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승선

또 한 사람의 항해사가 태어나고.

by 전희태
0911029-바릭파판 접안 047.jpg 인도네시아의 어느 항구 모습

배를 타고 세계의 바다를 누비고 다니면서 평생을 살아온 내 생활이었다. 그리고도 모자란 듯이 아직까지도 배를 못 떠난 생활로 살아가며 이제 자식 중 하나를 나와 같은 직업인으로 만들기 위해 배를 타러 내 보내는 감회는 참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선상생활이란 구획된 좁은 공간에서 한정된 인원이 선박을 운항하며 맡은 바 소임에 따른 자신의 일을 하며 공동생활로 살아가는 것이지만 어떤 일이건 마지막 판에는 자신만을 믿고 의지하며 판단을 내려서 살아야 하는 고독한 환경 역시 어쩔 수 없이 주어져 있는 선원의 숙명이다.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한 번씩 부딪치게 되는 힘든 경우를 당할 때마다 한 번씩 떠오르기를 거듭하던 배를 떠나고 싶었던 순간들도 막상 모든 일이 잘 해결되어 무사히 다음 일로 넘어가게 될 때면 어느새 힘들었던 상황일 랑 다 잊어버리고 다시 새로운 일에 매달리며 살아오기를 그 얼마나 반복했던가?


이제 그러한 일들을 어쩌면, 아니 꼭 같이 되풀이하며 살아가야 하는 입장 안으로 들어서려는 둘째를 보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도 막상 해주려니 할 말이 떠 오르질 않는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자식에게 넘겨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그럴듯하다고 여겨진다. 나 역시 지나간 내 생활의 어려웠던 부분들부터 떠 오르기에 자식의 승선 생활에 대한 의견은 우선 말리고 싶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했었다.


그러나 현실의 각박한 취업시장에서 이미 명퇴를 하고도 몇 년이 훌쩍 지나간 나 같은 사람이 아직도 현역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졸 수 있는 직종은 선원이란 직업을 빼놓고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마당에 학교도 비 승선학과이긴 해도 해양대학을 나온 그 애를 육상에서 힘들어하는 생활 속에 팽개쳐두기보다는 배운 것과 아무래도 연관이 있는 승선을 택하는 게 어떨까? 의중을 물었었다.


그러나 이미 그때쯤 의 내 마음속 결정은 그 애를 승선 생활로 이끌어 주어야겠다는 판단을 앞세운 요식행위로 굳어 있었던 것 같다.


그 애는 며칠 생각한다 했었고 결국 승선 생활을 택하겠다고 동의하여 연수원 교육을 받았고 좌학을 끝내면서 승선실습을 위한 오늘에 이른 것이다.


대를 이어 같은 직업을 가진 우리 집안의 내력 쌓기를 찬찬히 시작했다고 의미를 부여하며 그 애가 선상생활을 하며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사전 알림을 철저히 해주리라 다짐하면서 이 세계에서 커갈 수 있는 기틀을 잡아주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자로 이제 내 마음을 완전히 바꾸기로 했다.


승선 실습을 위해 집을 떠나려는 둘째를 위해 우선 기원의 편지부터 보낸다.


사랑하는 둘째야 건강히 잘 다녀 오기를 기원한다. 2009.07.26 05:35


어쨌거나 같은 중국 땅에서 너와 함께 있을 게 그나마 기쁨이 되는구나.

나는 오늘 아침에 난통으로 들어간다.

외항에 닻을 내린 지 딱 일주일 만에 들어가는 거란다.


기왕이면 서로 만날 수 있는 같은 항구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지만 그냥 생각으로 끝내며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장도를 축하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


건강을 제일로 하여 즐겁고 보람찬 생활이 되기를 간구하며 나도 이 새벽 입항 준비하느라 바빠서 이쯤에서 그치도록 하겠다. 다시 한번 건강하게 끝마치기를 기원한다.

씨. 저니에서 아버지가.


둘째의 떠나기 전 편지이다.


원래 미루고 미뤄져서 오늘까지 온 것이지만, 방금 전화를 또 받았습니다. 하루 앞당겨져서 화요일(28일)에 중국으로 들어갑니다. ^^

뭐 하루 당겨진 것이지만(게다가 엄청 늦춰진 것이지만) 마음은 한 일주일이 한 번에 당겨진 느낌입니다.

