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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경록 Dec 22. 2021

<빨간만장 캡틴락>

홍대에서 한때 잘나가던 빨간만장한 어느 음악가의 이야기랍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요...


홍대에서 한때 잘나가던 빨간만장한 어느 음악가의 이야기랍니다.

허허... 왜 '파란만장'이 아니라 '빨간만장' 이냐구여?

그는 볼품없는 외모에도 주제넘게 빨가안 장미를 아주 좋아했다구 하네요...



"이봐, 작가 양반... 내가 왜 볼품없는 외모야? 전지적 작가면 전지적 작가답게 객관적으로 사물을 바라볼 줄 알아야지...열폭하지 말구,,, 궁시렁 궁시렁...."



빨리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네요. 주인공이 아주 꼬라지가 보통이 아니라서,,,

게다가 조금 모자란 구석이 있는 듯 묘한 매력이 있는데, 신세계 백화점 명품관에서나 팔듯한 자신감을 온몸에 휘두르며 비치는 모든 것을 거울삼아 흐뭇해하는 모습이 정말 가관이랍니다.



"야! 전 (지적인) 작가!!!"



빨리 시작해야겠네요.




모든 것은 새빨간 장미 한 송이 때문에 시작되었죠.




언제나 머리까지 망토를 푹 눌러쓴 한 소녀는 오늘도 새빨간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이어폰을 꽂은 채 날짜가 살짝 지나버린 콘서트 포스터 앞에 서 있다. 너무 수줍어 고개 숙인 꽃잎 같은 그 소녀의 꿈은 그 포스터 주인공의 공연을 직접 보구 장미 한 송이를 건네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녀는 너무 수줍어 사람들 앞에 나서본 적이 없다.



"만약 왕자님을 만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 한 송이를 드릴테야."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예쁜 꽃들에게 이름을 붙여 꽃들과 얘기하는 것이다.



"플린아, 나중에 왕자님 곁에 가면 나 대신 꼭 예쁘게 피어있어야 해."



하지만 우리의 왕자님은 오늘도 흥청망청 취해있네요.


언제나 그렇듯 공연이 끝난 후 소녀팬들에게 둘러싸여 싸인 공세와 아크로바틱한 포즈로 셀카놀이를 즐기며 소녀팬들의 맘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늘 허전했고, 뭔가 불안했다.

그는 언제나 쉽게 잠들 수가 없었고,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된다는 '우유과자'를 꼭 먹어야지만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는 불안해서였을까! 언제나 취해있거나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거만해졌고 외로워서인지 소녀들의 마음을 여기저기 어지럽히고 다녔다.


나쁜남자 가트니라구.....쩝



"아~~~ 쉽게 잠을 잘 수가 없어....... 뒤척귀척...."



그는 매일같이 '우유과자'를 먹으며 잠이 들었다.



"아, 잘 잤다. 오오오 오마나~~~오마이갓!"



매일같이 우유과자를 먹어서 부작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세상 우습게 보며 거만하고 나쁜남자로 살아서였을까?

그의 얼굴은 썩어 문드러져 살점이 떨어지고 불그스름한 피부에 공격적이고 기괴한 괴물의 형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검색조차 되지 않는 이름 모를 희귀병에 걸리고야 만 것이다.


그는 슬픔에 경악할 시간도 없이 살점이 떨어져 버릴까 봐 천과 붕대로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119에 전화하려 했으나 너무 놀라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병원이 어디 있었지?'



허둥지둥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아이들이 '괴물이다' 그러면서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순간의 '추락'이었다.

그는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눈물이 났다.


해가 어수룩해질 무렵 판자촌의 어느 폐가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양말을 벗고 발가락을 세어보기 시작했다.

그는 절규하면서 소리쳤다...



'젠장, 왜 내 발가락이 여덟 개밖에 없냐고........'



희망은 없어졌다.



'어느덧 사람들은 나를 괴물로 보고 있어. 세상에 나가봤자 격리된 상태로 살다 죽겠지...

소녀팬들도 괴물 왕자님이라 징그러워하겠지...'



그는 이 세상에서 철저하게 혼자였다.


그렇게 울다 지쳐 잠이 들었고,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제일 필요한 건 물이었다.

폐가의 수도꼭지에서는 '끼이익' 하고 슬픈 소리를 내며 녹슨 물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든 것이 후회스러웠다.



