음 아픈 느낌이 들었을 때 이야기를 해서 약이라도 먹던가 아니면 병원이라도 갔다면 괜찮았을 아무것도 아닐 작은 일을 이렇게 꼬이게 만들어놔서 참 난감한 상황이 나한테로 찾아와 준 셈이다.
그 친구의 일이 이제 나흘 후면 호주에 도착할 때에 대비한 무선 검역에서 어떻게 신청서를 작성해야 할지를 놓고, 처신해야 하는 방향에 망설여지는 상황을 내 앞에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무선 검역을 하기 위해서는 신청서에 첨부된 설문사항에 이번 입항 전 항해 중에 선내에서 아팠던 사람의 유무와 그 상태를 묻는 항목이 있다. 거기에 해당 상황이 있다고 대답을 하게 되면, 좀 더 자세히 그 내용을 기술해야 하고, 그 결과는 무선 검역이 거절되어 직접 검역을 받아야 하는 일로 발전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에 일이 그리 흘러 무선 검역이 거절되기라도 한다면, 그때부터 검역이 정상적으로 끝날 때까지의 시간에 대해 용선주에게 OFF HIRE(용선료를 받게 되는 기간이 정지되는 경우)도 각오해야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한 달에 200불 받는 조건의 선원 수출 실습생으로 나온 그 필리핀 선원은 혹시 병원에 갔다가 그대로 하선 귀가 조치되는 일이 무서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아픔을 참고 견디며 숨겨오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심해져서 실토하고 나선 것이리라.
사실 그들은 가난한 삶과 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로 선원 수출의 길을 택하여 승선한 사람들이다.
결코 홀홀히 놓칠 수 없는 힘들여 잡은 기회이기에, 혹여 통원 치료 때문에 중도 하선당할까 봐 숨기려는 그 심정 또한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일이 이지경에 이르러 나에게도 책임이 있는 일이 될 수 있으니 좀 더 인간적인 처리를 위해서는 경제적인 손실을 포함한 회사의 의견을 참조받아야 하겠기에 일차 전화로 문의를 했던 것이다.
그 결과가 어찌 될지는 대략 짐작은 하면서도 물어본 것이다. 그 대답이 좀 전에 이멜로 와있다.
나로서도 그 방법이 가장 무난한 방법이라 여기고 있었던 대로, 우선 무선 검역은 이상 없이 신청하고 환자는 나중 입항하여 병원에 보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 실행하라는 전언이다.
즉시 작성해 두었던 무선 검역 신청서를 호주 당국에 이멜로 신청한다. 이미 도착 72시간 전에 내야 하는 무선 검역 신청 시간도 다 된 것이다.
그리고 아프다고 이야기한 환자는 본선에서 치료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돌봄은 모두 해준 후, 접안 즉시 병원에 갈 수 있도록 대리점에 의뢰할 병원 진료 서류 준비도 모두 끝내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