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무 살부터 복싱을 해왔다고 소리치며 그에게 지금 당장 근처 체육관으로 가서 한판 겨루어 보자고 했다. 내가 소리를 질러서였을까. 회사 직원들이 달려 들어와 우리를 말렸다. 후배는 사색이 되어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나는 경호원이 직원들에 의해 끌려 나가고 나서야 다시 옷을 입었다.
“좋은 회사라더니 문지기부터 아주 개판이네!”
나는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문 쪽을 향해 외쳤다. 회사 직원 한 명이 다시 들어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네며 화를 풀라고 했다. 직원 교육을 잘 시키겠다는 말과 함께. 후배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야! 지금 수업하는 강의실이 어디야?”
나는 수업을 듣고 오겠다고 했다.
두 번이나 들었던 다단계 강의를 또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 상대를 기다렸다.
세 번째 수업이 끝난 후 조금 전 그 사무실에서 기다리자 이번엔 사파이어 직급이라는 여직원이 나타났다. 그녀는 자신을 S전자 출신이라며 전에 사용했다는 명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S전자를 다닐 때보다 돈도 훨씬 많이 벌고 일도 편해서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말을 잘하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자기처럼 많은 돈을 쉽게 벌면서 편하게 연기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잠시 듣는 척하자 사파이어는 아까 K대 출신을 사칭한 여직원이 보여 주려 하던 파일북을 펼쳐 보이며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파일 안에는 회장이라는 사람이 전 정부의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는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사파이어는 이상하고 나쁜 회사라면 이렇게 대통령 표창을 받고 대통령과 사진을 찍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돈 많이 벌어서 부자 되고 싶으세요?”
내 물음에 그녀는 그래서 S전자를 이직하고 이 회사로 들어왔다고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통일은 대박입니다(성대모사).”
당시 재임 중이던 대통령의 유명한 슬로건이었다. 나의 뜬금없는 성대모사에 그녀가 큰소리로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큰돈을 벌고 싶으면 건설주에 투자를 하라고 했다. 통일이 되면 건설 회사들이 북한으로 진출해서 많은 건물들을 짓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주식이 고공 행진을 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주식이 오르고 있을 거란 말을 덧붙였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나는 사파이어에게 은밀한 목소리로 몇몇 우량 건설주들을 찍어서 알려주었다. 그리고 핸드폰이 없기 때문에 그녀더러 직접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라고 했다. 지난 몇 년간 얼마나 올랐는지 알 수 있을 거라면서. 내가 닦달하자 사파이어는 마지못해 검색을 해 보더니 내 말이 맞다고 했다. 그리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설득을 포기한 채 사무실에서 나갔다.
뮤지컬 작업의정석(2017)
시계를 보니 오후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싶기도 하고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그때 어두운 표정을 한 후배가 들어와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식당가 층에서 순댓국을 먹고 나서 건물 옥상의 전망대로 올라갔다. 둘은 바람이 부는 벤치에 앉아 어둠이 깃드는 한강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집안이 많이 힘드냐?”
후배는 한참 만에 나지막이 네, 하고 대답했다. 선배로서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다. 그러다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지금 하는 일을 부모님이 알면 슬퍼하실 거라고 말했다. 미래가 불확실한 배우를 하고 있는 것도 불효인데 이런 일 하는 것은 부모님 가슴에 못 박는 거라면서. 이럴 시간에 연기 연습을 해서 좋은 무대에 서는 것이 부모님한테 떳떳한 거라는 내 말에 후배는 눈물을 보였다.
“뭘 잘했다고 울어. 넌 울 자격도 없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배우를 하면서 참 울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빨리 담판을 짓고 싶었다.
“잔챙이들 말고 여기서 제일 높은 사람 데리고 와.”
후배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더 이상 이 공간에 있기도 싫었고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후배를 보는 것도 힘들었다.
후배와 함께 다시 회사 사무실로 내려갔다. 로비에서 잠시 기다리자 처음 안내했던 여직원이 사장실로 나를 인도했다. 안엔 아무도 없었지만 여직원은 곧 사장님이 오실 거라며 편하게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아무도 없는 사장실 소파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책상과 의자를 비롯한 인테리어들이 꽤 고급스러워 보였다.
잠시 후 한 여성이 들어와 테이블 위에 외제차 키를 올려놓으며 자신이 사장이라고 인사를 했다. 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그녀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배우인 내가 봐도 상당한 미모의 젊은 여성이었다. 나이를 물어보자 그녀는 26살이라면서 이곳은 어려도 실력만 있으면 사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부하 직원들로부터 나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웃통을 벗은 것까지 포함해서.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이 회사가 다단계 회사가 맞다고 했다. 이곳에서 다단계 회사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사장이라는 사람이.
“제가 여기 온 이상 회사의 자존심 때문에라도 고객님을 저희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겠어요.”