'난 감사했어야 했어. 주위 사람들에게, 나에게 주어진 보석 같은 시간들에 대해, 남긴 반찬들과 밥에 대해... 물 한 모금에 대해......'






"그렇게 후회하지 말아요. 저에겐 당신의 모든 것이 실수들조차 눈부셨답니다.

여기 물 드세요!"



가녀린 망토 쓴 소녀는 그에게 다가왔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괜찮아요,  두렵지 않아여."

그녀는 망토를 벗었다.


"아! 당신도 저와 같은 병에 걸리셨군여."


"네, 다행히 전염성은 없답니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이상하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증오의 눈빛으로 쳐다보죠. 아마도 이 병은 외로움 같은 건가 봐요."


 

둘은 맑은 물을 마시며 한동안 말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팬이었어여, 캡틴락 왕자님!"



피식 웃으며,



"왕자님은 무슨 다 썩어 문드러졌는데,,, 그냥 오빠라구 불러!"


"그래도 제 눈엔 아직 왕자님이랍니다."


"다시 보니 눈이 참 맑아."


"언젠간 왕자님의 공연을 직접 보는 게 꿈이었는데, 꿈만 같아여."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어. 불안하지도 않고, 잠도 잘 잘 수 있을 것 같아."


"아침이네요.  동네는 사람이 살지 않아.  재개발 된다고 사람들이  쫓겨났답니다. 같이 걸어요."



둘은 아무도 없는 판자촌을 망토를 걷어버리고 햇빛을 맘껏 쫴며 걸었다.

살이 갈라지는 걸 느꼈으나 둘은 어린아이처럼 행복했다.

소년은 소녀에게 꽃 모자를 만들어주었다.

둘은 미로 같은 판자촌을 걸으며 행복했다.



"와! 여기 성당이다. 들어가보자."



색색깔의 유리로 예쁘게 햇살이 들어왔다. 둘은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우린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우린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요. 그냥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요."


"그래? 아까 우리 공연 직접 보는 게 꿈이라고 했지?"



성가대 자리에 줄 하나가 끊어진 기타를 집어 들고는 열정적으로 오도방정 스텝을 밟으며 그녀만을 위해 로큰롤을 연주했다.



"오, 오빠,,,, 저, 저기 소, 손가락이 떨어졌어요."


"후훗! 괜찮아. 로큰롤은 테크닉보다 중요한 게 있어. 그건 바로 진심이지."



둘은 한바탕 크게 웃고 해는 벌써 방향을 바꿔 색색깔 유리는 예쁘게 그녀의 얼굴을 비춰 주었다.





"바깥세상에서 제일 하구 시픈 게 뭐니?"


"놀이동산 가구 시퍼여."


"어두워지면 가자"



둘은 모자를 쓰고 망토를 푹 눌러쓴 뒤 놀이동산 입장에 성공했다.



"여기 바이킹이랑 청룡열차가 짱 재밌어."


"꿈만 같아여. 내가 바이킹에 타다니..."



하지만 소녀는 바이킹 바람에 놀라 모자를 놓쳐버렸고 망토가 벗겨져 얼굴이 다 드러났다.

바이킹이 멈추고 그들의 얼굴을 보자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곧 경비원들과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내 손 꼭 잡어. 마지막으로 청룡열차까지 뛰는 거야."



둘은 마지막 자유를 향해 달렸다.


마치 천국으로 가는 열차라도 된다는 듯이......

사람들 물결을 헤치고 캡틴락은 점점 더 누더기가 되어 갔다.

결국 출발하기 직전의 청룡열차에 몸을 실었다.

서서히 열차는 하늘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빠, 우리 인제 천국 가는 거야?"


"아냐. 홍콩가는 거야. 흐흣. 뽀뽀나 할까?'


‘....................................’



"오빠 코가 떨어졌어요..."


"괜찮아 아직 네 곁에서 장미 향길 맡을 수 있어..."



그녀는 언제나 품고 다니던 가장 예쁜 '플린'이를 그에게 선물했다.



"이제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아."


"잘 자요, 마이 달링........"



열차는 하늘나라에서 곤두박질치며 요란하게 움직였지만

이제는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이렇게 빨간만장한 천방지축 음악가의 이야기는 끝이 난답니다.




https://youtu.be/uA6wARPeK_c




2013.2.20

한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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