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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드고릴라 Dec 06. 2018

이태원 한복판에서 제주 섬마을 가파도의 하루를 경험하다

현대카드 <가파도 프로젝트> 전시 취재기



아, 우리 마을이 이렇게 생겼구나…


(출처: 현대카드 뉴스룸)

가파도 AiR 전망대의 계단을 올라,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의 모습을 70여년 만에 마주한 분들이 말했다. 가파도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현대카드 스토리지)

지난 10월 31일, <가파도 프로젝트 gapado project> 전시 기자 간담회에 초청받아 현대카드 스토리지를 방문했다. 


현대카드에서 오랜 시간 가파도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파도’가 어떤 곳인지, 이 프로젝트의 목적과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상태였다. 간담회를 시작하기 전 Navy 에디터와 나눈 대화의 첫 마디는 이랬다. “그래서 <가파도 프로젝트>가 무엇을 위한 건데?” 이번 전시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을까? 서울 이태원 한복판. 그곳에 바다 위 작은 섬마을의 모습을 어떻게 펼쳐 놓았는지, 조심스레 들어가봤다.




◆ 가파도를 ‘전시’로 만나다


“건축은 회화나 조각 등과는 좀 다릅니다. 실제 건축물을 전시장에 옮겨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건축 프로젝트를 전시한다는 것은, 현장의 건축물을 전시장으로 가져와서 ‘재해석’하는 작업입니다.”


(<가파도 프로젝트> 전시 기자 간담회)

처음 입구에 들어섰을 때 든 생각은 ‘생각보다 전시 공간이 협소한데..?’ 였다. 골프장 18홀 남짓,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섬이라고 해도 가파도 전역을 대상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다. 그 내용을 이 공간에 다 담아낼 수 있었을까?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한 선택, 그리고 6년이라는 시간을 압축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 그 결과물의 핵심은 여기에 있었다.


“이번 가파도 프로젝트 전시는 단순히 완성된 건축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물이 나오게 된 기저의 철학, 배경, 노력, 그리고 ‘진정성’을 담아내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전시장 내부 전경)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2012년부터 시작된 지난 6년 간의 <가파도 프로젝트>의 기록과 역사를 조망한다. 지하 2,3층 전체에서 초기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완성된 건축물의 모형, 다양한 생태조사 및 인터뷰 기록, 그리고 가파도에 머물렀던 작가들의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었다.




◆ ‘현대카드’의 역할


( (좌)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우)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 출처: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홈페이지)

최근 위켄드 내한으로 화제를 모았던 컬처프로젝트, 뮤직·트래블 라이브러리, 스토리지 등 현대카드가 문화에 쏟는 관심은 이미 꽤 유명하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지역 재생 프로젝트라니. ‘가파도’라는 섬에서 어떤 그림을 본 걸까? 가파도 프로젝트에서 현대카드의 역할은 뭘까?


( (왼쪽부터) 양아치 미디어아트 작가, 류수진 현대카드 Brand1실장, 최욱 원오원 아키텍츠 소장)
“건축물의 완공까지는 현대카드가 주도한 부분이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계속 지역 주민들을 서포트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역할론의 변화를 줄 것이고요. 마라톤으로 가져가는 프로젝트예요.”


문화사업과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현대카드가 새롭게 주목한 곳은 제주 남쪽 섬 가파도였다.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현대카드의 행보를 생각하면 왠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프로젝트다. 서울 도심에 아날로그 지향적 문화공간을 만드는 데서 나아가, 보다 자연과 가까운 마을 전체를 영감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 어떻게 보면 현대카드의 기획으로 변화한 가파도는 각 라이브러리가 추구하는 ‘몰입’, ‘발견’, ‘울림’, ‘채움’의 시간을 한번에 경험할 수 있는 풍요로운 곳일지도 모른다.


(가파도의 마을과 농경지 1/100 축소모형)

사실 처음에는 당연히 현대카드가 투자해서 진행하는 사업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현대카드가 프로젝트를 기획 및 제안했고 팀을 꾸려 운영하고 있지만, 제주특별자치도청의 예산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였다. (관계자는 일종의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고 표현하더라.) 현대카드가 잘 하는 일, 어떤 깊이를 가진 문화적 시공간을 창조하는 것. 그 시공간을 형성하는 모티프가 바로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Artist in Residence, ‘가파도 AiR’였다.




◆ 가파도 에어(AiR), 문화의 축으로 서다


“경제가 활성화되고 지역이 발전하려면 주민들이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마을의 역사가 쌓여가는 것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가파도 에어와 아티스트 입주 프로그램은 가파도의 역사를 쌓아 나갈 수 있는 문화적 모티프가 될 것입니다.”


(가파도 AiR 1/15 축소모형)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끌었던 모형의 정체가 가파도 에어(1/15 축소모형)였다. 버려진 채 25년 정도 물 속에 잠겨 있던 지하 구조물을 복원해서 아티스트들의 창작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한다. 섬을 훼손하지 않고 가파도 에어와 같은 큰 시설을 짓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가파도 AiR 내부 구조 모형)

완공 후 2018년 4월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가파도 에어에 입주해서 3~6개월 동안 섬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작가들은 자연 속에서 작업에 몰입할 수 있고, 지역 주민들은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윈윈 프로그램.


