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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Oct 25. 2022

불타는 교사

자책

 불타는 교사

미술 시간, 수철이가 뒤를 돌아보고 친구랑 얘기를 했다. 조용히 수철이에게 다가갔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수철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 그림 다 그렸는데요?”

“다 그렸으면,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독서하라고 했잖아.”

“저 안 떠들었어요.”

“그럼 지금 뒤돌아서 뭐 하고 있는 건데?”

“저 한 마디도 안 했어요.”

“너 아까 전에도 선생님이 똑같은 얘기하지 않았니?”

수철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앞에서 자기 공책을 부욱 찢었다. 기분이 상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너, 밖으로 나와.”

수철이를 데리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수철이가 눈을 치켜뜨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철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선생님이 예의 없는 거 제일 싫어하는 거 몰라?”

“저 안 떠들었어요. 아무 말도 안 했다고요.”

“공책 찢는 건 뭔데?”

“공책 다 썼어요. 다 쓴 부분 뜯어낸 것뿐이라고요.”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너, 자꾸 말대답할래? 그냥 죄송하다고 하면 되잖아. 뭔 말이 그렇게 많아!!!!!!!!”

학교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수철이가 갑자기 차렷 자세를 하더니,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림 다 그렸으면, 다른 친구들 그림 그리는데 방해되니까 조용히 할 거 하라고 했잖아. 그래, 친구랑 얘기할 수도 있어. 그런데 네가 선생님 앞에서 공책 찢는 건 도저히 못 참겠다. 그게 선생님 앞에서 할 행동이니?”

수철이가 망부석처럼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붉어진 수철이 눈가에서 연신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 네가 잘못한 거 알아, 몰라?

수철이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 닦고 교실로 들어와.”

     

  내 모습 속 아버지 모습

 수철이가 화장실에 간 사이, 복도 창문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한숨을 여러 차례 내쉬어봤지만 마음이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훌훌 털고 교실로 들어갔다. 반 아이들 눈빛이 예전 같지 않고, 얼음장같이 차갑게 느껴졌다. 아이들도 방금 전에 내가 소리를 버럭 지른 것을 들었으리라. 부끄럽고 민망했다. 조금만 더 참을걸. 수철이에게도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자책이 되었다.

 점심시간에 복도에서 수철이가 내 옆을 지나갔다. 굳은 표정으로 90도로 꾸벅 인사하는 수철이의 모습이 낯설었다. 평소 같았으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면서 인사를 했을 텐데. 90도 인사가 뭐람. 수철이의 굳은 표정을 보니, 소리를 버럭 지른 일이 떠올라서 마음이 쓰리고 민망했다. 근데 이런 감정이 낯설지 않았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참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다. 친한 친구들 이름도 모두 기억하시고, 그들의 근황도 종종 물으셨다. 살갑고 마음이 좋은 아버지, 친구 같은 아버지가 참 좋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버지에게는 몇 가지 역린이 있었다. (여기서 역린은 용의 가슴에 거꾸로 난 비늘이란 뜻으로,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급소를 말한다.) 무심코 아버지의 역린을 건드리면, 불같은 화가 되돌아왔다.  

 어느 날 아버지가 또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한 채로,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불같이 화를 내셨다. 굉장히 당황스럽고, 마음이 아팠다.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화만 내는 아버지가 미웠다. 그런데 마음이 아픈 이유가, 단지 불같이 화를 내시는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뭐, 아버지의 분노 표출이 정도가 심하긴 했지만, 살다 보면 누구나 화를 낼 수도 있는 일이니까.  

 화를 내고 30분 정도 지나면 아버지의 모습이 돌변했다. 쥐구멍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진 모습으로 내 곁을 맴돌았다. 하루 종일 나와 가족들의 눈치를 살피고, 고개도 못 들면서 미안해하는 모습. 아버지가 화를 내는 모습보다, 아버지가 스스로를 자책하는 모습이 더 불편하고 싫었다. 한없이 작아진 아버지 앞에서, 나는 내 서운함을 마음껏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작아진 아버지를 위로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어른이니까 자녀에게 따끔하게 화를 낼 수도 있는 거지. 화를 냈으면 당당하게 그냥  화난 모습으로 있으면 안 되나? 아니면 미안한 마음이 들면 감정적으로 대해서 미안하다고 제대로 사과를 하던지.

 불같이 화를 내고, 조금 이따가는 한없이 작아져서 스스로를 자책하는 모습. 우리 반 아이들 앞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던 그 모습을 종종 되풀이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이런 반복적인 고리를 끊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화를 낼 수도 있는 거지. 감정적으로 대처한 건 문제지만 생각해보면, 충분히 화날만한 상황이었잖아. 자책해봐야 화냈던  돌이킬 수도 없어. 나는 아버지처럼 작아진 모습으로 자책만 하진 않을 거야.’    

 

 툭툭 털고 일어나기를

 쉬는 시간, 조용히 수철이를 불렀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전에 선생님이 네가 미워서 그런 거 아냐. 선생님이 평소에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지?”

친근하게 수철이의 어깨를 감았다. 수철이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수철아, 네가 잘못한 게 뭔지 알지?”

수철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는 선생님도 너무 감정적으로 말했던 것 같아.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었는데.”

수철이의 굳은 표정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다가가야 할 차례였다. 수업 시간, 사물함 안쪽에서 비장의 무기인 간식들을 꺼냈다.

 “너희 하루 종일 공부하느라 힘들지? 당 떨어졌는데, 다 같이 먹고 힘내서 공부하자.”

 “선생님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치며 즐거워했다. 다행스럽게 반 분위기가 훨씬 편안해졌다. 스스로의 감정을 돌아보지 않았다면, 자책만 하다가 하루가 흘러갔을 것이다. 그건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교사인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잠자리에 들어서 하루를 돌아보면, 이불 킥을 할만한 민망하고 큰 실수가 종종 떠오른다. 아이들이 어른인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할까. 실수하지 않는 완벽한 모습일까. 그렇진 않을 것 같다.

 어른들이 실수를 해도 오뚝이처럼 툭툭 털고 일어나는 모습을 바라지 않을까. 또한 솔직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된 일 바로잡기도 바랄 것이다. 스스로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며, 툭툭 털고 교사로 또 하루를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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