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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Jan 04. 2019

차항을 향해 달리는 여정에서 만난 배들

 열심히 달리고 있는 배의 전 운전상황을 컨트롤하는 장소인 브리지에서 선수 쪽을 내다보는 풍경.


 배는 시속 15.5 Knot라는 범상치 않은 속력으로 신나게 달리고 있건만, 그리 되도록 본선을 조종하는 모든 책임을 이행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 심정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은 앙금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아직까지도 화물을 얼마나 실어야 하는지? 선적항에 도착하는 즉시 접안을 하는 건지? 아니면 기다려야 하는 건지? 를 확정 짓지 못한 채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요 근래 PSC로 꽤나 시끄럽게 느끼고 있는 호주의 항구 중 한 곳인 DARLIMPLE BAY를 찾아가는 것이기에 우리 배뿐만이 아니라 회사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잘 해내기를 간절하게 요청하는 분위기이니 적지 않은 부담감에 짓눌려 있는 셈이다.

항해 중에도 선창 청소를 위해 해치커버를 열어 놓고 청소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더 하여 다음 짐을 싣기 위해 선창 청소도 해야 하고, 발라스트도 모두 심해 구역에서 바꿔줘야 하는 일로 바쁘지만, 이런저런 점검 결과를 가지고 부분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작업까지 늘어나니, 밤을 낮 삼고 휴일도 모른 척 챙겨주지 않고 일을 시키건만 너무나 빠듯한 시간이다. 

 내일쯤 에는 접안 계획에 대해 한번쯤 대리점에 문의해 볼까 했는데 마침 이멜이 도착하는 신호음이 통신실에서 들려온다. 얼른 전문을 수신을 하여서 그 내용울 열어본다.


<27일 도착하면 투묘 대기하다가 5월 3일쯤에 접안할 계획>이라는 접안 예정시간의 통보이다.


  -와아~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네.

 절로 나오는 기쁜 환성의 목소리를 낸다. 늦어지는 접안 예정으로 인해 사전 점검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짐을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해치커버 구동장치의 수리를 모두 마치고 들어 갈 수 있다는 시간 벌이가 가장 기쁜 일이고 더하여 훈련을 한번 더해서 손발을 더욱 능숙하게 맞추고 보트-구명정-훈련도 실제 내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더욱 흡족한 마음으로 다가선 것이다.


  어찌 보면 일분일초라도 내 생애의 아까운 시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나이 든 세대로 변모되었으니 그렇게 지나가버리는 모든 시간을 덧 없이 아까운 생각으로 파악해야 할 건데, 그러기에는 당장 눈앞에 닥치는 일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시간 벌이가 되었다는 점 하나로 그냥 기뻐하는 마음 되어 좋아라 하고 있는 거다.


  그래 시간의 양만 늘어나는 것을 좋아라 할 게 아니라, 갖게 되는 시간의 질이 마음에 들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정말로 잘 살아가는 것이겠구나! 하는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이번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하고 무용한 별 것 없는 시간이 아니라 바람직한 시간이로구나 되짚어 보게 되면서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흡족해진 마음으로 도착 후 투묘 대기기간 동안에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 궁리를 해보려는데, 우리 배의 우현 앞쪽에서 열심히 흰 와류를 뱉어내며 달리는 파나 막스 형 배가 눈에 들어온다.


 새벽녘에 우리 배 앞에 나타난 배인데 속력이 현재 15.4 Knots이지만, 우리도 덩달아 받아가는 조류의 도움으로 지금은 16 Knots 가 되어 있기에 시간당 0.6 Knots 정도 따라잡고 있는 중이다.

  

 사실 그 배는 행선지가 우리와 같은 호주가 아니라 인도네시아로 향하고 있는 배라서 심적으로 악착같이 따라잡으려 하며 달릴 필요가 없는 상황이지만, 일단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으니 알게 모르게 시합이 걸려 버린 상황처럼 되었기에 양쪽 당직 사관들의 마음속에는 상대에 대한 경쟁심이 발동해 있으리라.

  마침 짐을 잔뜩 실은 광탄선 한 척이 그 배와 우리 배 사이로 침로를 잡고 거슬러 올라온다. 

같이 달리고 있는 배들로 속력 차이가 별로 없으니 상대 위치의 변화도 미미하여 계속 가까이 붙어서 달리는 모습인 우리들 두 선박의 가운데를 반대의 침로로 들어서 오는 배다.

 빠른 속력으로(양쪽의 속력이 합친 셈이니) 다가와서 우리 둘의 사이를 갈라놓고는 어느새 뒤로 빠져 우리가 지나온 위치를 휑하니 지나쳐 멀어져 가고 있다.

<FLARE>라는 지나가버린 배의 이름을 음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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