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착선의 이야기
도착하여 투묘한 후 하루도 기다리지 않고 부두로 향하는 일을 경험한다.
그것도 기다리는 배가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여섯 척이라는 먼저 와 있는 배가 있었는데도, 우리 배를 먼저 부두에 접안시키는 일을 당하니 은근히 으쓱하는 기분 또한 그럴듯하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후착선으로서 여러 척의 선착선의 순서를 젖혀 두고 부두에 접안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현장에서 운항을 책임지고 있는 선장의 마음은 우쭐할 수가 있는 것이다.
먼저 와 닻을 내리고 있든 배 중에 옆에 가까이 있든 배에 H상선의 H유니버스라는 국적선의 배도 있었는데 그 배의 순서도 뒤로 밀어버리고 먼저 부두로 향하는 마음이 참 각별했다.
새벽 1시부터 기다리기 시작하여 어둠 속에 시행된 작업이었기에, 남들의 눈에 직접 뜨이지 않아서 미안한 감이 적을 수 있었지, 환한 낮에 움직였다면 괜히 그 배들의 선원들에게 미안할 뻔하였다.
늦게 도착한 주제에 먼저 들어간다는 것은 모종의 배경을 가지고 선착선을 앞지른 행위로 충분히 오해받을 수도 있었을 거니 말이다.
그러나 어느 항만이나 선착선이 먼저 접안하는 것이 제일의 불문율이긴 하지만 항구와 부두의 사정과 화물의 준비된 상태 등으로 인해 이렇게 선, 후착선의 접안이 바뀌는 일도 종종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하다.
두 시간도 더 기다리며 닻을 감은 새벽 3시. 파이로트는 승선하였고, 부두에 대는 작업이 끝난 시간은 새벽 5시가 좀 넘게 되었으니 하루 밤을 꼬박 새워 밝히며 접안 작업에 임한 것이다.
불야성을 이룬 부두 가의 불빛은 90년대 이곳을 처음 찾았던 때 보다 훨씬 밝아진 느낌을 주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항 내의 곳곳이 항만건설 작업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이미 예전에는 없었던 부두들이 여러 곳에 만들어져 배를 대어 작업을 하고 있는 것도 눈에 들어온다.
주로 광석과 관련된 부두의 확충이 소금과 또 다른 광석의 전용부두로 까지 확대되어서 건설되기 때문에 인구도 예전의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청사진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부두에 접안하자마자 로더가 다가서서 곧 작업을 시작할 차비를 한다. 5번 창부터 시작하도록 선적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로더는 5번 창 옆에 와서 멈추고는 스파우트를 내밀어 선창 위에 위치시켜준다.
내일 아침 9시 출항이라는 예정까지 세워 놓고 있는 새벽의 접안은 그렇게 끝났다.
오전 10시쯤 지난 항차 중국 CAOFEIDIAN에서 우리보다 늦게 도착하였는데도 하루 먼저 부두에 대어 작업을 끝내고 떠났던 MINERAL SHIKOKU라는 배가 건너편 새로 생겨 있는 부두에 대더니 작업을 시작한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여섯 척 중 한 척으로 기다리다가 우리가 들어온 다음 들어와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우리 배 보다 늦게 도착했으면서도 앞서 접안하여 작업을 하였고 당연히 먼저 출항했지만 여기서는 반대의 경우가 되었다.
우리가 앞서서 접안하는 일을 보이어, 은근히 중국에서의 뒤로 차례가 밀렸던 일에 대한 가벼운 앙갚픔(?)이라도 해 준 기분이 들기에 빙긋이 미소를 머금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