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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Oct 27. 2022

전학생 태헌이

억압

 전학생 태헌이

 아침에 교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고 선생님, 전학생이 왔으니 교무실로 와주세요.”

교무실에 가보니, 학부모님으로 보이는 여성 한 분과 남자아이 한 명이 있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학부모님이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태헌이 담임 선생님이시죠? 저는 태헌이 엄마예요. 저와 남편은 여기서 3시간 정도 걸리는 A 지역에 살아요.”

“A 지역이면 굉장히 먼데요?”

“네. 그런데 저희 부부가 둘 다 교대로 일을 하느라 아이를 챙길 여유가 없어요. 마침 대학생인 큰 누나가 이 근방에서 혼자 살고 있어서요. 당분간은 태헌이가 큰 누나 집에서 같이 살기로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전학을 오게 되었고요. 준비물이나 챙길 것이 있으면, 누나에게 연락을 해주세요.”

아이만 홀로 타지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는 말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큰 누나가 돌본다고는 하지만 태헌이가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생이별하게 된 것이 아닌가. 태헌이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특별히 잘 챙겨줘야겠고 다짐했다.

 태헌이는 씩씩한 아이였다. 자기주장도 강하고, 아이들 앞에서 언변도 좋았다. 전학 온 아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당당하게 지냈다. 그 당당한 태도는 담임인 나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때로는 당당함을 넘어서 무례하다고 느껴졌기에, 나는 태헌이의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늦둥이 아들이라서 그렇다고 이해해 보려 했지만, 그러기엔 무례한 정도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살던 A는 큰 도시야. 근데 여긴 정말 시골이다.”

“뭐라고? 너 우리 동네 무시하는 거야?”

태헌이가 가끔 친구들에게 이런 식으로 우리 지역을 무시하는 말을 했다. 어느 날, 숙제 검사를 할 때였다.

“숙제 안 해온 사람 일어나세요.”

“선생님, 저 못했어요. 그런데요. 가끔 못할 수도 있지 않아요? 하하하.”

태헌이가 가끔 숙제를 안 해오거나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겸연쩍어 하고 민망해했지만, 태헌이는 본인의 잘못에도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태연하게 말했다. 실수를 인정하지도 않고, 자존심만 센 태헌이의 모습이 참 얄미웠다.     

 얄밉지만 잘해줘야 할 것 같아

 학교에서 태헌이를 볼 때마다, 나랑은 잘 맞지 않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이따금 첫날 보았던 태헌이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늦둥이인 태헌이를 먼 타지에 보내 놓고 얼마나 걱정이 많으실까, 잠은 잘 이루고 계실까. 그런 마음이 들 때면, 태헌이를 살갑게 대하지 않는 내 자신을 책망하게 되었다.

 다음 날 태헌이에게 좀 더 마음을 쏟겠다고, 마음으로 적극 지지해줘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서는 태헌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의기양양하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어제 서울 가서 누나랑 뮤지컬 보고 왔어. 너희 뮤지컬 한 번도 못 봤지?”

“어. 난 뮤지컬 본 적 없어.”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뮤지컬 보러 갈 수 있는데... 다음 주에도 누나랑 또 뮤지컬 보러 갈 거야, 부럽지? ”

 측은한 마음을 갖고 태헌이를 바라보고 있다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특별히 도와주지 않아도 저렇게 당당하게 잘 지내고 있지 않은가. 친구들 앞에서 끊임없이 잘난 척을 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미운 마음만 더 들었다.

 며칠 후, 교내 체육 대회가 있었다. 말은 거창하게 체육 대회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학년인 여러 반이 모여서 함께 체육 활동을 하는 날이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모님들이 체육 대회 날 학교에 방문하지 않았지만, 태헌이 어머니가 멀리서 오셨다. 어머니를 찾아뵙고 꾸벅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특별히 휴가를 내고 체육 대회를 구경하러 오셨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태헌이를 측은하게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직접 마주하니 짠했다.

‘맞아. 태헌이는 내가 특별히 더 잘해줘야 하는 아이였지.’

