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랑, 보이지 않는 하늘 길.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드물게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나라입니다. 종전이 아닌 휴전, 전쟁을 잠시 멈춘 채 대치하고 있는 현실. 그 가운데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종사로서 비행을 하다 보면, 이 분단의 현실을 가장 피부로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로 비무장지대 인근, 접적지역을 비행해야 할 때입니다.
불필요한 군사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접적지역 비행은 가급적 지양되지만, 임무의 특성상 그 하늘을 지나야 만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를 위해 마련된 보이지 않는 길, 그것이 바로 ‘회랑’입니다.
회랑은 군사분계선 아래, 동서로 길게 뻗은 하늘 위의 길입니다. 드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어도, 이곳에서는 정해진 회랑을 따라야만 합니다. 마치 하늘에만 존재하는 도로 같다고 할까요. 그러나 그 길에는 어떠한 표지판도, 울타리도 없습니다. 조종사는 오직 지형지물을 기억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따라 비행해야 합니다.
물론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길은 아닙니다. 정해진 교육과 평가를 통과해야만 회랑 비행 자격이 주어집니다. 단순히 헬리콥터를 조종할 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회랑의 입구와 출구, 그리고 길을 따라 이어지는 수많은 지형지물을 몸에 익히듯 기억해야만 합니다.
얼마 전, 저 역시 회랑 자격을 위한 비행을 다녀왔습니다. 철원평야 위를 날며 내려다본 풍경은 묘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 너머로는 빽빽한 숲이 장막처럼 드리운 비무장지대가 보였습니다. 사뿐히 걸을 수 있을 만큼 평온해 보이는 땅이지만, 누구도 쉽게 발을 디딜 수 없는 금단의 땅. 그 푸르름 속에 서려 있는 긴장감이 안타깝게 다가왔습니다.
“언제쯤이면, 회랑이 필요 없는 날이 올까.”
조종석 위에서 내려다본 철원평야는 한없이 넓고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로움은 아직 완전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조심스레 비행하지만, 언젠가는 이 길이 필요 없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푸른 하늘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사라지고, 자유롭게 어디든 날아다닐 수 있는 날. 그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