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의 파티장

사냥 나갔다가 되돌아 와서 선수 마스트에서 쉬고 있는 갈매기들

by 전희태
01.jpg 날이 밝으며 사냥나간 갈매기들이 남겨 놓은, 밤을 지새우고 난 선수 갑판의 모습


Hydrographers Pilot 가 승선하여 순항에 들어선 배는 어제 오후 네 시경에 blossom point를 빠져 나오며 Great Barrier Reef 바깥의 산호 해로 들어선 후 밤을 새워가며 달리고 있다.


새벽 4시 좀 넘어 브리지에 올라가니 항로의 중간에 만나게 되는 좁은 구역도 벗어나서 안전한 해역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Diamond Islet가 있는 산호초 사이의 좁은 Diamond Passage 수로를 빠져서 완전히 산호 해의 가운데를 기분 좋게 달리고 있는 것이다.


선수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선수 항해등이 환하게 뒤로 비쳐지고 있는 게 아무래도 불청객이 찾아와 불빛을 난반사 시키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시간 반은 지나야 할 걸로 여기며 거주 구역의 외벽 보트 덱크와 연결되는 외부 통로를 왔다갔다하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열심히 새벽 운동을 시작한다.


엊그제 보름이 지난 음력 18일의 밝은 달이 서편 하늘에 떠 있어 어느 정도의 사물은 눈만 밝히고 달려들면 확인할 수 있어 한결 마음이 놓이는 어둠 속의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갑판으로 나가기에는 아직 이르기에 좀 더 두고 보기로 하고 계속 같은 곳을 맴도는 운동을 계속 하고 있다. 이마에 촉촉하니 땀기가 배어 나오면서 서늘하게 다가오던 대기가 어느새 훈훈한 느낌으로 마음을 바꿔주고 있다.


바람이 우현 쪽에서 불고 있지만 센 바람이 아니기에 좌현 쪽은 미풍으로 편안한 마음이 들게 한다. 어느 새 어둠에 익숙해졌다고 판단하며 우선 좌현 쪽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다가서는 갑판상의 사물이 어렴풋이나마 눈길에 잡히는데, 계속 앞쪽으로 나가는 귓가로 어디선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빵빵 하게 뱃속(선창)에 실어넣은(선적해준) 짐에게 무슨 할 이야기라도 있는 건지 아니면 너무 풍성하게 실렸기에 배 부른 게 트림이라도 돋우는 건지, 해치커버가 닫아 준 해치코밍 중에서 선체의 작은 횡요에 따라 삐걱거리는 마찰음이 5번창 앞쪽과 3번창 뒤쪽의 선창에서 계속 흘러 나오고 있는 거다.


안 그래도 4번창의 양현 전후방에 있는 4개의 발라스트용 윙탱크의 맨홀 부위에 용접 수리한 일의 결과가 궁금한 판인데 다시 그 부근에서 나오는 마찰음은 역시 이곳이 많은 응력을 받는 곳이란 걸 다시금 상기시키려는 것인가?


그러나 전반적으로 조용한 가운데 뱃전을 스쳐 지나는 물결의 움직이는 소리만이 간간히 침묵을 깨주는 일에 보탬을 주며 조용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발걸음은 어느새 선수에 도착하여 반환점으로 들어서는데 전장등(앞쪽 마스트에 설비 된 항해등)의 불빛이 법적으로 설비된 대로 앞쪽만을 비추는 게 아니라 바로 턱 아래의 내가 지나고 있는 선수루 갑판에 까지 빛을 내려주고 있다.


그 순간에는 아까 브리지에서 뒤로 비쳐지는 항해등을 보며 잠깐 짐작했던 일을 망각한 채 왜? 하는 급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 항해등부터 올려다본다.


항해등이 설비된 구조물의 옆 여기저기에 여러 마리의 갈매기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게 보인다. 앞쪽을 향해 비추고 있는 등불을 그 몸뚱이로 가로 막은 녀석도 여럿이 있다.


