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괜찮아샘 Oct 27. 2022

누가 더 잘못일까

성찰

  김 선생님의 전화

 전화벨이 울렸다. 얼마 전 다른 학교로 전근한 김 선생님 전화였다.

 “고 선생님, 안녕하세요.”

 “김 선생님, 새로운 학교에서 잘 지내시죠?”

 “네 선생님. 이번에 범준이 담임 맡으셨다면서요?”

오랜만에 전화를 건 김 선생님이 갑자기 범준이 얘기부터 꺼내서 몹시 당황스러웠다.

“네 범준이 지금 저희 반이에요. 범준이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

“범준이가 작년에 저희 반이었던 거든요. 혹시 범준이가 반에서 사고를 일으키진 않았어요?”

“네, 아직 까진요. 말수가 없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작년에도 학기 초에는 그랬어요. 학기 말에 가니까 사고를 많이 치더라고요. 친구들하고 크고 작은 다툼도 많았고, 저학년 애들을 때리기도 해서 학폭 직전까지 갔었어요.”

“아, 그런 일이 있었어요?”

“선생님께서 범준이에 대한 선입견을 품게 될까 봐, 이런 얘기는 안 하려고 했어요. 그래도 혹시나 참고될까 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걸러서 들을게요. 하하하.”

종종 이전 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학생 지도에 참고하라며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김 선생님도 그런 거란 생각이 들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김 선생님이 말을 덧붙였다.

“아 참, 박 선생님 아시죠?”

“박 00 선생님이요?”
“네. 맞아요. 작년에 제가 담임할 때, 박 선생님이 저희 반에 자주 오셨어요. 오실 때마다 범준이 보통 애 아니라며, 조심하라는 얘기를 어찌나 하시던지.”

“박 선생님이 왜 그러셨을까요?”

“모르겠어요. 몇 년 전에 박 선생님도 범준이 담임을 하셨는데, 그때 범준이 지도에 어려움이 많으셨나 봐요.”

“그러셨군요.”

“박 선생님이 한두 번 말씀하셨으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그 얘기를 몇 번이나 하셨는지 몰라요. 잊히지 않더라고요. 범준이가 가정에 문제도 많고, 상담도 장기간 받았다며 얼마나 열을 내면서 말씀하시던지.”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박 선생님은 나쁜 사람

학기 초, 범준이가 내게 다가와서는 한참을 쭈뼛대더니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혹시 박 선생님 아세요?”
 “응. 박 선생님 잘 알지.”
 “선생님, 박 선생님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우리 엄마도 그랬어요.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고요.”

“왜 그렇게 생각해?”

박 선생님이 저만 보면 맨날 신경질을 냈어요.”

“아, 그랬구나.”

 평소에 말 한마디 않던 범준이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이전에 담임이었던 박 선생님께 맺힌 게 많은 모양이었다. 다른 선생님을 욕하면 안 된다고 범준이에게 따끔하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러면 범준이가 다시는 내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동료 교사인 박 선생님을 같이 욕할 수도 없었기에, 잠자코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박 선생님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와 오랜 시간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동료 관점에서, 박 선생님은 인상적인 선생님이었다. 아이들 지도에 참 욕심이 많은 분이라 배울 점도 많았다. 그는 항상 아이들이 그날 배운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를 바랐다. 아이들에게 꼼꼼하게 공책 정리 시키는 일도 늘 잊지 않았다.

 아이들을 완벽하게 지도하려는 박 선생님의 노력이 참 경이로웠다. 박 선생님은 단 한 명도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아이들은 그날 할 일을 다 못하면, 3시든 4시든 남아서 모두 해야 했다. 담임교사도 방과 후에 아이들을 지도하는 게 부담스럽다. 과외로 수당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학교 업무를 할 시간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후, 박 선생님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박 선생님 반에 유독 학부모 민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방과 후 수업들어야 하고, 학원에 가야 했지만,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그날 배운 내용을 완전하게 교과서에 적은 후에, 하교해야 했다. 학부모님의 반발이 갈수록 심해졌지만, 박 선생님은 이후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또한, 박 선생님이 아이들을 지나치게 다그치는 태도도 문제가 되었다. 아이들을 부드럽게 지도해도 될 텐데, 방과 후에 남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는 경우가 많았다.  

   

 누가 더 문제일까

 범준이는 집중을 잘하지 못하고, 온종일 멍하니 있을 때가 많다. 그런 범준이가 특별히 신경을 쓰는 일이 있다. 바로 교과서 속 빈칸을 채우는 일이다. 내용은 잘 몰라도, 옆 친구가 쓴 걸 보면서 교과서 빈칸은 빽빽하게 채워 넣는다. 가끔 친구가 필기를 보여주지 않을 땐, 아무 말이나 쓰기도 했다. 특이한 점은 글씨가 조금이라도 삐뚤빼뚤해지면, 지금까지 쓴 모든 내용을 지우고, 다시 바른 글씨로 처음부터 다시 쓴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박 선생님 반에서 반복적으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범준이와 박 선생님은 서로 앙숙이었다. 서로서로 못 마땅해하고, 싫어하는 앙숙. 박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에게 범준이 험담을 쏟아 냈고, 범준이는 담임인 나에게 박 선생님이 이상하다며 하소연을 했다.

 과연 누가 더 잘못일까. 범준이 입장에선 박 선생님이 이상한 사람이고, 박 선생님 처지에선 범준이가 이상한 학생일 뿐이었겠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박 선생님도 범준이도 모두 교내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 둘 다 본인의 단점은 전혀 성찰하지 못하고, 상대만 비난하고 있는 게 아닐까. 둘 다 남의 티끌은 잘 보았지만, 자신의 들보를 찾지는 못했던 게 분명하다.

 둘 사이의 관계를 보며, 내 모습을 돌아본다. 나도 가끔 주변 사람들의 단점만 크게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쉽게 단정해버리곤 한다.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부족했던 부분이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봐야 할 부분은 없었을까. 나는 온전히 선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무조건 악하다고 단정 짓는 건 곤란하다. 그 사람도 또 나도 좋은 면이 있고, 그렇지 않은 면이 있을 뿐이니까. 문득 우리 반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여길까 궁금해졌다. 주변 사람들을 이분법적으로 쉽게 단정 짓는 모습을 버리고, 나 자신을 좀 더 돌아봐야겠다.

이전 13화 전학생 태헌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