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도 거친, 하지만 아쉬운 이야기
요즘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로 <귀향>이 있죠?
시민들의 후원과 참여, 여러 이유들로 제작이 중단되기도 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아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마침 또 삼일절을 맞아 국민정서와 민족의식을 살짝 자극(?)하면서 흥행하고 있습니다.
-6.7 vs 9.8-
평론가평점 6.7 / 관람객평점 9.8로 간극이 좀 큰데요. 저는 솔직히 이 영화를 보고
역시 평론가들의 평점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이번엔 평론가 평점이 좀 더 설득력 있는 것 같습니다.
2차대전, 일제강점기 막바지인 1943년 위안부에 끌려간 소녀들의 가혹한 삶과 일본의 반인륜적인 만행을
15세 관람가에 적당한 수준에서 상당히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그렇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가지는 가치는 분명히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소녀와 현재의 할머니-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화와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귀향>은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인 무당과 굿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당시의 참혹했던 전쟁통의 위안부 소녀들과 상처로 얼룩진 할머니들의 현재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냅니다.
과거의 주인공인 14살 거창소녀 정민과 현재의 화자인 영옥 할머니,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영매 은경이 고발하는 일본군의 만행과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생지옥의 현장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화를 돋우고, 분해서 눈물이 날지도 모릅니다.
-한 맺힌 스토리-
정민을 비롯한 소녀들이 중국 만주로 끌려가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며 참혹한 위안부 생활을 하면서도
서로 끈끈한 정을 쌓고, 마침내 일본군의 패배로 자유의 몸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영희(영옥) 대신 정민이 일본군의 총에 죽고 맙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괴불노리개를 통해 당시를 접하게 된 영매 은경이 영옥 할머니에게 정민의 영혼을 불러내 할머니의 가슴 깊은 한을 풀어준다는 내용입니다.
-아쉬운 완성도-
사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내용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만 저는 일본군의 만행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고, 위안부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를 소위 까고 비난하는 것이 일본의 군국주의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우익이라는 이상한 결론으로 귀결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이 영화의 주제나 메시지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나 완성도가 아쉽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개연성-
물론 <귀향>은 우리가 반드시 보고 듣고 알아야 할 우리의 슬픈 과거이자 잊어서는 안 될 이야기입니다.
<귀향>이 이렇게 개봉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노력이 있었고, 제작과정 자체가 또 한편의 드라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의도로 만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평가를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슷하게 국민정서를 건드렸던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의 경우, 조금 불편한 부분이 있지만서도 스토리가 워낙 탄탄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영화의 근간은 결국 이야기인데, <귀향>에는 이야기의 개연성이 좀 부족하며 엉성한 부분이 조금 있습니다.
-배우들간의 연기차-
개인적으로 정민 역의 강하나, 은경 역의 최리의 연기는 꽤 흡입력이 있었고, 영희 역의 서미지는 매우 예뻤습니다만, 그 외 (손숙, 황화순 등 중견배우들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는 확실히 부족한 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민족의식을 구걸하는 듯한 과도한 설정 또한 불편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특히 초반부에서 정민과 아버지가 밀양아리랑을 흥얼거리는 부분은 많이 아쉬웠습니다.
-토속적인 부분의 지나친 강조-
과거와 현재의 소통이라는 전체적인 포맷은 좋았지만 영매를 통한다는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부분을 강조하다보니 오히려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지나친 강조는 또 다른 강요가 될 위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은경이 왜 영매가 되는지, 하필 개불노리개에 반응하게 되는지, 과거의 고증에 집중하다보니 현재 시점의 설정이 어색하고 설득력도 떨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차라리 관람등급을 더 높여서 아주 사실적으로 접근하거나 영매라는 설정보다 타이타닉이나 미드 밴드오브브라더스처럼 인터뷰를 중심으로 그려나가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깁니다.
-영화와 다큐, 그 사이-
이런 슬프고도 분한 과거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극히 적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 번쯤 봐야할 영화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위안부의 억울한 과거와 일본군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려면 차라리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필수로 봐야할 크레딧에 나오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그림-
오히려 영화가 끝난 후, 크레딧에 올라오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진심이 담긴 그림들이 제 마음에는 더 와 닿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화가 끝날 때 '이 영화를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바칩니다'라는 자막이 뜨는데,
그 분들을 위한 헌정영화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이야기, 봐야할 영화이지만 투자를 제대로 받았으면 더 좋았겠다 하는...
조금은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귀향>
지극히 개인적인 프리뷰로서 ★★★★
(5개: 재미+작품성=어머, 이건 꼭 봐야해!)
(4개: 작품성or재미=딱히 싫어하는 취향이 아니라면 보면 좋을 영화)
(3개: 무난하게 볼 수 있는 킬링타임용)
(2개: 취향을 심하게 타고, 굳이 안 봐도 될...)
(1개: 왜 만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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