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봐!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아무 문제없는데, 왜 자꾸 조종간을 흔들어대는 거야?"
언제 즘 교관님의 불호령이 떨어질까 조마조마하고 있었는데, 꾹꾹 누르던 답답함이 폭발하셨나 보다.
"힘 좀 빼고! 네 손이 가만히 있으면 얘(헬리콥터)는 안 움직인단 말이야! 으이구으이구!!"
헬리콥터의 가장 큰 특징은 제자리비행(Hovering)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비행기는 이착륙을 위해 넓은 공간의 '활주로'가 필요하지만, 헬리콥터는 제자리에서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소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헬리콥터의 이러한 장점은 산이 많은 지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더욱 빛이 나고 있는 듯하다.
헬리콥터의 가장 큰 특성이 제자리비행인 만큼, 비행학교 교육과정의 핵심 목표는 헬리콥터를 지면으로부터 부양시킨 후 가만히 머무는 것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않고, 좌로도 우로도 이동하지 않고, 위로나 아래로도 요동 없이 3차원 딱 그 공간에 얌전히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가만히 있는 게 이렇게나 힘든 건 줄 그제야 알게 되었다. @_@;;;
비행학교 교육생 시절,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참 많이 고민했다. 동기들은 이미 '감 잡았다'라며 신나 있는데, 내 감은 도대체 어디에 달려 있는 것인지 당최 보이질 않았다. 감이란 놈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의문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꾸역꾸역 버티며 교육과정을 마쳤고, 어느덧 햇수로 8년 차 조종사가 되었다. 가슴 아픈? 과거가 있기 때문에 조종에 어려움을 겪는 후배를 보면 왠지 더 마음이 쓰인다. 비행 임무를 다녀온 뒤 풀이 죽어 있는 후배를 보면 항상 비슷한 위로를 건네곤 한다.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것이니라..."
아는 것과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비행이론을 열심히 공부해서 모든 비행 원리를 100%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이론을 아는 것과 조종을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책으로, 동영상으로, 귀동냥으로 열심히 육아에 대해 공부할 수는 있지만, 직접 아가를 품에 안고 살을 부비면서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고 잠을 재우는 것과 결코 같을 수는 없다. 좌절하고 낙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전의를 불태우지만 역시나 다시 주저앉는... 그리고 다시 일어나고 넘어지는 시간의 반복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조리원에서의 꿈같은 시간을 보낸 뒤, 집에 온 그날부터 시련이 시작되었다. 새벽 육아를 담당했던 나는 모두가 잠든 고요한 그 시간, 속으로 참 많이 울었다. 나름 만반의 준비를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아가는 통 잠들 생각을 하지 않았고, 안아도 찡얼 눕혀도 찡얼, 토닥여주다 보면 토하고, 토한 것을 치우다 보면 응가를 잔뜩 싸놓고. 하... 그러다 문득 아가를 향해 화를 잔뜩 품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었다. 아가도, 아빠도 다 처음이라 시간이 필요했을 뿐인데...
어느덧 아가가 태어난 지 3개월이 다 되어간다. 이제 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육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또 다른 차원의 퀘스트? 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또 속으로 엉엉 우는 순간이 찾아오겠지만, 전보다 단단해진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이렇게 속삭일 것이다.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