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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Feb 18. 2019

잊을 수 없는 선물

기 막은, 기막힌, 기막혔던 선물



 몇 년을 두고 발행한다 안 한다 하던 고액권 중 5만 원권이 발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 생겼나 궁금해하던 K 씨가 모처럼 위성전화를 집에다 걸면서 한마디 부탁의 말을 하였다.


 -여보, 다음 교대자 편에 5만 원짜리 신권을 보내주어 나도 구경 좀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새로 발행된 고액화폐를 보고 싶다고 집에다 말을 한 K 씨는 국내 기항은 하지 않고 세계의 항구를 넘나드는 외항선에서 혼승으로 꾸려져 있는 필리핀 선원들을 지휘하며 갑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60대 초반의 중후한 뱃사람이다.


 시간은 저 혼자 흘러 그런 부탁의 말을 집으로 했다는 것조차 잊어버릴 만했을 무렵, 교대자와 함께 회사가 보내 준 선용품과 선원 가족들이 부친 개인 물품이 같이 배로 전달되어 왔다.


 갑판장 K씨도 집에서 부쳐준 물건을 받았지만 책 한 권과 옷가지 몇 점 그리고 양말 여섯 켤레가 전부였다. 


  -이번에도 5만 원짜리 돈 이야기는 잊어버린 모양이지 쯔쯔쯔…


 그러면서도 보내온 옷을 입어 몸에 맞춰 보느라 잠시 수선스런 몸짓을 해본 후 짐을 치워 놓았다.


 마침 그날 저녁 식사 후에, 다음날 아침이면 이 항구에서 교대하게 된 장기간 승선했던 필리핀인 선원들이 연가를 받아 하선하게 된 이별의 인사를 하러 갑판장 K 씨 방으로 찾아왔다.


  그간 같이 근무하면서 말도 잘 들어주었고, 일 역시 깔끔하게 처리해 주던 정분을 생각하여 무슨 선물이라도 주었으면 좋을 텐데… 하다가 집에서 보내온 물건 중에 마땅해 보이는 물건 생각이 들어서 얼른 짐 뒤짐을 하여 양말을 꺼내 들었다. 


  한 켤레 씩 나누어 주며 별건 아니야~ 하였지만, 석별의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어 흐뭇해진 마음으로 그들과의 인사를 마쳤다. 


그렇게 밤이 지나며 이별해야 할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그간 일 년 넘게 승선하여 크게 부풀어질 수밖에 없는 짐 보따리를 밀고 당기며 현문에 나타난 하선자들은 드디어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나누기 위해 마음과 행동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계속 승선으로 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배웅을 해주려 줄지어 서있는 사이를 비집듯이 빠져나가며 현문 사다리로 향하던 필리핀 하선 선원들은 모두 갑판장 K 씨 앞에 서서는 한 사람 씩 나서서 부둥켜안아가며, 


  -갑판장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하며 아쉬움을 토로하는데 전부 눈물을 글썽이며 격양된 모습을 보인다. 


-어 그래 잘 가, 모두 건강하고… 

 갑자기 이별의 아쉬움이 커지는 바람에 당황하면서도 갑판장 K 씨 역시 포옹하여 등을 두드려 주던 손사래를 거두면서 눈가로 배어 나오는 눈물을 얼른 훔쳐주곤 다음 사람과의 포옹을 계속해야 했다.


 이어 출입문(현문) 사다리를 내려선 하선자들은 기다리고 있던 미니버스에 부산스러운 모습으로 올라타면서도 다시 열심히 손을 흔들어 아쉬움을 달래준다. 


 드디어 시동 걸려있던 차가 조용한 몸짓으로 남은 자와 배를 남겨둔 채 굴러가기 시작한다. 


  저만큼 부두 밖을 향해 빠져나가 시야에서 사라져 갈 때까지도 현문 앞에 옹기종기 남아 있든 승선자들은 계속 손을 흔들어 이별의 아쉬움을 덜어내고 있었지만, 실인 즉 자신들의 연가가 이번이 아님에 애석 해하는 아쉬운 바람도 들어 있는 거다.


 방으로 돌아온 갑판장 K씨도 심난 한 마음에 하릴없이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엊저녁 양말을 나누어 주려 짐 뒤짐을 할 때 흘깃하니 무언가 보았던 것 같은 기억이 떠올라 짐을 다시 뒤져 보기로 한다.


 잠시 후, 기억은 틀리지 않아 접힌 쪽지를 찾아내었고, 곧 펼쳐 들면서 차분히 읽기 시작한다. 


  OO 아빠 보세요.

건강하니 잘 지내시겠지요?

-짐을 부치면서 적어 넣어 준 아내의 편지 서두는 그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하며 덧 붙여 있는 말.

-양말 속에 넣어둔 5만 원짜리들은 잘 구경하셨나요?


- 어~허..................

 무슨 신음 소리를 냈다든가? 하여간 이런 이야기를 하던 때의 갑판장 얼굴 표정은 지금도 선하니 내 뇌리에 남아 있다. 


 그러나 어느새 아쉬움은 사라져 버리고 뿌듯한 포용력이 자랑스럽다는 심정으로 내 비친 표정이 그의 얼굴에 남아 가고 있었음을 덧붙여 줘야겠다. 그래서 외쳐준다.

멋진 갑판장님 파이팅!!!

사진은 본선의 2010년 11월 하순 일본에서 교대했던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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