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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Oct 24. 2022

손 들고 서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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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한 선생님

“채혁이 너 또 숙제 안 해왔어? 뒤에 나가서 1분 동안 손 들고 서있어!”

채혁이가 또 숙제를 안 해왔다. 사실 애초부터 채혁이가 숙제를 해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구구단 외우기도 잘못하는데, 두 자릿수 곱셈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단 말인가. 가정에서 관심을 두고 지도를 해주시면 좀 나을 텐데, 부모님은 생업으로 바쁘셨고 도통 채혁이 학업에 관심을 두지 못하셨다. 또한, 애초에 학습 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학습 능력도 떨어졌기에, 두 자릿수 곱셈은 채혁이에게 큰 산과 같았다.

 초임 발령을 받고, 공정한 선생님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공정함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함께 학급 규칙을 정했고, 규칙을 원칙대로 지켜나가기로 했다.     


 손 들고 서 있어 

“요즘 숙제 안 해오는 학생들이 많네요. 숙제 안 해오면 어떻게 할까요?”

주진이가 말했다.

“몽둥이로 맞아야 해요.”

농담 반 진담 반인 주진이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때릴 순 없죠. 다른 방법 없을까요?”

“뒤에 나가서 손들고 1분 동안 손 들고 서있기 해요.”

“그래요. 그건 괜찮겠어요. 그렇게 해요.”

몽둥이로 때리는 거나 1분 동안 손 들고 서있는 거나 똑같은 체벌인데, 손 들고 서있는 걸 체벌로 인식하지 못했다. 4명, 3명, 2명. 손 들고 있는 게 싫었는지 숙제를 안 해오는 아이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런데 2명은 항상 숙제를 안 해왔다. 재민이와 채혁이었다. 재민이는 충분히 숙제를 할 수 있음에도 귀찮아서 안 해오는 듯했고, 채혁이는 수학 실력이 부족해서 숙제를 도무지 해올 수 없어 보였다.

 숙제 검사를 할 때마다 난감했다. 채혁이가 안 해왔어도 그냥 못 본 체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날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특히 재민이가 날카로운 눈으로 날 쳐다봤다. 숙제를 안 해 온 채혁이를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는 거였다. 채혁이도 똑같이 숙제를 안 해왔는데, 그냥 넘어간다면, 공정한 게 아니지. 채혁이와 재민이는 변함없이, 교실 뒤편에서 1분간 손을 들었다. 불편한 마음이 있었지만, 나는 누구보다 공정한 교사니까 어쩔 수 없었다.      


 공정함이란

 시간이 흘러 전근을 가게 되었다. 새 학교에 부임한 첫날, 교장 선생님께서 선생님들을 모아 놓고 공정한 교육이라는 주제로 연수를 하셨다. 연수가 시작되고, 키가 큰 아이와 키가 작은 아이 그림을 보여 주셨다. 아이 둘은 커다란 담장 앞에 서 있었고, 담장 너머에선 야구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키가 큰 아이는 담장 너머로 야구 경기를 볼 수 있었지만, 키가 작은 아이는 담장 때문에 야구 경기를 볼 수 없었다. 교장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물었다.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주는 게 공정한 걸까요?”

“발판을 만들어 주면 되지 않을까요?”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잠시 후 두 아이 모두에게 같은 크기의 발판을 줬다. 발판이 있음에도, 키가 작은 아이는 여전히 담장 너머를 볼 수 없었다. 발판이 너무 낮은 탓이었다.

“공평하지 않나요? 두 아이 모두에게 똑같은 높이의 발판을 주었으니까요. 발판 덕분에 키가 큰 아이는 야구 경기를 더 잘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아직도 담장 너머를 볼 수 없는 아이가 있네요. 그러면 어떻게 하죠”

“키가 작은 아이에게는 더 높은 발판을 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한 분이 크게 말씀하셨다. 키가 작은 아이에게 더욱더 높은 발판이 놓였다. 두 아이 모두 담장 너머로 야구 경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약자에게 더 큰 발판을 제공하는 것, 이게 바로 공정함 아닐까요?”


 담장 너머를 볼 수 없는 아이

 연수를 들으며 채혁이 생각이 났다. 그간 공정하게 지도한다면서 채혁이를 힘들게 했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발판 없이는 도저히 담장 너머를 볼 수 없는 채혁이었다. 그런 채혁이를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기준으로 다그쳐왔으니, 채혁이는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을까.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내 미숙함으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상처를 줬던 모습이 단지 그것뿐일까. 그런 생각에 이르자, 자괴감이 들었다.

 ‘10년 전 처음 교단에 섰던 내 모습도 담장 너머를 전혀 볼 수 없던 아이처럼, 작은 모습이었을 거야.’

 초임 교사 시절을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미숙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실 속에서는 수시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초임 교사 시절엔 아이들 앞에서 주먹구구식으로 행동했다. 성실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교사로서 키가 작았고, 능력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잣대로 초임 교사 시절을 판단하니, 미숙한 모습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으리라.

 순간 연수 시간에 보았던 그림이 다르게 해석되었다. 그간은 그림을 떠올릴 때마다 안타까운 상황에 있는 아이들만 떠올랐다. 자신이 가진 것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장애물에 가로막혀서 담장 너머를 볼 수 없는 아이들 말이다. 그런 아이에게는 커다란 발판을 지원해 줘야 할 것이다.

     

  담장 너머를 볼 수 없는 교사

 그런데 장애물에 막혀 있는 사람이 아이들뿐일까? 교사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도 지혜도 부족해서 스스로 힘으로는 온전하게 아이들을 지도할 수 없는 교사 말이다. 교대를 졸업하고 수습 기간 없이 현장에 바로 배치되는 초임 교사에게, 처음부터 경력 교사의 능숙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 나 역시 초임 교사 시절에 엉뚱한 행동을 많이 했고, 그런 모습이 떠오를 때면 자신을 한없이 자책했다. 

 10년 전 새내기 교사였던 나는 키 작은 아이이고, 연차가 쌓인 지금은 그때보다 훌쩍 큰 모습이다. 두 교사를 똑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지 않을까. 현재의 잣대로 과거의 나를 책망하는 것 또한 공정한 모습이 아니리라. 과거의 나에게도 높은 발판을 쥐여준 후에, 그 잣대로 평가를 해야 옳지 않을까.

 과거의 나 자신에게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을 갖기로 했다. 채혁이가 노력해도 숙제를 할 수 없었던 것처럼, 과거의 나도 완벽하게 아이들을 지도할 수 없었다. 채혁이가 숙제를 못 했어도 그냥 넘어가야 했던 것처럼, 현재의 나도 과거의 내 부족함을 못 본 채 넘어갈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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