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2-

by 전희태
091209-0151.jpg 와! 뚜렷한 족적을 남겨주는 저녁노을이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카드 같이 하늘에 떴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손자 녀석 봐주고

저녁에 집에 와

하루를 마무리하고

자려다가


문득 오늘이 12월 8일,

H.T의 생일이란 생각이 들어

늦은 시간이지만

컴퓨터를 켰네,


그리고 생일 축하하네!


집 떠나서 모든 것이 여의치 않겠지만

조촐하게 생일상이라도 치렀는지?


객지 생활, 각별히 건강에 유의하게!

보고 싶네,

언제쯤 배에서 내리는지

기다려지네


아무튼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하네!

나의 일상은 다음에 소식 전하겠네

잘 있게....


-시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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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을 훌쩍 넘어선 지기, K 한테서 또 다른 생일 축하 편지가 짤막하지만 정이 흠씬 묻어나는 향기를 머금고 전달되어 왔다. 그 친구 K와의 인연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단기 쌍팔년도(서기 1955년, 단기 4288년) 초봄.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아 한자리에 모이게 된 전국 각지의 까까머리들이 처음 모인 운동장에는 햇볕이 따스하게 내려 주고 있었고, 고개를 들면 올려다 보이든 남산의 모습은 유난히도 따스하고 정다워 보였었다.


중학생이 되어 차려입은 교복이 아직은 몸에 익지 않아 거추장스럽게까지 느껴졌지만 그래도 그 옷과 모자가 갖고있는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교복이요 교모라는 생각은 어린 마음에도 흐뭇했던 기억으로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추억이다.


김 군과는 그때 같이 그 학교에 입학하면서 안면을 터서 친구가 되었으며, 6년 후 대학은 서로 다른 곳으로 갔지만 계속 왕래하면서 이 나이가 되도록 서로의 안부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울 뿐이다.


당장 답장을 썼다.


생일 축하해 주심. 아주 고맙게 여기네.

잊어버린 채 살고 있었던 생일이었는데 분명하게 일깨워 주었군요. 진짜 고맙네.


그래도 그렇게 기억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역시 내가 복이 많은 사람이라 크게 말해도 될 일이라 한번 어깨를 으쓱해 봅니다.


손주 놈을 어르며 한가하게 사는 생활. 우리들 세대가 가장 그럴듯하니 바라는 노후의 풍경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부럽습니다.

이미 겨울에 들어서서 아침과 저녁의 기온차가 많이 달라 있는 요즘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복중에도 으뜸 복일 겁니다.


손주 이야기를 꺼내 놓고 보니 내가 소싯적에 너무 욕심을 부려서 지금 같은 신세가 된 건 아닌가?

우문의 자답을 해 봅니다.

당시 우스개 소리지만, 원시인이냐? 는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세 놈이나 낳았는데 지금에 와서 그 녀석들 중 아직 한 놈도 성사를 못하고 있는 중이라 현 세태의 풍조가 너무 겁이 나네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 고 떠 들던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이미 내리막길 풍조에 들어선 우리나라의 출생비율이 너무나 막막한 미래를 느끼게 해 주네요.


까짓 거 우리네 살아생전 에야 크게 그 영향을 받지 않을 거니 괜찮을 거라고 비틀어 봐도,

우리 자식들 세대는 그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 같네요.


나는 그런 피해를 볼 자식을 셋 씩이나 낳아서 아직까지도 데리고 있으니.....라고 한탄하기에는 쪽 팔리는 이야기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승선기간이 6개월째를 넘어서니 어느새 하선해서 집에 가 좀 쉬고 싶은 생각이 들고 있네요.


앞으로 예상되는 이 배의 스케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고, 지금은 호주를 가고 있는 데도 가는 길이 꽤나 신경이 쓰이는 TORRES 해협을 통항해야 하는 게 있어서, 역시 많은 스트레스를 나한 테 주고 있지요.


추위는 좀 피하여 내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마음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네요.


이번 항차 끝나면 내년 1월 중순경 정기 수리를 위한 드라이 독킹이 중국에서 있는 데 그때 마음을 정해야 될 것 같네요.


자 가까운 장래에 만나게 되는 기쁨을 고대하며 오늘은 여기서 작별의 인사를 하려네. 그 집 양주분들 모두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씨. 저니호에서 H.T.-


(실은 이 편지를, 야 인마! 이러쿵저러쿵하며 마구 떠들듯이 쓰고도 싶었었다.

하지만 가깝고 친한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그 시절에 배웠던 덕목으로 인해 글을 조심스레 진행시키며 적어 보낸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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