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조종석: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세계

by 이기장


헬리콥터의 조종석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세계 중 하나입니다. 조종석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조종사가 앉을 수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조종석 의자가 보입니다. 조종석을 기준으로, 조종사의 두 다리 사이에는 사이클릭 스틱이, 왼손 아래로는 컬렉티브 레버가, 그리고 두 발 끝에는 테일로터를 조작하는 페달이 놓여 있습니다. 한마디로 조종사를 꼼짝달싹 못하게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일단 시동이 걸리고 로터가 회전하기 시작하면, 조종사는 이제 비행이 끝날 때까지 이 작은 틀 안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조종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두 손과 두 발을 이용해 조종간을 움직이고, 손을 뻗어 각종 스위치를 조작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고, 다리를 쭉 뻗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극도로 제한된 물리적 환경은 오히려 조종사의 신체적, 정신적 집중력을 끌어올려 오감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어줍니다.


조종사는 이 작은 조종석에서 날씨와 지형을 살피고, 항공기 기체 상태와 임무의 진행 상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비상 상황을 대비하며 항공기를 둘러싼 모든 환경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헬리콥터 조종석은 단순히 항공기를 움직이기 위한 조작의 공간이 아닙니다. 이곳은 하늘과 땅을 오가며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되는 싸움을 이어가는 격정의 장소인 것입니다.


조종사는 계기 숫자의 오르내림, 미세한 진동의 차이, 엔진 소음의 변화 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작은 신호가 큰 문제의 전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종사는 조종석에 앉는 순간부터 외부와는 단절된 외로운 세계 들어가는 셈입니다. 바깥세상에서는 알 수 없는 승무원과의 소통, 계기판 수치와의 교감, 그리고 나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이곳에서 벌어집니다.


비행이 시작되면, 조종사는 좁은 조종석 안에서 수많은 고민의 순간을 마주합니다. 지금 속도와 고도를 유지할지, 전방에 있는 구름 떼를 피해 우회할지, 어느 타이밍에 맞춰 교신을 시도해야 할지 등등. 기상 상황, 지형 조건, 주변 항공기, 연료 상태, 임무의 성격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하기에 머릿속에 복잡해집니다. 하지만 민항기와 달리 헬리콥터는 즉각성과 신속함이 요구되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결정은 늘 빠르고 정확해야 합니다.


저는 이 조종석을 두고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 표현하곤 합니다. 물리적으로는 채 한 평이될까 싶은 이 공간에서, 시간은 상황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압축되기도 합니다. 응급상황에서는 1초가 영원처럼 느껴지며, 모든 판단이 슬로우모션처럼 전개됩니다. 반면 평상시에는 긴 비행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조종석 안에서 벌어지는 정신적 작동의 폭은 실로 무한합니다. 수많은 판단이 오가고, 감정이 지나가며, 책임이 쌓여갑니다. 조종석은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시공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장으로서 조종석에 앉는 순간, 저는 누군가의 생명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이 조그마한 공간에서 수없이 많은 하늘을 날아왔습니다. 때로는 땅이 아득히 멀게 느껴졌고, 때로는 하늘이 유난히 가까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늘 실감하는 것은, 이 조종석이야말로 저라는 사람을 가장 명확하게 비추는 거울이라는 점입니다. 나의 성격, 습관, 태도, 가치관 등 나의 내면의 모든 것이 이 좁은 공간 안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합니다.


오늘도 조종석에 앉습니다. 어제와 똑같은 위치, 똑같은 조종간, 똑같은 계기판. 그러나 그 안에서 펼쳐질 오늘의 비행은 이전의 비행과 절대 같을 수 없습니다. 이 작은 공간에서 다시 한번 하늘과 땅을 연결할 준비를 시작합니다. 조종석은 작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조종사의 세계는 언제나 크고 넓게 느껴집니다. 결국 진정한 자유란, 제약 속에서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몇 평도 되지 않는 조종석에 갇혀 있을 때, 비로소 무한한 하늘을 품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PYH2022031203090005300_P4.jpg 출처 : 수리온 헬기 조종석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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