뮤지컬 우연히 행복해지다(2015)
사장인 본인까지 왔으므로 회사의 자존심을 걸고라도 나를 설득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앞에 만났던 여직원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임을 느꼈다. 그리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차키를 만지작거리며 자신의 어머니가 암 투병을 하게 되어서 이 일을 하게 되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가출을 하고 어머니와 단 둘이 살게 되었는데 스무 살 때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것이었다.
“아휴! 정말 힘드셨겠네요.”
내 대꾸에 그녀가 이야기를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더욱 슬픈 눈빛을 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자신이 가장이 되었는데 병원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감당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병원비를 갚으려 했지만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던 중 우연한 기회에 이 회사로 오게 되어 병원비도 갚고 외제차도 소유하게 됐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현재는 도곡동의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나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으니 같이 일을 해보자고 했다. 가난한 배우로 힘들게 살기보다 자기처럼 큰 부를 누리며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박수를 쳤다.
“어린 나이에 정말 고생이 많으셨네요. 그런데 제 이야기 좀 들어 보실래요?”
나는 진심을 담아 내가 배우로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가 고생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사느냐고 물었다.
“꿈이 있으니까요.”
그녀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친한 사람 중에 연극배우가 있는데 그도 낙산 공원 근처에 있는 옥탑방에서 가난하게 사는 주제에 나처럼 꿈이 있다는 이야기를 밥 먹듯이 했다고 했다. 항상 빈털터리여서 자신이 밥도 자주 사주곤 했다면서.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 배우가 출연한 작품에 대해서 물었다. 그녀는 신이 나서 핸드폰을 꺼내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해서 작품 홈페이지를 보여주더니 저장되어 있는 그 배우 사진도 몇 장 보여주었다. 공연을 끝내고 관객들과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그녀의 모습도 보였다.
“얼굴도 잘생겼지만 연기도 잘하더라고요.”
출연진은 달랐지만 공교롭게도 내가 본 적이 있는 작품이어서 나는 그녀의 말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었다.
그녀는 사지 멀쩡한 사람이 그렇게 사는 게 한심하다고 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도.
“이분 좋아하시죠?”
정곡을 찌르는 내 말에 그녀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아니라고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은 상대방의 능력을 보는데 이 사람이랑 결혼하면 평생 가난하게 살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다.
“그래도 응원해주고 싶죠?”
그녀는 대답 없이 사진만 보고 있었다.
“제 후배 놈이나 저나 사장님 친구분이나 같은 사람들입니다."
배우들은 돈 많이 안 벌어도 되고 좋은 집에서 안 살아도 되며 외제차 안 타도 연기할 수 있는 무대만 있으면 좋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꿈만 먹고살아도 행복한 사람들이라고도. 그녀에게 후배를 놓아 달라고 했다. 어차피 연극 바닥은 좁아서 더 이상 후배한테 끌려오는 배우는 없을 거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쓸모없는 직원 데리고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좋은 배우가 되길 응원해 주는 게 좋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 친구가 성공한 배우가 된다면 어디 가서 자랑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사장님의 자랑스러운 친구 배우분처럼.”
그녀는 고민을 하다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들 고집은 꺾을 수 없다는 말을 보태면서.
“배우가 돼서 고집이 세진 건지 고집이 세어서 배우가 된 건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웃으며 배우들은 앞으로 이곳에 출입금지를 시킬 거라고 했다. 나도 회사를 위해서 그러는 편이 좋을 거라고 응수했다. 그녀는 나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며 무엇을 해도 크게 될 사람 같다는 말과 함께 훌륭한 배우가 되라는 덕담을 했다. 나도 사장의 어머니가 하루빨리 완쾌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악수를 하고 방을 나왔다.
사장실을 나오자 후배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데리고 건물을 벗어났다. 우리는 말없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중간쯤 걸어갈 무렵, 처음 나를 안내했던 여직원에게서 후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사장의 지시로 자기와 치킨을 같이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그녀는 할 말이 있다면서 우리를 기다리라고 했다.
결국 여직원과 함께 셋이서 근처 치킨집에서 치맥을 했다. 그녀는 오늘 겪었던 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후배에게는 여러 차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얄쌍하게 생긴 여성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무서운 말이었지만 그래도 이들을 다시 안 봐도 되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후배와 헤어지면서 그에게 돈이 급하면 이런 일보다는 영화판에 가서 조연출 아르바이트를 하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했다.
후배와 헤어진 후 왕십리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니 부재중 전화가 엄청 와 있었다. 하루 종일 연락이 되지 않아서 부모님이 걱정을 하셨던 것이다.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께서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왔느냐며 야단을 치셨다. 술이 약한 내가 맥주 500cc 두 잔에 빨개진 얼굴로 술 냄새를 풍기며 자정을 넘어서야 돌아왔던 것이다. 야단을 맞는 도중에 후배에게서 메신저로 고맙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웃으면서 후배에게 답장을 했다.
'무대에서 만나자, 제발'
어머니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웃고 있느냐면서 더 화를 내셨다. 그래도 마음은 편안했다.
그 후 어떻게 알았는지 한동안 몇몇 배우들로부터 그 후배에게서 연락이 오면 받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가 그 일을 그만둔 것 같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