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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경록 Dec 07. 2022

<1998 한경록의 교생실습 이야기>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청춘의 여름날.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부전공은 국문학이다. 하지만 맞춤법과 띄어쓰기의 오묘한 수열 법칙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이것은 수학의 영역이다.

수학도 퀴즈처럼 재미있게 접근한다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수학보다  마시고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맞춤법은 엉망이다. 하지만  쓰는 것은 좋아한다.


시도 좋아한다.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짧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없는 나에게 짧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시가 마법 같았다. 학창 시절 어설프게 마법 같은 것을 흉내 내고 다녔다. 무엇이   글이고,   글인지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내키는 대로 지껄이고 다녔다.


20  읽었던 랭보의  중에 '방랑길에 터진 주머니 사이로 각운들이 떨어졌다.'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터진 주머니 사이로 별처럼 알록달록한 알파벳들이 떨어진다니,   꽤나 낭만적인걸...


시 수업을 받을 때 메타포(은유)에 대해서 배웠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표현하는 것보단 은유가 더 낫다고 했다. 그 당시 96년도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도 시인 네루다가 집배원에게 메타포를 가르쳐 줬던 것이 생각났다.

'은유'. 사람들은 너무 많은 은유는 촌스럽다고 하나, 가끔씩 미친놈처럼 촌스러움을 덕지덕지 칠 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본가에서 리모델링을 한다고 나의  꾸러미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10박스 정도 27 동안의 주고받았던 편지들과 팬레터와 사진, 그림 액자들이 들어 있었다.  당시는 DM보다는 확실히 손글씨로  팬레터가 많았다. 군대에서 받은 위문편지들까지 거의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박스를 열어보니 수많은 사진들과 추억들이 푸른 구름처럼 피어났다.


그중에 잊고 있었던 교생 시절 사진들을 발견하여 몇 자 기록해 볼까 한다.

교육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국문과를 선택했다. 부전공이 국문학이면면 국어와 윤리과목 중에 선택해서 교생실습을 나갈  있었다. 왠지 윤리 과목이 수업하기 쉬울  같아서 윤리 교생을 선택했다.



1998년도 5월쯤이었던가? 나는 모교 중경고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갔다.

크라잉넛 1집이 발매되던 시기가 교생실습과 겹쳐 있었다. 그러니까 상당히 날것 그대로의 철딱서니 없던 애송이 시절 교생실습을 나가게 된 것이다. 양복도 처음 맞춰 입고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첫 등굣길에 엄마가 아빠 서류 가방 빌려줄까? 라고 했는데, 책도 얼마 안 들어가고 한쪽 팔만 아픈 비실용적인 서류 가방 따윈 필요 없다고 하고 그냥 평소 사용하던 책가방을 메고 등교했다. 아니나 다를까? 교문에서 학생지도 선생님께 붙잡혔다. 짧은 몽둥이 같은 막대기로 이리 오라고 까딱까딱 손짓했다. 순간 당황하여 손을 아래쪽에서 '저 학생 아녜요.'라고 흔들었다. 그랬더니 학생지도 선생님이 이 새끼가 장난하는 줄 알고 호랑이 눈을 뜨고 크게 손짓을 하셨다. 주변의 학생들은 당황한 나와 코미디 같은 상황을 보고 이미 폭소의 도가니탕이 되어 버렸다. 분위기 파악을 한 학생주임 선생님은 '아이고'라는 입 모양과 함께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셨다.

그렇게 교문을 지나 교실로 도착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사건은 벌써 전교에 다 퍼져 있었다. 학생들이 벌써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전교생이 내 옆을 지나가면 키득키득 웃었다.

교생실습 첫날부터 인상적인 일들이 많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나는 부전공으로 국문학과를 나왔지만 글씨를 잘 못 쓴다. 그래서 반 친구들과 첫 만남 때 칠판에 내 이름을 썼을 때부터 반 애들이 다 웃었다.

"선생님 글씨가 초등학생 같아요." 깔깔깔...

"하하..."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학생들과 친해지라고 자리를 비워 주셨다.

간단한 소개를 하고 할 말이 없어서 뻘쭘해 하고 있는데, 애들이 노래 불러 달라고 했다. 우리 노래 부르긴 좀 뭐해서 그 당시 유행하던 이박사의 노래를 불렀다. 애들은 아직 이박사의 키치함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창밖을 보니 기역 자로 꺾어진 교무실 창문으로 선생님들이 웃으며 나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하..." 또 다시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여차저차  학생들과 거의 친구처럼 지냈고,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도 해가며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윤리 수업 내용은 동양철학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이해하고 수업했다기보단 거의 내용을 외워서 말하고 끝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시원한 낮잠을 선사해 주었다. 그래도 경청해 주던 학생들도 있었다. 수업보다도 친구처럼 대화하고 체육 시간에 같이 축구하고 떡볶이  먹으면서 이야기했던 시간에 아이들과 친해진  같다. 아이들이라고 하기엔 나도 너무 애송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너무도 철딱서니 없었고, 하루하루가 시트콤 같은 에피소드들로 넘쳐났다.

그래도 나름 진심으로 수업하고 마음을 다했다는 걸 알아주길...

교생 수업이 끝나고도 학생들은 공연에 자주 놀러 왔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같은 시기이네.

우리 학교도 펜싱부 있었는데,,,

아무튼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그 시절 그 파란 하늘, 교복 입은 학생들의 해맑은 표정과 방과 후 텅 빈 교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본다.

가끔 소식을 접하면 모두 멋지게 잘 지내고 있더라.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청춘의 여름날.

나의 꽃 양귀비여! 꽃을 피워주오!


https://youtu.be/P2IZgeecphA


#교생 #교생실습 #캡틴락 #한경록 #크라잉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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