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상에 등장하는 동네를 잘 안다. 6년 전 남쪽 바닷가 지역으로 이주해 지난해까지 저 동네 근방의 작은 마을에 살았다. 서울을 떠나 심심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은 무지와 무모함 덕에 빠른 행동으로 옮겨졌고, 고된 집짓기를 거쳐 작고 조용한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엔 우리도 이른바 텃새로 골치를 썩였다. 건축을 하는 기간에는 특히 그랬다. 골조 공사를 앞둔 어느 봄날, 자재를 가득 실은 덤프트럭을 옆집 할매가 바닥에 드러누워 막아 세웠다. 한쪽이 낭떠러지인 마을길이 좁고 지반이 약해서 트럭 때문에 무너질 위험이 있다는 게 할매의 항변이었다. 트럭이 몇 번 지나다닌다고 땅이 꺼진다고? 이해가 가질 않았다. 끈질기게 설득해서 다음 날 다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났다. 그사이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된 옆집 할매가 작고하셨다. 그리고 나는 수년 전 옆집 할매가 트럭을 막으려고 길바닥에 드러누웠던 이유를 너무도 잘 이해하는 동네 주민이 되어 있었다. 할매는 그 동네에 (다른 할매들과 마찬가지로) 10대 시절 시집 와서 70년을 살았다. 누구보다 마을을 잘 아는 할매에게 그 거대한 트럭이 집 앞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은 얼마나 불안하게 보였을까. 만약 무거운 자재를 한창 싣고 다녔던 공사철이 봄이 아니라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이었다면, 물을 잔뜩 머금은 마을길은 5톤 덤프트럭의 하중을 못 이기고 분명 어딘가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당시 내가 할매였다면 어찌했을까? 아마도 땅에 드러눕는 걸 넘어 깽판을 부렸을지도 모른다. 마치 ‘텃새 부리는 무식한 시골놈’처럼 말이다. 그 후 나는 마을길이 대형 트럭으로 인해 몇 차례나 파손되고 주저앉는 걸 목격했고, 결국 마을 입구에는 ‘1톤 이상 트럭 진입 금지’라는 경고판이 세워졌다.
이런 데 살면 텃새는 없나요? 시골에 사는 동안 우리 집을 찾은 손님들이 끊임없이 물은 질문이다. 동네에 정을 붙이고 녹아들수록 나는 그 물음에 답하기가 점점 어려워졌지만, 하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텃새란 그곳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나 이해의 정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물론 외지인이나 이주민을 향한 원주민의 배타적 행위는 종종 발생한다.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태도뿐 아니라, 심지어 마음에 안 들면 불쑥 찾아와 훼방을 놓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런 식의 행패는 소위 ‘마을을 이끄는 남성들’ 중 일부가 그 세력을 등에 업고 행사하는 경우가 잦다. 외지인의 발길이 뜸한 집성촌일수록 더 그렇다.
그럼 이 같은 배타적 태도는 원주민에게서만 나타날까? 살아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외지인이나 이주민 중에는 토착민을 은근히, 혹은 대놓고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 EBS 영상에 등장하는 남성, 이 모 씨에 대해서도 솔직히 나는 의구심을 거둬들이기가 어렵다. 저 동네에서 20년을 넘게 살았다는 그는 원주민의 텃새를 새삼스레 개탄하지만, 양자 간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실상을 알지 못한다. (물 공급을 둘러싼 문제 또한, 광역상수도와 마을상수도에 관한 제작진의 취재가 세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부 원주민은 한곳에 평생을 살았다는 사실을 특권으로 착각하지만, 어떤 외지인들은 시골 사람에 대한 편견과 타자화를 호기심으로 포장한다.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을 구분해 바라보는 우리의 습관에도 동의할 수 없다. 서울에서 태어나 전국의 몇몇 대도시에서만 살아본 나는, 5년간의 첫 시골살이를 경험한 뒤 오히려 ‘시골 사람’과 ‘도시 사람’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텃새의 문제는, 실은 텃새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오해와 오만함의 문제, 그리고 정책으로 풀어야 할 부분까지 주민들에게 떠넘긴 지방자치제의 근본적 문제에 가까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