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을 넘어, 가족에게로.

육아휴직 중인 헬리콥터 조종사의 이야기

by 이기장


산불이 난 지역 위로 헬리콥터를 몰아갈 때면, 조종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붉은 불길과 검은 연기가 하늘을 향해 치솟고, 그 사이를 가르며 물을 투하한다. 이 순간, 나는 불길과의 싸움을 벌이는 전사나 다름없다. 하지만 싸움은 결코 쉽지 않다. 뜨거운 열기와 시야를 가리는 연기, 조금 더 불길 가까이 닿아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서 조종간을 잡고 있다는 책임감은 더욱 무거워진다.


2022년 동해안 산불 당시, 나는 며칠 동안 잿빛 하늘을 가르며 산불을 진화했다. 그때는 두려움보다는 자부심이 더 컸다. 헬리콥터 조종사로서 내 역할을 다하는 것, 그 자체가 큰 보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아이가 생기면서, 다시 조종간을 잡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일이 예전과는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여전히 임무를 맡으면 최선을 다할 자신이 있지만, 이제는 저기 하늘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기에, 더 신중하고 안전해야겠다는 각오를 깊이 새기게 되었다.


(동해안 산불 진화 당시의 이야기 https://brunch.co.kr/@captainlee2/21 )


현재 나는 육아휴직 중이다. 조종석이 아닌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도전이다. 하늘을 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책임이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아이가 하루하루 훌쩍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새로운 의미의 사명감을 배운다. 하늘에서는 조종사로서 냉철한 판단을 해야 했지만, 집에서는 부모로서 따뜻한 마음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산불 진화 임무는 다른 어떤 비행보다도 어렵고 위험하다. 무거운 물을 싣고 낮은 고도로 비행해야 하며, 연기 속에서 시야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산불이 난 지역은 지형이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예상할 수 없는 바람의 영향으로 기체가 요동치며 조종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런 환경에서도 조종사는 침착해야 한다. 불길을 잡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헬리콥터에 타고 있는 동료들, 그들 가족의 안녕도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따른다.


불길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시간은 물을 투하하는 찰나의 순간이다. 정확한 지점에 물을 투하하기 위해서는 기체가 일정한 속도와 방향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연기가 시야를 가리면, 순간적으로 판단이 흐려지며 지면에 충돌할 수도 있고, 공중에 떠 있는 다른 헬리콥터와 부딪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 위에 떠 있는 여러 조종사들은 팀워크를 발휘하며 서로의 위치를 공유하고, 안전하게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산불 소식을 들으며 다시금 비행을 하게 될 날을 떠올려 보았다. 불길을 향해 날아가야 한다면, 나는 여전히 조종간을 잡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커멓게 물든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전보다 더 신중한 마음을 품을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와 돌아가야 할 집,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살고 싶다'는 마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되뇔 것이다.


육아휴직 중이지만, 나는 언제든 다시 하늘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하늘 위에서 맡은 역할이 있다면, 하늘 아래에서도 내가 감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서 나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온다면, 나는 아이에게 이야기해 줄 것이다. 하늘을 나는 것의 아름다움과,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의 소중함을.



PYH2025032305310005300_P4.jpg 출처 : 의성산불 영향구역 1만2천565㏊, 밤새 급증…역대 3번째 피해 | 연합뉴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잘하고 있어! 너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