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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Feb 12. 2019

비 때문에 늦어지는 출항

겹쳐진 출항지연 사유


친우 문어~, 당신의 빠른 답장에 깜짝 놀라며~ㅎㅎㅎ  나 또한 빠르게 답장을 써 보내네.


<오늘 저녁이면 꼭 떠날 예정이었던 게 비가 내리는 바람에 작업을 못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일은 일본의 국경일이라 쉬게 된 다니 결국 모레 오후로 출항 시간은 늦어질 거고….. 이거 열 받아 죽겠군.>

위 마지막 말은 우리 배를 빌려서 돈벌이를 하고 있는 용선주의 입장을 그래도 점잖게(?) 표현해 본 것이라 네. 


 그 상황을 본선 선원들 심정으로 풀이해 본다면 아마 이럴 거라 생각하네.

 <오늘 저녁이면 출항하는구나! 약간 긴장하고 있었는데, 반가운 비 님이 작업을 말려주어, 그만큼 늦어진 것도 꽤 괜찮은 일인데, 내일은 이 동네 국경일로 휴업한다니 덩달아 하루 더 쉬는 게 훌라판에서 아주 그럴듯한 패를 잡은 거보다도 더 기쁘구먼. >


 -배를 타면서 이렇게 휴일을 연달아 즐기는 일도 참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아 한 번 해 본 우스개 소릴세. -


 배야 항상 분주하게 움직이며 생활해야 하는 게 돈 버는 일인데, 쉬는 것만 챙기는 것 같은 태도가 좀 야박하게 느껴지겠지만 사실 한번 항해에 나서면 몇 번씩 만날 수 있는 황천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좀 편하게 쉬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 게다가 사실 이렇게 쉬는 시간은 이미 용선계약이 성립되어 지나가는 시간 이므로 용선주에게는 아까운 돈 나가는 시간이지만, 용선주에게 배를 빌려준 우리 회사로선  돈 받고 흘러가는 시간이니 그들한테 녹을 받아먹는 본선 선원들로서도 회사에 손해 끼치는 시간 허비는 아닌 셈인 거지.


 이번 항해는 용선주의 지시대로 미국을 향해 떠나는 걸로 일단 목표를 잡고 있다네, 아직까지 정확한 행선지가 결정되지도 않은 상황이라 막연히 그쪽을 향해 항해를 하다 보면 들려야 할 곳이 결정되어 통보되어 오겠지.라는 상태로 파나마 운하 쪽으로 가려하고 있다네.


 일단 항해만 시작하면 최선을 다해 항해의 완성을 이룰 것이란 다짐을 스스로에게 하는 입장이니, 이 쉬는 기간도 재충전하는 유용한 시간으로 보내는 셈인거지.


 일본 나고야 이세만 안에 있는 항구 <기누우라>항에서 이렇듯 팔자 좋은 소릴 하며 기다리는 동안,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우리의 메달 경쟁은 어찌 진행되고 있는가? 하는 궁금증은 선식 회사에서 보내주는 뉴스로 갈증을 풀고 있다네.


 대리점이 갖다 주는 영자신문인 Japan Times나 일본 텔레비전 방송 모두 광저우 아시안게임 소식엔 입을 싹 닫고 있는 것 같아 보이어 우리나라와는 좀 다른 정서에 놀라는 마음도 든 다네.


 어쨌거나 그들의 태도가 그렇더라도 우리가 금메달뿐 아니라 전체 메달 수에서도 일본을 이기고 있다는 상황은 한국인인 내게는 기분 좋은 즐거운 소식으로 다가서고 있지. 


 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야구가 금메달을 따게 되어서 추신수 선수가 병역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 이번 행사에서 가장 인상 깊고 뿌듯한 일로 치부하고 싶다네.


 그 친구와는 일면식도 없는 전연 모르는 사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가 혜택을 받아 중단 없이 미국에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국익에도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 


 어려운 군 문제가 있어도 끝까지 국적을 포기 않고 한국인 선수로 야구를 하고 있었다는 그 자체에 믿음이 가고 그렇기에 그가 번 돈도 우리들의 조국인 한국을 위해 조금의 보탬은 될 수 있지 않을까? 비약 같지만 결코 비약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그뿐인가 그의 이름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그만큼 세상에 더 알려질 수 있는 계기가 확장됐다고 생각한다면 이번에 받게 되는 군 면제는 당연한 보상이라고 해도 되지 않겠나?


 세상 내로라하는 놈들 -지금 우리 나이쯤 되면 거의 비슷한 연배로 봐도 될 터이니 막말로 하는 거네- 중엔 방위도 제대로 안 하고 군 면제를 받고서 승승장구하던 꼴불견의 인물들이 무슨 청문회 때만 되면 줄줄이 나타나던 풍토에서 이제는 헤어나야 하지 않겠나?


 군 면제라는 제도가 그야말로 누가 봐도 꼭 필요하고 마땅한 자격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공평한 일이 될 때 우리나라도 참으로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네.

 구시렁거리는 소린 이만큼 하고~


 지금 창 밖으론 우리 배를 떠나지 못하게 잡아준 비가 아직도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네.

뿌연 안개 같은 시정(視程)을 동반하여 내리고 있는 비를 보며 마음은 오히려 착 갈아 앉고 있다네.


 이미 시심(詩心) 같은 거야 세상 밖에 던져진 늙어가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침샘을 자극하는 애틋한 감성이 꿈틀거리어 카메라를 들고 그 모습을 담아보려 했다네.


 마음에 흡족하게 드는 장면은 그려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몇 컷을 찍어 본 후 방으로 와서 답장을 이렇게 쓰며 오늘 오후는 보내기로 했네.


 자 결코 따분하게 지내시지 말고 열심히 뛰고 구르며 우리들의 여생을 즐겨 보세나.

언제나 다시 만날 때도 여전할 친구들의 건강과 즐거움 에다 건배를 청하며~

 2010.11.22 씨에스 아젤리아호에서 H.T 가.


선체 위로 촉촉하게 내리고 있는 비

 가라고 등 떠미는 가랑비가 아니라, 있으라고 붙잡는 이슬비이련가? 

내리는 빗줄기 따라 마음도 같이 차분하게 젖어든다

 낙화물인 곡물을 주워 먹느라고 바빴던 비둘기, 까마귀도 비 때문에 어느 구석에 숨었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배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FLYING DECK에서 선수 쪽을 내려다본 모습.
브리지 갑판에서 내려다본 선미 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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