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방송 꺼라~~"
학창 시절,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잡담하는 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선생님의 낮고 조용한 외침! 비단 수업 시간뿐만 아니라, 여럿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상황에서 주제나 흐름에 맞지 않는 이야기가 등장할 때면 어김없이 들리는 말, 바로 '지방 방송 끄라'는 말이다.
하지만 조종석에 앉아 있는 헬리콥터 조종사는 모든 지방 방송에 귀 기울여야 한다. 끊임없이 조종사들의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잡음', '소음'이라는 지방 방송도 결코 흘려들을 수 없다. 사고의 징조일 수도, 생과 사를 오가게 만드는 신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종사에게는 중앙 방송도, 지방 방송도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것 하나에만 꽂히지 '않도록' 온 마음과 정신을 다해야 하는 얄궂은 운명을 가졌다고나 할까?
헬리콥터는 3차원 공간을 떠다닌다. 하지만 비행기처럼 막힘없이 뻥 뚫린 높은 하늘까지 날아오를 수는 없다. 헬리콥터가 높은 고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 능력과 장비를 갖추고 있지 못하기도 하지만, 헬리콥터·비행기·비행선·글라이더 등등 항공기마다 성능과 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고도가 비교적 명확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층층이 구분되어 있는 하늘의 영역 속에서 헬리콥터는 산과 산 사이의 낮은 골짜기를 찾아서, 땅 위에 깔린 고속도로를 벗 삼아, 강과 하천이 흐르는 곳을 참고하며 낮게 낮게 비행해야만 한다. 그 말인즉슨, 항상 장애물을 회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헬리콥터 조종사들은 외부 경계에만 매달릴 수 없다. 속도 계기를 보며 현재 속도를 판단해야 하고, 고도 계기를 보며 항공기의 높이 역시 꾸준히 파악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엔진 상태를 나타내는 오일 온도 계기, 오일 압력 계기, 유압 온도·압력 계기, 연료 계기 등등 틈나는 대로 시선을 돌려가며, 비행 중인 헬리콥터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눈알만 잘 굴리면 다냐' 하면 그렇지 않다. 고막을 때리는 각종 소음과 신호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항상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야 한다. 함께 조종석에 오른 동료 조종사의 조언은 물론, 승객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엔진의 소음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고, 주의 경고 시스템이 보내는 경고음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비행 중인 나의 항공기를 부르는 '교신'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수화기를 들고 있는 이가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
항공기는 관제기관으로부터 비행에 대한 승인과 조언을 받기 위해 주기적으로 교신을 실시해야 한다. 쉽게 말해 항공기는 관제기관과 항시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관제기관이 항공기를 찾으면 즉시 대답할 수 있도록 말이다.
교신은 무전기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관제기관이 가지고 있는 무전기 주파수에 여러 항공기가 참여하여 대화를 주고받는 방식이다. 여기서 핵심은, 무전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교신이 '단방향' 통신이라는 것이다.
전화는 내가 말하고 있는 중에도 상대방의 목소리가 겹치는 것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목소리 큰 놈? 이 이길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무전기는 다르다. 말하고자 하는 이가 '송신'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 어떤 누구도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없는 상태가 만들어진다. 수십 명의 조종사와 관제사가 한순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관제사가 나의 항공기를 호출하는 소리를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조종사와 관제사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 때를 잘 포착하여 재빠르게 송신 버튼을 누른 뒤 나의 의도와 목적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혹여나 다른 조종사나 관제사가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게 되면 '센스 없는' 조종사로 낙인찍히는 불명예를 안을 수도 있다는 사실...
이렇듯, 조종사는 눈과 귀와 입이 쉴 틈이 없다. 거기에 더해, 손과 발도 상황에 따라 재빠르게 움직이며 조종간을 밀고 당겨야 한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평온하고 따뜻한 공간에서라면 좀 더 수월할까? 안타깝게도 비행 중인 헬리콥터는 소음과 진동이 난무하는 혼돈의 Chaos 한 공간 그 잡채...! 비행을 다녀온 조종사가 기진 맥진한 이유는 모든 감각기관을 숨 가쁘게 움직이며 혹사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도 나름의 직업병이 있다. 번잡스러운 곳은 되도록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왁자지껄한 술자리도 별로 안 좋아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를 가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출근하지 않는 날만이라도 조용하게, 고요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랄까?
하지만 이제 그 바람은 그야말로 바람이 되었다. 출근하지 않게 된 지 오래지만, 나의 무전기는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댄다. '으아아아아앙' 아가가 운다.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