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창에서 내려다보며 역사를 생각
공항 활주로를 힘차게 달리던 비행기가 드디어 부~웅 떠 오르더니 잠시 후 기수를 북쪽으로 잡는다. 왼쪽으로는 구름바다 위에서 얼마 후 넘어갈 태양이 처연한 핏빛으로 빛나는데 발아래로는 희끗거리며 터져주는 구름의 틈새로 대만의 해안가가 말없는 실루엣을 이루고 있다.
이윽고 안전벨트 해제의 사인이 깜박거린다. 그러나 그에 따를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그냥 앉아 있는 머릿속으론 여러 가지 상념이 맴돌고 있다.
지난 10월 하순부터 외항에 닻을 내리고 한 달 여 이상 머무르고 있었던 속에서 이따금 스멀스멀 떠오르며 반복되던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 그 일들이 다시 떠오르고 있는 거다.
그 생각이란 것이 나 혼자만의 빗나간 억측으로 끝나는 상황이라면 괜찮을 것이지만, 그게 아니라 실제로 발생한 일로 나타나게 된다면, 낭패를 당한다고 생각되는 쪽의 많은 사람들이 가질 당혹감은 장난이 아닐 일인 거다.
북극성이란 이름의 배를 타고 금년 한 해 동안 호주를 왕복하며 중국과 대만을 교대로 출입항하는 운항에 참여하면서 순간순간 감지되었던 분위기에서, 이들 두 당사자(兩岸)들은 서로를 합쳐보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움직임을 떠 올려 보기도 했던 것이다.
현재 이 둘의 관계를 살펴볼 때, 아무래도 힘이 달리는 대만이 중화민국이란 지금까지의 정통성을 가진 명맥을 끝까지 유지 못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란 힘이 좀 더 센 정권에 밀리어 흡수 합병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성의 눈길도 종종 느껴보는 것이다.
그것은 내 생애를 통해 지금까지 배워 왔던 교육과 그 실천으로 살아오며 겪었던 관점을 앞세워 생각한다면, 어딘가 모르게 억울하고 아쉬운 앙금을 남겨주는 모순된 방향으로 흘러가려는 결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들 양안 간에는 우리들의 이산가족 상봉보다도 더 앞서 나가는 교류가 활발히 존재해 있고 이따금 뉴스에 오르는 상황을 보면 만만디를 신봉하는 이들 민족답게 시간의 흐름으로 해결하려는 거구나 하는 짐작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유엔이나 세계도 그런 힘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논리에 동조하거나 응하는 듯싶어 보인다.
서로 간에 오가는 여러 가지 눈치로 봐서도 언젠가는 이들 둘이 합쳐질 것이란 것을 의심할 수가 없는 사실로 그들의 역사에 대입해도 빗나갈 것 같지 않은 형편으로 여겨짐이다.
더하여 배를 타고 있는 내 일과 관계된 일로서 내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을 불러주는 사안에는 이런 것도 있다.
외항선이 외국항에 기항할 때면 그 나라에 입항하며 내야 하는 세금성 비용이 있다. Navigation Levys라고 하는 이름이야 나라 따라 각가지이지만 , 내용은 항세나 부두세, 그리고 등대 세라고 할 수 있는 자국이 관리하는 항로표지 등을 이용하는 데 대한 공과금 형태로 통상 3개월 기한으로 물리는 비용인 것이다.
중국에서는 지금까지 대만에 기항 후 직접 자신들의 항구로 입항하는 것도 허가해 주지 않았었고, 아울러 대만에서 낸 이런 종류의 비용에 대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 관할의 항구에 들어오면 무조건 다른 외국이나 마찬가지로 취급하여 돈을 받아들이는 서로를 다른 국가로 취급하며 차별했는데, 이제는 대만에서 낸 이런 세금에 대해 중국은 자신들이 수금한 것과 같이 취급해주어, 3개월 기한이 넘지 않은 것은 받은 것으로 치부하여 납입을 면제해주고 있는 것이다.
입항 수속을 하러 온 중국 관리도 대만을 그냥 자신들의 한 지방 정부로 표현하며 그래서 당연히 자신들이 또 돈을 받지 않는다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적당한 선까지 인정해주며 일을 처리해 가면 언젠가는 아주 쉽게 하나로 합칠 수 있다는 논리가 그 안에 내포되어 있음을 본다.
시간에 구애 받음 없이 언젠가는 자신들이 의도하는 대로 변해 줄 미래를 굳게 믿으며 행하는 중국인들의 만만디 한 성품이 스며든 현상으로 이들의 역사를 되짚어 보아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역사의 순환.
역사는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라 어느새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 닮아 가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패션을 보면 몇 년을 주기로 해서 조금의 가감은 있지만 다시 되풀이된 디자인이 나타나듯이 역사도 예전의 어느 때와 비슷하게 다시 되돌아 가려는 성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현저하게 달라진 중국 사회의 분위기가 이런 중국 당국의 의도되었을 일을 뒤받침 하는 데 큰 힘이 되었을 거란 짐작을 하며, 건드리기가 껄끄러운 사안이지만 우리나라와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를 숙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되짚어 본다.
가오슝 공항을 부-웅 떠나 공중으로 떠 오른 기체의 창을 통해 내려다보던, 대만 해변가의 오밀조밀한 평화로운 모습들을 대하며 왜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꽉 채워주고 있었던 것일까?
한참을, 창 아래 풍경이 구름과 바다만으로 바뀌어 간 그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이제 세 시간 남짓 지나면 인천에 도착할 거란 예정을 천천히 확인하며 안전벨트를 풀어낸 몸을 화장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