“가파도 에어 입주 작가는 뉴욕현대미술관(MoMA), 런던 TATE, 국립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서 결정됩니다. 별도로 작가에 대한 기준 및 조건을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가파도 지역 문화와 작가들의 작업이 어우러져 상승작용하며 가파도의 문화 영역을 함께 이끌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지향점에 공감하는 작가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가파도 AiR 설명)

현대카드는 2021년까지 가파도 에어의 운영을 담당한다.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인문학, 아트 등 넓은 문화 영역의 작가를 대상으로 입주 작가를 선정한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 간담회에 참석한 1세대(?) 입주 작가 양아치 작가의 비디오 작품을 비롯해 정소영 작가, Eliana Otta Vildoso(페루)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가파도 AiR에서 탄생한 작품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양아치 作, Eliana Otta Vildoso 作, 정소영 作)
“가파도에서 좋은 결을 느낄 수 있었어요. 서울, 도시 생활에서는 소비가 되잖아요. 문만 열고 나가도 만날 수 있는 자연, 소박하고 정이 있는 주민들을 통해 소비됐던 것을 채우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진 조형성, 빛·색·선을 양껏 충전할 수 있었던 너무나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작가는 아니지만, 뭔가 한번쯤 입주해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머물러 있어야 가파도의 매력을 완전히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 과거부터 미래까지, 끝이 아닌 시작을 말하다


(6년간의 과정이 기록된 타임 월 Time Wall)

인상깊었던 것은 프로젝트가 시작된 2012년부터 6년간의 과정을 이미지와 영상으로 구성한 ‘타임 월(Time Wall)’이었다. 한쪽 면을 가득 채운 기록의 중심에는 가파도 주민들의 얼굴이 있었다. 고유한 섬의 자산을 유지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의 씨앗을 심기 위해, 가파도 주민 모두와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인터뷰 내용도 다 보관하고 있다고. ‘실제 살고 있는’ 주민들을 존중하며 그들과 함께 결정하고, 긴 시간 가파도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파도 프로젝트는 정해진 결과를 향해 가는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큰 미래상을 세우고 그에 맞게 궤도를 끊임없이 수정해가는 ‘시나리오플랜’이라고 한다. 핵심가치 또한 1)가파도 자연 생태계의 회복과 유지, 2)자립적 경제시스템 구축, 3)지역과 문화의 공존의 세 가지다. 처음에는 이 설명이 명확히 와닿지 않았는데, 가파도 건축 사업의 기준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됐다.


가파도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털어낼까에 대한 고민 끝에,
몇 가지 기준을 세웠습니다.


1. 지역 주민들을 위한 프로젝트이고, 그들의 삶의 터전이므로 마을 풍경을 고스란히 유지해야 한다.
2. 디자인적으로 이 마을에 필요한 ‘적절함’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3. 주민들 대부분이 65세 이상.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집을 손볼 때 다루기 쉬운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결국 최종 목적은 건축물의 완성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파도 에어를 새로 짓고 포구를 정비하는 등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생긴 변화를 ‘시작’으로, 지역 주민들이 자생적으로 새로운 경제,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 가파도 프로젝트는 ‘경제와 생태, 문화가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려는 시도였다.


“가파도가 ‘인스타라이크’한, 인스타 감성이 담긴 곳으로 알려지면서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어요. 현대카드에서 목표했던 대로 섬에 젊음과 활력이 살아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프로젝트는 실제 지역 주민들의 자생적 경제 발판 마련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데, 지금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여러 축제를 기획 및 진행하고 있어요. 주민들이 스스로 끌어 나가는 ‘가파도 다운’ 문화의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가치가 있다고 봐요. 이 모멘텀을 잃지 않고 계속 가야겠죠.”


가파도 프로젝트로 마을에 생맥주를 파는 조그마한 스낵바가 생겼다고 한다. 올 여름 무척이나 더웠던 날, 시원한 맥주를 찾는 주민들과 입주 작가들로 인해 하루 매출 100만원을 넘기며 마을의 공식 사랑방으로 자리잡았다. (최고 매출이라는 후문.) 평지섬 가파도에 솟아난 가파도 에어의 전망대도 섬 주민들에게 큰 기쁨과 선물이 됐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눈에 내려다본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만들어낸 변화를, 가파도 주민들이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 서울 한복판에서 경험한 제주 남녘 섬의 하루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하루의 시간, 그 변화를 몸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자연이란 무대와 사람의 몸이 만나는 곳, 그곳이 가파도입니다.”


(지하 3층, Gapado Video Works)

지하 2층의 가파도 아카이브는 현대카드와 원오원 아키텍츠가 공유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의미를 밀도 있게 눌러 담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하 3층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이곳은 오롯이 가파도의 모습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스크린들로 채워져 있었다.


기자 간담회 때는 사람이 많아서 제대로 못 본 느낌이었기에, 간담회 이후 스토리지에 다시 방문했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서 지하 3층을 혼자 독차지하고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스크린 앞에 마련된 의자에 가만히 앉았다.


(가파도의 바다)


(가파도에서 볼 수 있는 일몰)

한쪽 벽면을 다 채운 큰 스크린에서 일출부터 일몰까지, 가파도의 다양한 면면들이 흘러나왔다. 맑은 날과 흐린 날 가파도의 바다, 배 위에서 그물을 걷는 주민들,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새와 고양이, 바람에 흔들리는 청보리밭… 가파도의 소리가 지하 3층을 가득 채우며 울려 퍼졌는데, 파도 소리와 함께 순간 저 남해 어딘가로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늘 분주한 서울 한복판, 높은 빌딩들 사이를 걷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어디 조용한 데 가서 며칠만 있다가 오고 싶다’, ‘탁 트인 풍경 보면서 심호흡 좀 하고 싶다’ 등등. 마음은 굴뚝같지만 떠나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을 때, 현대카드 스토리지 <가파도 프로젝트> 전시를 관람해 보는 것도 좋겠다. 아 물론, 전시를 다녀온 후 진짜 가파도에 가고 싶어지는 부작용(?)은 어쩔 수 없다. 본 에디터가 그런 것처럼.



*이번 <가파도 프로젝트> 전시는 2019년 2월까지,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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