 그 후로도 태헌이가 불편하니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과, 특별히 잘해줘야겠다는 두 마음이 수시로 공존했다. 불편해서 거리를 두려고 할 때마다, 특별히 잘 챙겨줘야겠단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다고 잘해줘야겠다고 다짐을 하면, 얄미운 행동이 눈에 더 많이 들어왔다. 두 마음 사이를 오가며 어떤 날은 더 잘해주고, 어떤 날은 거리를 두는, 이리저리 엇갈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2학기 어느 날, 태헌이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태헌이가 원래 학교로 다시 전학을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선생님께 미리 연락을 드려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혹시나 내가 태헌이를 불편하게 여긴 것이 들통난 것 같아서 뜨끔했지만, 태연하게 말했다.

“태헌이가 전학을 간다니 아쉽네요. 그래도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태헌이는 씩씩하니까 그곳에 가서도 잘 지낼 거예요.”    

  

 두 가지 감정과 마주하다

일주일 후, 태헌이가 전학을 갔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따금 태헌이 생각이 난다. 힘든 처지에 있었던 태헌이에게 마음을 쏟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 때문이다. 마음이 어려워서, 아내에게 불쑥 태헌이 얘기를 꺼냈다. 아내가 내게 말했다.

“과거에 태헌이를 볼 때마다 잘해줘야겠다는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함께 들었군요? 심리학에서는 이런 감정을 양가감정이라고 해요. 양가감정은 상호 대립되거나, 상호 모순되는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를 말하고요.”

“맞아요.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어서 마음이 불편했어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나타날 때, 어떻게 행동했나요?”

“아이를 미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그쳤어요. 그리고 마음이 어려워도 꾹 참고, 잘해주려고 노력했고요,”

“그렇게 되던가요?”

“그러고 나면 스스로를 속인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어요. 또 집에 돌아와서는 괜히 화가 났고요.”

“태헌이가 미운데 그 감정을 억압한 채, 마냥 잘해주려고 하니 힘들었겠어요. 당신이 왜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요.”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어요. 그 감정 자체를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두 가지 감정을 모두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당신 마음이 훨씬 편안해질 거예요.”

“교사인데, 왜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했냐고, 모두가 나를 책망할 거라 생각했어요.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줘서 고마워요.”

“아무리 담임교사라도 잘난 척하는 아이가 얄밉게 느껴질 수도 있죠. 그리고 당신이 태헌이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당신이 두 가지 감정 모두를 억압하지 않고 인정했다면 훨씬 마음이 편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감정을 억압하지 않으면, 태헌이와 더욱 잘 지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또 내 마음도 훨씬 편했을 것 같고요.”

 아내와 대화를 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억압은 나를 힘들게 하니까

 억압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괜찮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 자신의 마음을 곪게 하기 때문이다. 곪은 마음은 시간이 흐른 뒤 신체적 정신적으로 병을 만들어 내거나, 나보다 더 약한 사람에게 화로 분출된다. 결과적으로 억압은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억압은 상대방에게도 좋지 않다. 부정적인 마음을 억누르고, 상대에게 좋은 말을 해봐야,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 리 없다. 솔직하지 않은 감정은 티가 나기 마련이니까. 상대도 금세 본심을 알아챌 것이다.

 긍정적인 감정만 옳다고 생각했는데, 부정적인 감정도 나쁜 것이 아니라는 아내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그 사실을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스스로를 억압하고 힘들게 하지 않았을 텐데. 교사도 감정을 지녔기에 이따금 아이들이 미울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아이를 억지로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마음을 억누른다고 해도, 그런 상황에서는 아이를 향한 진정한 관심과 사랑이 나올 리가 없었다. 억압된 감정이 나를 힘들게 할 뿐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한쪽 마음만 편애하거나 억압을 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니까. 앞으론 교사니까 마땅히 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스스로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아이가 미울 때는 미운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  

 아이들이 소중하듯 교사인 나도 소중하다. 교사인 나도 감정을 가진 사람인데, 그 사실을 잊고 로봇처럼 행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정적인 감정도 소중한 감정이니까, 앞으로는 그 감정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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