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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경록 Nov 11. 2023

<필기체 연습>

<필기체 연습>


나는 악필로 태어났다. 음.


그렇다고 ’그러니까 나는 악필이다.‘라고 규정지을 필요가 있을까?

악필로 태어났다고 해서 악필로 살아갈 필요는 없다.


어려서부터 부모님 말씀을 직살나게 안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고생을 하긴 했어도 캡틴락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여러분, 부모님 말씀을 듣지 맙시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가끔 당연한 것에 대해서 ’왜?‘라고 질문을 건네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연 나는 미남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도대체 미남이란 무엇인가?“(김영민 교수님 톤으로 ㅋㅋ) 물어보자. 미남의 기준도 각 지역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에 어떤 곳에서는 쌍꺼풀이 없는 사람이 미남이고, 어떤 곳에서는 광대가 나온 사람이 미남이다. 어느 시대에는 약간 수염이 난 여인이 미녀였다고 한다.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은 나를 기죽이는 고정관념에 야코죽지 말고 '왜'라고 되물으며 반항해야 한다. 과거의 나의 생각들에 대해서도 '왜'냐고 따지며 뇌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야 한다.


부엌에 굴러다니는 낡은 찻잔이 어딘가에선 빈티지 대접을 받듯, 자신이 빛날 수 있는 곳에 살며시 나를 두고 오자. 꼭 어딘가에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머릿속 뇌의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다. 이제껏 믿었던 모든 상상력의 건물들을 다 허물고 다시 나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해왔던 습관들 때문에 새로운 시도들이 어색해 보이고, 하던 대로 하라는 주변인들의 잔소리가 신경 쓰이는가? 그럴 필요 없다. 어차피 별생각 없이 하는 소리일테고, 과거의 나는 그저 다른 사람일 뿐이다. 그냥 안녕이라고 말하자.


"안녕, 예전의 나. 얼마 전 스마트폰 업데이트 하는데, 스웨터 때문에 정전기가 일어나 내 몸의 자기장과 와이파이가 연동되어서 나도 업데이트 되고 있는 중이야. 난 앞으로 더욱 밝고 명랑하고 씩씩하고 섹시하고 긍정적이고 사랑스럽게 그런식으로다가 살아볼 예정이야."


그러니까 난 악필로 살아갈 필요가 없어. 그래서 중고교 영어 노트를 사고 영어 필기체 연습을 해 보았다. 빼빼로데이에는 역시 필기체 연습 아니겠는가? ㅋㅋ



사실은 요즘 평일 아침 일어학원을 다니는데, 갑자기 노트 필기를 효율적으로 잘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필기구에 관심이 가고 문구류까지 시야가 확장되었다.


'문구류도 이렇게 예술적으로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또 이렇게 재미있는 세계로 빠져들게 되고, 결국 볼펜들과 예쁜 가죽 필통, 연필깎이를 사고, 연필 뚜껑에 각인까지 새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필기구를 사용하려고 공부도 더 하게 되고, 필기감을 느껴보려 뭐 재미있는 것 없을까? 하다가 영어 필기체까지 넘어오게 되었다.




얼마나 재미있으면 토요일 밤 혼자 필기체 연습을 하고 있을까? ㅋㅋ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뜬금없는 것을 해보자.

A.I.가 나를 예측할 수 없도록.


필기체 연습하는 동안 명상을 하듯 잡념, 온갖 번뇌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아! 몰입의 황홀함이여!


​필기체에는 시간이 느껴지고 바람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종이를 항해하는 기분!



지금까지 고딕체 같았던 나를 유연하게 해주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해 줄 것 같은 필기체처럼 살아보자.


이것이 나의 필기체 연습.




추신: 새삼 ‘브런치스토리’ 로고의 필기체 ‘b’ 가 더욱 정겹게 다가온다.



#필기체 #영어필기체연습 #악필교정 #필기구 #문구류 #가죽필통 #문구덕후 #손글씨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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