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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Oct 26. 2022

반갑지 않은 연락

호의

 반갑지 않은 연락

“선생님은 24시간 콜센터가 아니에요. 특별한 일이 생긴 경우가 아니라면 이른 아침이나 저녁 시간에는 전화나 문자를 하지 마세요.”

 방학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당부했다. 방학 중에는 휴식을 취하고, 또 마음도 돌아보면서 새 학기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내 전화번호를 공개한 이후로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않고, 학부모님과 아이의 전화, 문자가 울려댈 때가 있다. 그래서 방학 전에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당부를 한 것이다.

 “선생님, 저 방학 과제로 주신 글쓰기 책을 잃어버렸어요. 어떻게 해야 해요?”

가족들과 모처럼 가족 여행을 왔는데, 저녁 시간에 우리 반 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가족들과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문자 한 통에 기분을 망쳐버렸다. 갑자기 짜증이 몰려왔다.

 “인터넷에서 책을 구매하렴.”

 웃음 표시나 이모티콘 하나 없이,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다음날 또 문자 한 통이 왔다.

“1학기 때 학교에서 글쓰기 조금 했었는데요. 새 책에 그때 했던 부분도 다시 해야 해요?”

“그럼 그다음부터 해.”

“네”

웃음기 없는 문자가 오고 갔다. 책이 없어졌으면 개인적으로 사면되고, 샀으면 알아서 하면 될 일 아닌가? 꼭 그렇게 늦은 시간에 문자를 보내야 하나?

 학교 일은 잠시 잊고 휴식을 취하려고 여행을 떠난 건데, 문자 한 통에 다시 학교 일이 떠올라서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사실 사적인 시간에 학생 학부모와 문자로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교사이지만, 가정에서는 아이의 아빠로 또 남편으로 온전히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근 후에는 문자나 전화는 되도록 받지 않고, 꼭 답을 해야 할 때는 내 불편한 기분을 담아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게 답을 하곤 한다. 

 근무시간 중에도 대응이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평소 지인들과 카톡이나 문자를 주고받을 땐 이모티콘이나 웃음 표시 가득한 문자를 보내는데, 유독 공적인 연락에는 건조하게 글만 써서 보낸다. 물론 나도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저 경력 교사 시절에는 학부모님과 연락을 주고받을 때는, 마지막 문장 뒤에 항상 웃는 얼굴 이모티콘을 보냈다. 건조하고 사무적일 수밖에 없는 문자이지만 조금이나마 부드러운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연락에 웃음 표시로 함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았다. 마음을 담아서 답변을 보내는데, 건조하게 답이 오면 기분이 상해버렸다. 상대에게 성의를 100만큼 담아 보냈는데, 상대는 왜 나에게 50만큼만 주는 걸까.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에게 100만큼을 보내도 항상 100만큼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에는 나도 50만큼 보내기로 작정했다. 내가 50만큼 보내면, 상대에게 50만큼 돌아오더라도 마음 상할 일은 없지 않겠는가. 이후로는 크게 마음 상할 일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좋아질 일도 별로 없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이번에 가족 여행으로 제주도의 한 호텔에서 2박을 했다. 그 호텔은 5성급 호텔이지만, 노후화되어서 비교적 가격이 저렴했다. 소위 말해, 가성비가 좋은 호텔이었다. 저렴한 가격도 놀라웠지만, 호텔 직원들의 태도도 놀라웠다. 전 직원이 밝은 표정으로 온 마음을 담아서 고객들에게 응대했다. 먼저 다가와서 고객이 불편한 점이 없는지 살피고, 기쁨으로 고객에게 반응하는 모습에 크게 감동하였다. 우리 가족도 직원들의 호의에 고마움을 표하고, 즐겁게 상호작용을 했다. 

“여보, 이 호텔에는 좋은 손님들만 머무는 게 아닐까요? 모든 직원이 친절하고 밝은 걸 보니 좋은 사람들만 상대하는 것 같아요.”

“설마 그렇겠어요. 진상 고객도 많겠죠.”

“그러게요. 항상 예의가 바른 고객만 상대할 순 없을 거예요. 근데 어떻게 모든 직원이 저렇게 시종일관 밝고 친절할까요?”
 직원들이 마음을 담아 100만큼 서비스를 하니, 나 역시도 100만큼 직원들에게 응대하게 되었다. 물론 그들이 똑같이 서비스해도, 절반만큼, 아니 그 이하로 돌려주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치지 않고 최선의 모습으로 응대를 하는 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아이들에게, 또 학부모님들께 친절한 태도를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처음부터 마음 문을 닫은 채 그들을 대하면, 그들 역시도 나에게 마음 문을 닫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례한 태도에 조금 상처받고 속상하더라도 일관되게 밝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교사로서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물론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면, 예의 없는 아이나 학부모님도 종종 만난다.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예의를 갖춰서 교사를 대한다. 예의 없는 극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모두에게 마음을 닫고 지내지 않았던가. 이런 생각에 이르자, 어느 순간부터 사무적으로 사람들을 대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내가 처음부터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상대를 대했다면, 학부모님과 아이들과 조금 더 밝은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언제부터 벽이 생긴 걸까

 생각해보면, 내가 구체적으로 학교에서 마음을 닫게 된 계기가 있다. 초임 교사 시절, 성빈이 어머니가 저녁에 내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성빈이 어머니가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내게 한바탕 퍼부었다.

“친구가 자꾸 장난을 쳐서, 우리 아이가 힘들대요. 선생님께 여러 번 말씀을 드렸다고 하던데, 왜 우리 아이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거예요? 우리 아이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아시냐고요.”

“저도 두 아이의 갈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 얘기도 들어봤고요. 아이들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여서, 둘이서 직접 얘기를 나눠보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바로 해결해줘야죠. 그러라고 선생님이 있는 거 아니에요? 선생님이면 선생님답게, 맡은 역할을 잘하세요. 도대체 교실에서 하는 일이 뭐예요?”

“제가 모든 일에 바로 개입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어요. 아이들 사이에 문제 해결이 안 되면, 그때 제가 개입하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 반 규칙이니까요.”

“그런 규칙 저는 모르겠어요. 당장 우리 아이 문제부터 해결해주세요. 그게 안 되면 교장실에 연락할 거예요.”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기만 하는 성빈이 어머니가 참 야속했다. 한참 말을 듣고 있으니, 귀가 얼얼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후로 학부모님 문자나 전화가 오면 덜컥 겁이 났다. 처음에는 예의를 갖춰 말하는 것 같지만, 언제든 성빈이 어머니처럼 적대적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처가 회복되지 않으면

 과거의 상처가 회복되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한 걸음 더 나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상처를 직면하고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갈 수 있고, 계속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그대로 멈춰 있다면 결국 손해 보는 게 누굴까. 물론 주변 사람들도 피해를 보겠지만,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사람은 바로 나이다. 상처에 머물러 있으면,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도, 학부모님께도 친절한 교사가 되고자 한다. 꾸준히 친절하게 상대를 대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제주도의 한 호텔에서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직원들이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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