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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Sep 04. 2020

<장기불황>을 읽었다

슈카나 존 리 같은 이들이 공중파 TV에 등장해 주식의 미덕을 공포하고, MBC <구해줘 홈즈>에선 부유한 연예인들이 전세 3억대 신축 빌라가 너무 저렴하다며 탄식을 늘어놓는다.



마이클 로버츠의 <장기불황>을 읽었다. 물론 내가 이 책을 완전히 이해했을 리 없다. 절반 정도나 알아먹었을라나. 그치만 나같이 경알못에 가까운 사람에게도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지금의 시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과 맞물리는 이야기를 종종 명료한 문장들로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내 주변 사람들(=젊은 층)이 주식과 부동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대에 따른 관심 대상의 변화도 이유겠지만, 지금의 현상은 세대를 넘어 시대의 문제로 보인다. 낮은 성장률은 꽤 오래 지속될 것이고, 언젠가 크레딧(거품)은 터질 것이며, 그 희생양이 특정 계층이자 특정 세대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시기가 시기니만큼 주식과 부동산을 예능/교양에 접목해 만든 방송 프로그램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슈카나 존 리 같은 이들이 공중파 TV에 등장해 주식의 미덕을 공포하고, MBC <구해줘 홈즈>에선 부유한 연예인들이 전세 3억대 신축 빌라가 너무 저렴하다며 탄식을 늘어놓는다. 단타와 장타가 서로 천지 차이이고, 다주택과 1주택과 실주택이 엄연히 다를진대, 언론이나 유튜브를 통해 주식과 부동산 이야기로 입 털어 돈 버는 소위 전문가들은 계층이나 계급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는다. 누구에겐 대박의 기회지만 또 다른 누구에겐 쪽박의 계기일 수 있는 상황이라든가, 투기가 근본적으로 (누군가 벌면 누군가는 잃는) 제로섬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그들은 철저히 외면한다. 존 리가 방송에서 동학개미운동을 올려치기 하며 ‘단타는 도박이니 20년 뒤를 보고 노후 대비 차원으로 장기 투자를 하라’고 떠들어봤자, 그걸 보는 젊은이들이 전략을 바꿔 주식을 그렇게 하게 될까? 과연 그렇게 할 수나 있을까? 기만적일 뿐이다.


나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지만, 세상을 더 넓게 이해하기 위해선 전문가가 되기보다 경청할 만한 전문가들의 얘길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쓴 마이클 로버츠는 영국의 고전적 맑스주의 경제학자이고, 당연하게도 자본주의 체제의 이윤율 하락 경향을 논거의 핵심에 두며, 그래서 누군가는 또 그 레퍼토리냐며 고리타분하다고 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런 비루쥬 경제학자들의 얘기가 흥미롭고, 케인스주의 경제학에 대한 이들의 비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느낀다. 물론 책을 다 읽은 뒤에도 마이클 로버츠의 주장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지지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래와 같은 (다소 뻔한 내용을 포함한) 이야기 정도는 스크랩해두었다가 거듭 고민해보고 싶다.





“이윤율 하락은 투기를 촉진한다. 자본가들이 상품을 생산하여 충분한 이윤을 벌지 못할 때, 증권 시장에 투기하거나 다른 다양한 금융 수단을 구입한다. 자본가들은 거의 동시에 이윤율 하락을 겪기 때문에, 이런 주식과 자산을 동시에 구입하기 시작하면서 가격을 높인다. 하지만 주식과 다른 금융 자산들의 가격이 상승할 때 모든 사람들은 그런 금융 상품들을 구입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거품의 시작이며, 1963년 튤립 위기 이후에 되풀이해서 보았던 방식이다.”


“예를 들어 투기가 주택에서 일어난다면, 이는 노동자들이 버는 것보다(자본가들이 가변 자본으로서 지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고 쓸 수 있는 선택권을 창조하며, 이런 방식으로 ‘실현 문제’는 해결된다. 조만간 투자자들이 그런 자산들의 가치가 구매한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거품은 터진다. ‘실현 문제’는 거품 전에 비해 확대된 형태로 다시 나타난다. 이제 노동자들은 이자와 함께 대출을 갚아야만 하고 그래서 버는 것보다 더 적게 써야만 한다. 그 결과는 처음에 임시로 피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과잉 생산이다.”


“현재 세계경제는 장기불황에 빠져 있다. 이것이 이 책에서 주되게 전달하고자 하는 말이다. 하지만 세계 자본주의는 이런 불황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결국 아마도 자본의 가치(생산수단의 가치, 가공자본의 가치, 고용된 노동자의 가치)를 더 파괴하는 또 한 번의 침체를 겪은 후에, 살아남은 자본들을 위해 이윤율이 충분히 상승하여 투자와 성장의 상승 국면을 시작할 것이다. 물론 이는 주요 자본주의 경제국들에서 계급투쟁으로 노동력이 자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것을 가정하지 않을 경우이다. 그래서 현재의 장기불황은 최종 위기가 아니다. 세상에는 착취당할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있으며, 그리고 가치와 잉여가치의 팽창을 위한 새로운 콘드라티예프 순환을 제공할 새로운 기술혁신들이 항상 있다.”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운동 법칙, 즉 이윤율 저하 경향이 작동할 것이다. 자본 편향 기술이 증가하면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 상승할 것이고 따라서 노동은 결국 이윤율(모든 자본비용에 대한 잉여가치 비율)을 유지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가치를 생산할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에서는 절대로 로봇 사회에 도달하지 못하며, 노동하지 않는 여가 사회로 이를 수 없다. 위기와 사회 폭발이 그런 사회에 도달하기 훨씬 전에 방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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