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경록 Dec 20. 2021

<상한 우유를 위한 발라드>

상한 우유를 위한 발라드



상한 우유를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상한 우유로 상한 얼굴을 세안했다.

'상한 것들끼리 만나면 왠지 치유의 힘이 생길 것만 같다고나 할까?'



냉장고에서 하수구로 흘러 들어갈 운명이란 것을 예감했던 상한 우유는 한껏 풀이 죽어 생기를 잃고 있었다.

아직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랑에 유통기한이 끝나듯 나의 인생도 끝난 것일까?



문이 닫히고 불이 꺼지면 상한 우유는 냉장고 문턱에 걸터앉아 구슬픈 '쳇 베이커'를 듣는다.



https://youtu.be/Ic-3mudz8TA




브로콜리 녀석이 나의 마음을 아는지 구슬프게도 트럼펫을 분다.

냉동실 얼음 녀석이 기어 올라와 입김을 불며 드라이아이스로 분위기를 잡는다.

음악이 끝나면 먹다 남은 김빠진 콜라 놈이 뚜껑을 열며 쉬익 휘파람을 불고 손뼉 치며 갈채를 보낸다.



"어떤 과일들은 비타민이 되어 삶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참치캔 녀석은 멋진 근육을 뽐낼 것이고, 캔맥주 녀석은 누군가의 트림이 되거나 음악이 되겠지..."



"하지만 나같이 상한 우유는 쓸쓸히 하수구 속으로 사라지겠지..."라고 중얼거리는 찰나 조명은 켜지고 냉장고 문이 열리더니 얼굴이 상한 놈이 내 손을 잡고 욕실로 데려갔다.



얼굴 상한 놈은,

상한 우유를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상한 우유로 상한 얼굴을 세안했다.



'상한 것들끼리 만나면 왠지 치유의 힘이 생길 것만 같다고나 할까?'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

나처럼 상한 얼굴이라도 누군가 상처를 위로해 주는 노래가 될 수도 있다.



삶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아무리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분명 어디선가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

상한 우유 일지라도 지친 얼굴 위에 차갑고 하얀 눈물처럼 누군가를 위로해 줄 수도 있다.





-상한 우유를 위한 발라드-

                                                                                                                    2021/4/15  한경록


작가의 이전글 <정말 맛있는 요리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