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보름달이 허공에 걸려있네요
그러고 보니 내일이 당신의 생일 이군요. 하고 인사를 하려 다가 아니지 그곳은 이미 오늘로서 맞이한 날이 되었을 터이니 오늘이 생일이지 라는 깨달음에 아차! 합니다.
50도가 넘는 고위도 해역을 대권으로 항해를 하다 보니 매일 같이 시간을 당겨야 하고, 목적지가 서머타임까지 쓰고 있는 캐나다 밴쿠버이니 더욱 급하게 시간을 당기느라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띵하니 졸음이 오는 것 같은 느낌으로 하루 종일이 피곤한 요즘입니다.
게다가 날짜변경선을 동진으로 넘었으니 서반부에 들어서며 같은 날을 되풀이하여 사용하게 되어 아내의 생일을 챙겨본다고 따져 보았으나 이미 아내는 생일을 맞이한 상태로 한낮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라 미리 인사한다고 나오려던 인사말은 거두어 주기로 했다.
황천 속 항해를 힘들어하며 언제 이 지긋지긋한 파도 밭을 벗어날까? 조바심을 치던 며칠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뒷 파도로 물러가 주며 환한 달빛마저 찾아와서 내일모레가 추석이라는 명절임을 일깨워주는 이 분위기에 잠시 마음을 풀어주며 집에 보내는 편지를 쓴다.
한가위가 당신을 힘들게 하지는 않는지요?
내가 있는 이 곳에서는 모처럼의 당신 생일날이지만 그곳 당신은 이미 생일을 지나쳐 버린 날짜변경선 너머에 있으므로 이제 본격적인 한가위의 분위기에 힘들어 있는 건 아닌지요?
너무 열심히 일하여 명절날 후유증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자식들이 한 놈이라도 일을 내었으면 그만큼 당신이 편(?) 해지는 건데라고 생각도 해 보지만, 요새 아이들은 그렇게 우리들 생각 마냥 호락호락하니 일에 빠져 들지도 않는 모양입디다.
연중 가장 풍성하고 아주 살만 한 계절이긴 하지만 그렇게 때문에 이 시기에 스트레스를 왕창 받아 헤어지는 사람들까지도 종종 생긴 다니 참 세상은 아이러니한 곳이기도 하네요.
우리네 야 그럴 리 없지만 서도 이런 좋은 명절 때만 되면 오히려 안 만나고 있던 친척들까지 만나면서 괜스레 꼬투리 잡고 잡히는 일을 만들어 티격태격하다가 결국은 골 깊은 벼랑 끝까지 내몰리어 인생을 파투 내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종종 뉴스에서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이죠.
어느 해던가 정초 연휴 때 당신과 같이 여행 중에 속초 중앙 성당의 미사에 참예하였을 때, 신부님이 강론 대신에 설날이라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과 쓸데없는 말다툼을 하지 말고 편히 잘 지내라고 부탁하시던 말씀도 생각나네요.
그런 게 소위 명절 후유증이라고 이야기하는 일 때문에 생기는 것이겠지요.
잔뜩 음식을 장만하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육체까지 피곤해진 여자들의 입장은 생각해주지 않고 입만 놀리며 약 오르는 소리만 하는 친척 특히 남자들이나 웃어른의 태도가 우선 문제겠지요.
극도로 피곤해진 여자분들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고 수습하기 힘든 말까지 튀어나오게 되면 결국은 도로 담을 수 없는 말의 형편상 점점 더 상황을 어렵게 하여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겠지요.
어쨌거나 우리 집은 이런 때 멀리 길을 떠나면서 찾아봬야 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게 그나마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다행이기도 하지만 대신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동생네 들로 분주함 역시 당신께 신세 져야 하는 미안함이네요.
우리 배는 그동안 계속 저기압과 같이 움직이며 바람과 파도를 주위에 껴안고 달렸는데 이제 그 저기압이 역시 자신들의 쓰레기통인 알래스카 만에 도달하며 슬그머니 수명을 다해가면서 가려져 있던 달도 나타나게 도와주니 이번 보름달은 잘 구경할 걸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지요? 기왕이면 추석다운 둥근달을 보며 즐겁게 보내시길 축원합니다.
우리 선원들은 일본을 떠난 후 지금까지 휴일도 없이 선창 청소에 매달려 이 시간에도 선창에 들어가서 철판을 두드려 녹을 털어낸 후 또 페인팅으로 마무리 작업을 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결과가 아주 좋게 나타나서 무사히 짐 싣기에 적합하다는 판정으로 검사에 합격이라도 하면, 그 기분 좋은 결과에 대해서 그만큼 이익을 보게 되는 회사에 우리 선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작은 위로금이라도 주십사 요청해 볼 작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할 일이란 것을 따져 보면 이런 것을 잘해서 선원들이 기분 좋게 일을 하며 능률을 올리게 하는 게 아닐까요?
꼭 그렇게 내 생각대로 모든 일이 잘 풀리길 바라며 대리점에 5일 새벽 0시에 도선구에 도착한다고 전보를 넣었습니다.
당신도 방문해 본 적이 있는 캐나다 밴쿠버에는 그러면 5일 오전에 도착하여 모든 일이 진행될 예정이랍니다.
여보! 오늘은 여기 까지로 당신의 65세 생일을 기억했다는 내 마음을 보내는 것으로 소식 전함을 접어 두겠습니다. 늘 건강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