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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Feb 11. 2019

아들과 동승하게 된 CS AZALEA

둘째 아들과 함께


많은 세상의 아버지들 중에는 아들과 함께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적잖이 있을 것으로 짐작은 해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이 만들어 온 일을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과정에서 함께하는 형태를 이루는 것이지, 우리들 선원들 같이 하루 24시간 언제라도 얼굴을 볼 수 있는 한 공간(직장)에서 같이 밥을 먹고 자며 근무가 진행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라 여겨진다.


 앞으로 최소 여덟 달 정도는 승선 근무하려고 찾아온 배다. 아들이 승선 중인 배 인 줄을 알면서도 끝까지 사양하지 않고 배승 받은 입장이 좀 그렇긴 하다.


 남들 보기에 호기심이 드는 이상한 경우로 비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회사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결정한 승선이지만 어쩌면 우리 해운 계에서도 흔하지는 않은 한 가지 이야깃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집을 떠나올 때 그런 모든 점을 감안하면서 어쩌면 이런 케이스는 이례적인 일이라서 누가 인터뷰라도 하자고 요청받을 수도 있겠다는 지레짐작마저 해보며 실소하기도 했다.


 아직 이 배에 적응하려면 얼마간의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우선 안착했다는 소식을 해두기로 하여 이멜 주소를 가진 모든 친구들을 수신인으로 하는 편지를 내보내었다.

                                              둘째 아들과 함께.


 어찌 지내시고 들 계신지요?                                   2010.11.20


 항상 떠나는 발걸음은 누군가에 등 떠밀리어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은 상황인지라 이번에도 지난 16일 새벽에 집을 떠나 김포까지 지하철로 가서, 부산행 비행기를 타면서 쫓기는 듯한 심정으로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배웅 나온 집 식구에게 등을 보이며 공항 승강장 안으로 사라져야 했을 때, 더 이상 따라 들어올 수 없는 그녀에게 뒤돌아 다시 한번 눈길을 주지 않았다고, 나중 부산 도착 후 전화했을 때 항의(?)하든 아내의 심정에, 애틋해지는 이별 때문에 뒤돌아 보지 않고 들어가 버렸던 내 마음을 설명하지 않은 채 그냥 되돌려 반추만 했지요.


 그렇게 떠난 서울(김포)이었고 도착한 부산(김해) 공항이었습니다. 마침 날씨는 쾌청하여 이번에는 나고야행 국제선으로 갈아타고 배가 접안하고 있다는 일본의 Kinuura 항을 향해 떠난 거지요.


  기장의 기내 안내 겸 인사 방송에선 행선지 나고야에는 구름이 낀 흐린 날씨라고 했는데 막상 착륙한 나고야 공항은 의외로 밝고 맑은 날씨로 맞이 해주어 그냥 이번 배에서도 즐겁고 순탄한 생활이 주어지겠구나 지레짐작해 보며 즐거워하기로 했습니다.


 공항에서는 팻말을 들고 기다리고 있던 대리 점원이 우리들 교대자 다섯 명을 인솔하여 차로 한 시간이 걸릴까 말까 하는 거리를 달려 부둣가 통선장에 도착했고 거기서 다시 통선으로 갈아타게 하더니 기누우라 곡물 부두에 접안하고 있는 배 CS AZALEA 호에다 데려다주더군요. 


 이제 여기서 둘째 애를 만나야 하는 상황인데, 오후 세시쯤 도착한 배의 현문에 올라설 때에 둘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마중을 하며 짐을 방에다 옮겨주더군요.


 기다리고 있던 하선 할 선장과 교대를 위한 모임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녀석을 보게 된 것은 밤 시간으로 접어들던 저녁 일곱 시가 넘어서였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 함께 일하는 직업을 가지고 한 직장에서 일한다는 게 어찌 보면 쉬운 일인 것 같지만, 남들 보기엔 또한 묘한 어려운 일이 있어 보이는 상황을 감지하여 처음 녀석을 볼 때는 어색한 기분도 들었지만 그냥 무시하고 웃으며 안부를 물은 후 수고하라는 말로 일단 끝맺음을 했지요.


 그렇게 일반적으로 처음 만남을 갖는 선장과 3 항사처럼 대면하는 순간으로 택했고, 녀석도 깍듯이 선장님이라 호칭했지만, 나중 둘이 있게 되었을 땐 역시 아버지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더군요. 


 그렇게 벌써 나흘째의 시간이 지나고 있습니다.


 이번 배는 그동안 타던 배들과는 비교가 안되게 적게 느껴지는 적화량 5만 톤 급의 배로서,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옥수수를 싣고 와서 이곳 일본 나고야의 부속항인 기누우라에 도착해서 양하 작업을 하고 있더군요.


 어지간해선 오버타임 워크를 안 하는 일본의 관행인지라 저녁 5시만 되면 작업을 중단하고 퇴근해버리는 때문에 우리 선원들은 아주 편한 맘으로 정박 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작업이 끝나면 다시 발보아(파나마 운하의 태평양 쪽 항구) 쪽으로 향하라는 용선주의 지시 밖에는 더 들은 게 없어 우선은 모든 작업이 끝나는 22일경 그쪽을 향해 약 8,118 마일의 항정에 들어 설 예정입니다.


 이제 집 떠난 지 겨우 나흘째에 접어들고 있지만 마음은 꽤나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네요. 그새 댁내에는 별 일 없이 모두가 건강하시고 즐겁게 지내시겠지요?


 우선 이렇게 무사히 도착하여 새 생활에 빨리 적응하며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로 문안 인사를 보냅니다. 출항 후 시간을 내어 다시 항해 일지를 써서 보내도록 하지요.


 한번 쓰는 걸로 여러 친구들에게 소식 보내는 게 혹시 예의가 아니더라도 그냥 접어주시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주소서.


 그리고 항상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다시 만나 뵙기를 기원합니다.

 CS AZALEA (씨에스 아젤리아)호 에서 전 선장이 보냅니다.


기누우라 곡물 부두에 접안 중인 CS AZALEA호


콩을 하역 작업하고 있는 모습

 

배가 작업을 쉬고 있을 때, 서쪽으로 지는 해가 만들어 내는 황혼의 모습


밤바다로 변화하는 건너편 부두에 불빛이 휘황찬란하게 비쳐 나오기 시작한다

 .

새벽의 여명이 하루를 시작하는 공장의 굴뚝에서 나오는 수증기 섞인 연기를 검게 비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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