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를 쓴 지도 어느덧 4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그저 아가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가 훗날 아가가 성장했을 때 함께 읽으며 추억거리로 삼으려는 목적이었다.
처음에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는 정도였다. 예를 들면, '산부인과에서 조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으로 아가를 안아보았다', '분유도 먹여보고 기저귀도 갈아보았다' 등과 같은 단편적인 사실들을 나열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문득, 나중에 아가가 아빠의 일기를 읽었을 때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것도 좋지만, 아가였던 자신을 키울 당시의 아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알게 해주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에세이 형식의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네이*에서 '일기'로 검색하면 많은 블로그 글들이 결괏값으로 나온다. 어떤 블로거는 육아일기를, 어떤 블로거는 투자일기를, 또 어떤 블로거는 맛집일기를 쓰고 있다. 특별한 이벤트가 생겼을 때 일기를 쓰는 이도 있고, 사건 발생과 무관하게 하루하루 빈 페이지를 채우는 이도 있다.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주 단위로 혹은 월 단위로 일기를 쓰는 이도 있다. 저마다 일기를 쓰는 목적은 다를 테지만 아마도 기억하기 위해서, 기념하기 위해서 일기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육아 에세이와 더불어 육아일지도 작성하고 있다. 육아일지는 아가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잤는지, 수유는 언제 얼마나 했는지, 기저귀는 언제 갈았고 소변이었는지 대변이었는지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육아일지를 기록하는 주된 목적은 아기의 상태를 꾸준히 추적하고 관찰하기 위함이지만, 아기의 상태를 아내와 공유하는 수단으로도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육아일지를 작성한다고 하는데, 우리 부부는 아날로그 감성을 키워야 한다는 핑계로 열심히 종이 양식에 작성하고 있다.
그런데 혹시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헬리콥터에도 아날로그 일기장이 쓰인다는 사실을 들어보았는가? 헬리콥터의 일기장을 '비행기록부'라고 부르는데, 육아일지에 아가가 먹고 자고 싸는 일을 기록하는 것처럼, 비행기록부에도 헬리콥터의 각종 이력들을 세세하게 기록한다. 그 내용은 연료 및 오일 보충 여부, 정비 실시 여부, 엔진 운용 시간과 잔여 비행시간 그리고 각종 결함 사항 등을 담고 있다.
기종에 따라 제각기 다르지만, 모든 헬리콥터는 일정 시간 비행한 뒤 각종 검사와 정비 행위가 이루어지도록 제작사 매뉴얼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10시간의 비행시간 후에는 비교적 간단한 점검과 소모성 부품을 교환하는 정도의 정비가 필요하고, 100시간의 비행시간 후에는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검사와 주요 부품을 뜯어서 재조립하는 등의 복잡한 정비가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비 행위는 모두 비행기록부에 기록된 내용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며, 완료된 정비 행위는 다시 기록으로 남겨져 추후 비행 또는 정비에 근거가 된다.
조종사는 비행 전 반드시 비행기록부를 확인해야 한다. 물론, 임무가 가능한 항공기가 편성되었겠지만, 조종사는 임무 전 비행기록부를 통하여 이 항공기가 오늘 나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적합한 상태인지를 반드시 살펴야 하는 것이다. 잔여 비행시간이 오늘 예상 비행시간보다 많은지, 항공기 고유의 특성은 무엇이 있고, 참고해야 할 사소한 결함 사항이 있는지 등을 위주로 말이다.
지인들로부터 종종 받는 질문 중에 '택시기사나 버스기사처럼, 조종사마다 특정 항공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냐'라는 내용이 있는데,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조종사마다 비행 자격과 기량에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항공기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등급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조종사와 항공기를 하나의 세트로 관리하고 편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더욱더 '비행기록부'의 존재가 중요해는 것이다. 조종사는 조직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항공기의 특성을 일일이 외우고 있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다른 조종사가 비행하는 중에, 혹은 정비사가 정비하는 과정에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특성이나 결함이 발생할 수도 있다. 결국 항공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바로 '비행기록부'인 것이다.
어찌 보면 비행기록부도 육아일지와 마찬가지로 기록이나 기념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소통을 위한 역할'로서 더욱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육아일지가 엄마와 아빠 사이를 이어주는 메신저라면, 비행기록부는 조종사 - 조종사, 조종사 - 정비사, 정비사 - 정비사를 이어주는 창구와 같은 것이 아닐까?
100일 넘게 매일매일 그 기록이 이어지고 있는 육아일지를 들추어 넘기다 보면, 자연스레 흐뭇한 미소가 번지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일지에 기록된 D+숫자가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을 보면, '이 작고 소중한 존재가 금세 어른이 되어, 더 이상 엄마 아빠 곁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에 이르기 때문이다.
오늘 보는 아가의 모습이 앞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아가의 가장 작은 모습이라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우리 아가를 더욱 사랑스럽게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현실은 대.환.장.파.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