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아마 '익숙함을 끊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스마트폰 사용 같은 물리적인 익숙함일 수도 있고, 사람과의 관계처럼 감정적인 익숙함일 수도 있다. 익숙함 덕분에 몸과 마음이 편하고 좋을 때가 많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낯선 것에 도전해야 할 시기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과 위로 때문에 익숙함을 떠나보내는 일은 항상 어렵기만 하다. 어쩌면 오랜 시간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익숙함에 머물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익숙함과의 이별'을 반복적으로 겪게 된다. 물론, 아이가 신생아일 때는 사실 '익숙함과의 이별'이라기보다는 '익숙해지기도 전에 이별'하는 삶이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육아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육아, 뭐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하며 여유를 찾는가 싶은 느낌이다. 하지만 한숨 돌리는 것도 잠시, 아이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그 속도에 맞춰 또다시 '익숙함과의 이별'의 순간이 밥 먹듯이 찾아온다.
양육자뿐만 아니라, 아이도 이별의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아이는 익숙함과의 이별을 어떻게 느낄까? 그 많은 익숙함 중에서도 공갈젖꼭지, 이름하여 '쪽쪽이'와의 이별이 아마 아이가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의 순간이 아닐까 싶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쪽쪽이를 통해 빠는 욕구를 채울 뿐만 아니라, 낯설고 두려운 상황에서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낮잠이나 밤잠을 잘 때는 말할 것도 업고, 보통의 삶 속에서도 아이는 쪽쪽이를 물고 빨며 마음의 위안을 느끼고, 복잡하고 불안한 세상에서 안정감을 얻는다고 한다. 그만큼 쪽쪽이는 아이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쪽쪽이를 물고 있을 수는 없다. 언어 발달의 지연, 치아 변형, 중이염 등 여러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또한 쪽쪽이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고, 독립성 발달을 저해할 수 있기에 아이는 쪽쪽이를 떠나보내야 할 시기를 만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아이가 6개월에서 12개월 사이에 쪽쪽이를 끊는 것을 권장하며, 늦어도 만 2세가 되기 전에 끊는 게 좋다고 말한다. 우리 아이도 이제 만 21개월이 되었고, 곧 다가올 3월이면 어린이집에 등원을 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 아이에게도 쪽쪽이를 떠나보내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실천은 어려웠다. 몇 달 전, 잠시 쪽쪽이 끊기를 시도했으나 늘 순하기만 하던 아이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오열 파티'를 벌인 것이다. 도저히 아빠 홀로 쪽쪽이를 끊기 위해 오열하는 아이를 데리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결국, 아내와 상의 끝에 긴 설 연휴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대망의 D-day가 다가왔다.
그날이 다가오기 전부터 아이에게 반복해서 설명을 해줬다. "이제 쪽쪽이가 엄마한테 가야 해. ㅇㅇ이도 엄마, 아빠랑 같이 있잖아? 그러니까 쪽쪽이도 보내줘야 하는 거야." 아이는 헤어짐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듯, '쪽쪽이가 가야 한다'라는 말만 나오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슬포..."라는 말을 뱉어댔다. 과연 아이도, 나와 아내도 잘 견딜 수 있을지... 그리고 그렇게, 쪽쪽이 없는 첫 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설마...'라는 생각은 '진짜'가 되어 나타났다. 아이는 잠들기 전까지 팔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해대며, 그간 참아왔던 온갖 짜증을 선보였다. 새벽에는 침대를 뛰쳐나와 또다시 오열 파티를 하더니, 엄마 옆에서 울다 지쳐 잠들었다. 그렇게 연휴 내내 아이는 자야 하는 시간마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 통곡을 하며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아이에게 쪽쪽이는 정말 세상 그 자체였고, 그 세상과 이별하기 위해 처절하게 아픔을 겪어내는 듯 보였다.
아이의 힘겨운 몸부림을 지켜보며, 나 역시 곧 '익숙함과의 이별'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바로 복직이었다. 2년간 집에만 머물던 내가 다시 직장 생활로 돌아가는 과정은 낯선 시간이 될 것이다. 특히 '조종'이라는 일은 몸의 감각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다시 조종간을 잡는 과정이 익숙하게 느껴질지, 아니면 낯설게 다가올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돌봐야 하는 아내가, 아빠 없이 평일의 낮과 밤을 보내야 하는 아이가 가장 큰 걱정이다. 아이가 힘겨운 몸부림으로 아픔을 견뎌내는 것처럼, 나에게도 반드시 인내하며 보내야 할 시간이 주어지겠지...
연휴가 끝날 때까지, 아이는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아이의 울음은 익숙함을 잊지 못하는 슬픔이기도 했고, 낯섦에 적응하려는 도전이기도 했다. 흐느끼는 아이를 보며 나도 아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아주 잘 알고 있다(아마 아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아이가 겪는 이 고통 또한 금세 지나갈 것이며, 아이가 만나는 새로운 낯섦도 곧 익숙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계속해서 이어지는 삶 속에서 수많은 이별을 겪어내며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