이 느낌으로 1년간의 실습 생활을 보내면 금방 시간이 갈듯하지만... 빨리 가는 것보다도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시기라 슬그머니 걱정이 커갑니다. ^^

입항은 잘 하셨는지요. ^^

출발 날짜가 잡혔습니다

미루고 미뤄졌던 출항 날짜도 잡혔답니다.

일단 이곳 시간 7월 29일 아침 9시 30분 비행기로 중국으로 떠납니다.

30일에 출항하게 된다고 하니 그때부터 1년 동안의 실습기간이 시작되는 것이죠. ^^

그간 다른 동기들 중 빠른 친구들은 10월 말에 실습생으로서의 삶을 마무리 지을 텐데, 왜 이리 늦었을까 하고 스스로를 타박해보고 있었지만 막상 날이 잡히고 나니 그런 생각은 사라지고 그저 잘해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도전을 두려워하는 타입은 아닌데 슬그머니 겁도 나고요. ^^


그래도 건강하게 1년 동안의 실습 생활 잘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

아버지께서도 늘 즐겁고 힘찬 하루하루를 맞이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



두 사람이나 바다로 내 보내는 아내의 편지이다.

둘째도 오늘 집을 떠나가고 2009. 07. 28 13:42

아침 5시에 일어나 모든 준비를 끝내고 빵으로 식사도 하고 우리 넷이 공항으로 갔지요. 혼자 따라가려는데 모두 나서는 바람에 아이들 셋 과 함께 집을 나섰지요.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같이 교대하려 떠나는 일 항사가 전화했더라 구요. 8시 10분에 공항에 나와 전화하겠다고 했는데 7시 25분경에 우리는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웃고 떠들던 둘째가

-엄마 조금 있다 일 항사 전화 오면 가세요

-왜

-그냥이요

-그러지, 하는데 조금 후 전화가 오더군요


B 쪽에 있다는 일 항사를 둘째가 찾아가겠노라 하며

-엄마 가세요 저 잘 다녀올게요

-그래 엄마도 기도 열심히 할게 너도 기도 해야 한다.

한 번씩 모두 건강히 다녀오라며 안아주는데 마음 약한 둘째가 가방 들고 돌아서는데 눈이 빨게 지더라고요

몇 번을 뒤돌아 보며 갔는데, 우리가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오기도 전에 벌써 중국에 도착했다고 전화를 했더군요.

자식 잘 할 것이라 믿어 봅니다.

항상 집을 못 잊어하는 놈이지만 이제부터 집을 잊고 살아야 하는 생활을 시작하잖아요

아마도 아빠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열심히 공부도 하고 노력해서 좋은 선장님이 될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여보! 집에 오는 길이 어떻게나 속이 허 한지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아서 큰애 더러 어머님을 모시고 나오라고 하고 식당에 들어가 매운 낙지 비빔밥을 해 치우고 집으로 들어왔답니다.

오는 길에 막내가 형이 친구들 한데 조금 아쉬운 소리를 했으면 벌서 직장에 들어갔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속상해하더군요.

해서 그런 소리 마라 몇 년 후면 형이 그 친구들보다 더 많이 벌고 앞서 있을 테니까 앞으로 5년쯤 있다 보면 형은 멋진 선장이 되어 있을 것이고 그러면 월급이 얼만 줄 아느냐? 며 내 마음을 위로(?) 하였지요.


-엄마 그렇게 될 거예요.

막내도 내 말에 맞장구를 쳐주고 어쨌든 또 한 사람의 항해사가 우리 집안에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보시어요

자식 조금 독하고 모진 구석이 있어야 되는데....

어쨌든 열심히 잘 할 것이라 믿고 다짐하며 일 년을 기다려 봅시다


당신도 둘째도 모두 나에게는 더 많은 기다림을 알게 하려고 그리고 그리움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려고, 아니지 희망을 안고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올 때까지 열심히 기도 해야 될 것이고 또 하나의 숙제가 생겼음을 그리워하면서 귀한 줄을 느끼며 살라는 우리 모두의 사랑을 확인케 하는 것임을


여보! 오늘은 여기서 안녕을 고 하고 또 연락할게요

늘 그리움의 대상인 당신께 당신의 아내가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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