갈매기의 흰 몸뚱이에 난반사 된 밝음이 아래쪽으로 전해지니 주위가 뿌옇게 되어 밝아진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밤을 새우며 마치 우리 배를 하룻밤 쉬어가는 여인숙이나 아니면 모텔쯤으로 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이제 날이 새면 그 자리를 뜨겠지만 밤이 되면 다시 찾아 들 그들은 이곳 산호 해에 거주하는 진짜 주민인 것이니 그들이 본선을 쉼터처럼 이용하는 이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품으며 선수루를 돌아 내 갈 길로 다시 돌아선다.


한 바퀴를 다시 돌아 아까의 그 자리쯤을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내 디디려는 발길 앞 갑판위로 투둑 하며 무언가 하얀 점들이 갑자기 솟아오르듯이 나타난다.


느닷없이 나타난 서너 개의 동그란 하얀 점의 모습에 훔칠 놀라다가, 그것이 머리 위에서부터 떨어진 것이고 마스트에 앉아 있는 갈매기가 배출한 배설물이란 데 생각이 이르자 얼른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나기로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갈매기 똥을 맞으면 재수가 좋다는 우스개 소리 같은 말을 떠 올리다가 진짜로 오래 전에 한번 세례 받았던 기억까지 되살려 본다.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가 뜨끈한 감촉을 머리에 받았던 그 기억은 그렇게 유쾌한 되새김은 아니었지만 하필이면 나한테 하는 그 필연의 결과에 갸웃 둥 하던 의문은 아직 까지도 남아 있다.


녀석들이 이제 움직이기 시작할 모양이다.

새들은 하늘을 향해 날기 시작하려면 몸 속에 있는 노폐물들을 뽑아 버려 몸을 가볍게 하려는 습성이 있다는 지식을 어느 책에서 보았던가 아니면 들은 기억이 있어 그리 유추 해보는 것이다.

산호 해에 새벽이 깃들며 오늘 하루도 맑은 날씨에 잔잔한 하루가 될 것임을 알리는 먼동이 터오기 시작한다.


다시 두 바퀴를 더 돌아 앞쪽으로 가고 있는데 십여 마리의 갈매기 떼가 선수 하늘 위에 높이 떠올라 우리와 같이 항해에 나서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갈매기들이 잠자리를 벗어나 오늘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물고기 사냥에 나서려고 하늘로 날아 올라 힘찬 활공을 시작하고 있는 거다.


그렇게 연 이틀 밤을 우리 배의 선수 마스트에 깃들었던 갈매기들은 우리 배와 스쳐 지나서 산호해를 향해 남쪽으로 항해하는 다른 배로 옮기며 그들이 떠났던 곳으로 되 돌아 가버리는 일을 되풀이 할 것이다.


그렇게 갈매기가 잠을 잔 후 떠나간 선수루에 날이 밝은 후 다시 찾아 갔을 때 눈앞에 벌어진 광경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 환하게 빛나는 화이트랜드이다. 하지만 어딘가 떨떠름한 기분을 들게 하는 백색의 세계이다.


마치 무분별한 젊은이들이 방가로나 팬션을 빌려서 마음껏 놀이를 즐기고는 뒤치다꺼리 없이 떠나가버린 남은 자리나 다를 바 없이 어수선하게 흩으러 지고 뒤엉킨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토해 놓은 여러 마리의 날치들 모습이 여기저기 갈매기 똥으로 하얗게 도배 해놓은 갑판 위에 흩으러 진 채 뒹굴고 있다. 술 취해 토악질 해 놓은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씁쓸함을 전해준다.


갈매기가 뱃사람들의 오랜 친구라는 우리의 믿음에 살짝 회의를 품게 만드는 화이트랜드의 눈부심에, 한참은 물로 때려내야 할 갑판 청소를 떠 올리며 절로 눈쌀을 찌프린다.

090806-E2_0031.jpg 왜 인지 모르지만 갈매기가 토해 놓은 날치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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