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난 승선 생활 중이던 이번 항차, 집에 있는 아내와 주고받은 소식을 기록으로 남겨, 우리가 변치 않는 가족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은 마음에 앞으로 몇 번에 걸쳐 여기에 사연을 올리기로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 받을 준비를 했지요. 2010.12.08
눈을 뜨니 새벽 3시 반이더군요. 너무 이른 시간이지만 우리나라 시간으로 따진다면 새벽 4시 반이므로 당신이 내 생일 축하로 준비해 준 행사가 있을 시간을 얼마 안 남겨둔 셈이라 그냥 깨어 있기로 했습니다.
사실 다시 잠이라도 청했다가는 서울 우리 동네 성당의 새벽 첫 미사 시간을 재차 잠들어 넘겨버릴 것 같은 우려에 그냥 일어나 버티기로 한 거지요.
하루에 50단을 채우기로 스스로 약정한 묵주 기도를 기억해 내며 그냥 묵주부터 집어 들었습니다.
여기 시간 5시(서울 시간 6시)에 아직도 어둠이 내려앉아 있는 브리지로 올라가서 윙 데크 돌기를 시작하면서 묵주기도를 계속하였습니다.
지금 쯤 우리 성당에서는 당신이 봉헌해 주신 생미사에서 신부님이 나와 둘째의 본명을 불러 축복을 청함도 시작되어 새벽의 신선한 공기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걸 내 마음과 몸속에 느껴 받으려고 온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미사 참여를 하고 있는 당신과 큰 아이의 아멘! 하는 소리를 그 안에서 들어 보려는 마음에서 두리번거리기도 했지만, 여기는 출렁이는 뱃전을 치는 파도 소리만이 들려오는 필리핀의 내해랍니다. 그 파도 소리를 여러 사람들이 크게 외치는 아멘! 이란 우리의 믿음을 강조하는 성원의 소리로 들을 작정을 하니 또 그렇게도 들려지네요.
한결 가쁜 해진 몸과 마음이 되어 우리 성당의 미사 시간을 기쁘게 맞이하고 보냈습니다.
이윽고 아침 일과 시간이 다가온 후, 나는 아침 식사를 하였지만 3 항사인 둘째는 아침을 거른 채 당직을 선다고 브리지로 향하더군요.
어차피 오늘의 그 애 당직 시간은 내가 계속 브리지에 머물러 선위를 지켜보며 통항해야 하는 좁은 수로가 많은 곳이기에 나도 곧 둘째를 따라 브리지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통신실에 들려 이멜을 열었을 때 당신이 바쁘게 써서 보낸 편지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고 이어서 멀리 미국에 있는 친구 HSS군의 내 생일을 축하한다는 이멜 역시 들어 있더군요.
이렇게 축하해주는 사람들 속에 맞이 한 생일이니 마음으로 나마 푸짐한 감사의 염을 가지며 대단히 고맙다는 인사를 되돌려 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자! 집에서는 이제 내가 빠져나간 자리도 잘 메꾸어 나가며 또 그런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으며 안정된 생활에 들어섰으리란 걸 믿으며 어쨌건 그런 모든 일의 중심에서 씩씩하게 잘해 나가는 당신한테 <사랑합니다.>라고 외치고 손뼉 쳐서 응원을 보내 드립니다.
우리 배의 예정은, 11일 아침 녁에 도착하면서, 9시에 도선사가 타고, 부두에는 10시 반 정도에 접안하게 되고, 오후 1시쯤부터 작업에 임하는 거로 연락이 오네요. 아직까지 차 항차에 대한 예정이 나오질 않아서 궁금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마땅하고 좋은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 믿는 답니다. 여러 사람들이 축복해 준 덕이 찾아들 테니까요.
오늘은 우선 여기까지 하고 또 짬을 내어 입항하기 전에 소식 보내도록 해야겠지요.
언제나 건강하시고, 어머니에게 푸짐한 안부의 인사 부탁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H.T가 CS.AZALEA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