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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Feb 03. 2020

코로나 바이러스가 배설물을 만나 일으킨 참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염되는(인체로 들어가는) 주요 경로는 호흡기일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배출되는(인체에서 내보내지는) 루트는 호흡기만이 아니다. 대부분은 기침이나 콧물 등 호흡기 비말을 통해 전파되지만, 땀이나 피와 같은 체액에도 존재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사람의 배설물은 바이러스가 서식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다. 바로 엊그제인 2월 1일, 미국과 중국의 의료진은 확진 환자의 대소변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바이러스 입장에선 자신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전파시키려고 애쓸 것이므로 숙주의 배설물을 매개물로 삼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의 분변을 통해 단 한 장소에서만 42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사망자를 낸 사건이 있다.


2003년, 사스 창궐 때 일어난 홍콩 아모이 가든스 아파트 사건이 그것이다. 《똥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진지하게》의 429페이지에 이 사태의 경위가 자세히 나온다. 책에 따르면, 사스에 감염된 한 남자가 형이 살던 아파트에 들어와 지내기 시작했는데, 하필 그때 남자가 머물던 7층 집 화장실 변기가 고장 났고 그가 배설한 설사가 바닥으로 흘러넘쳤다. 그로 인해 (공기 중으로도 전파 가능한) 사스 바이러스는 건물 내 위아래 층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오수 배관이 아닌) 생활하수 배관을 통해 다른 세대들의 실내로 유입됐고, 그렇게 감염된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중국, 싱가포르, 캐나다 등지로 병원체를 퍼뜨렸다. 선진 산업도시인 홍콩의 허술한 위생 체계가 불러온 집단 발병 참사였다.


그 후 세계보건기구는 (그 전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인간의 배설물이 호흡기의 침보다 더 주요한 사스 전염 매체라고 뒤늦게 밝혔다. 그렇다면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코로나 바이러스’인 사스 바이러스와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얼마나 비슷할까. 아직은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알 수가 없다. 다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스 바이러스와 85% 이상 흡사하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 지금, 분변을 통한 전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는 상황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공중위생이 비교적 좋은 나라지만, 하수 체계는 그렇지 않은 걸로 안다. 홍콩 아모이 가든 사태와 같은 배설물을 통한 전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이러한 우려도 과도한 공포심일까? 대개 공포를 부르는 건 아는 것보단 모르는 것이다. 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똥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진지하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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