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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고 싶은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남을 위한 글쓰기

by 괜찮아샘

성장의 기록으로서의 글쓰기

여러분은 왜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저 역시 오래 생각해 본 질문입니다. 저는 먼저 스스로 성장을 위해 글을 씁니다. 학교 현장에서 어제보다 나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학생·학부모·동료 교사·관리자·교직원 등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다른 이들과 지내면서 기쁜 일도 많지만, 때로는 마음이 무거워질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이나 행동이 비수처럼 꽂혀 하루 종일 마음이 아플 때도 있어요. 반대로 상상치 못한 기쁨으로 마음이 들뜰 때도 있습니다. 그런 순간들이 바로 제가 글을 쓰기 적절한 시간입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고, 기쁜 마음을 오래도록 붙잡아 두게 해 주는 도구가 글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사건의 의미가 또렷해집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한 걸음 자라납니다. 그렇게 쌓인 글을 모으면 언젠가 책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책이 될 수 있을까요? 나를 위한 기록만으로 충분할까요?


독자를 잃은 이야기의 교훈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우연히 한 기업가를 만났습니다. 우리 모임 회원은 아니었지만 특별한 사정으로 잠시 식사 자리에 합석하게 되었지요. 그는 미국에 회사를 설립하여 크게 성공했고, 후에 회사를 수천억에 매각하여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자신의 성공담을 책으로 엮어 출간했고, 강연도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날 그는 우리에게 직접 그 책을 선물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그 책은 제 책장 구석에 꽂힌 채 아직 한 번도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읽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는 이야기꾼으로서 무례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잠시 인사만” 하겠다던 약속을 잊은 채, 자신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가는 것도 개의치 않았고, 대화의 균형은 이미 깨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식사 후 모임을 진행하려는 대표의 말을 끊으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모임 순서가 뭐가 중요합니까? 저 같은 사람과 식사 자리에서 직접 대화할 기회가 얼마나 귀한지 아십니까?”

그 순간, 그의 책에 대한 호기심은 말 그대로 사그라졌습니다. 그가 쓴 이야기가 독자를 향하기보다는 자기 자랑으로 채워져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자기 독백은 결국 자기만을 위한 일기장에 불과합니다.


남을 위한 글쓰기

바로 이 지점에서 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쓰려하는가?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책을 쓰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중 많은 경우는 ‘자아실현’ 일 것입니다. 내 이름을 단 한 권의 책으로 남기고 싶고, 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거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독자를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책이 독자에게 외면당한 채 조용히 사라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로지 자아실현만을 위한 글쓰기는 결국 ‘나를 위한 글쓰기’에 머물고, 출간을 목표로 하는 글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써야 할까요?

첫째, 독자를 상정하는 마음입니다. 내 이야기를 쓰되, 그 이야기가 누구에게, 어떤 순간에, 어떤 도움이나 위로가 될지를 가늠해야 합니다. 머릿속에 예상 독자를 떠올리고, 그들의 언어와 호흡에 맞추어 써야 합니다.

둘째, 진솔함입니다. 교실에서 마주한 아이들의 모습, 제가 느낀 당황과 기쁨, 놀라움과 미안함까지 있는 그대로 담습니다. 화려한 수사나 과장된 사건이 아니라도, 살아 있는 감정이 솔직하게 기록될 때 글은 힘을 얻습니다.

셋째, 관찰과 공감입니다. 사건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안에 깃든 마음을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아이가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나의 말과 행동이 어떤 파문을 만들었는지 헤아리며 씁니다.

넷째, 겸손과 절제입니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도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밀어붙이는 태도는 글에서도 금물입니다. 독자가 듣고 싶어 하는 주제와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맞닿는 지점을 찾아, 필요한 만큼만, 정확한 어조로 전합니다.

저는 그 답을 교실에서 찾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은 너무 소중한 순간들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너무 빨리 흘러갑니다. 그래서 기록합니다. 다시 바라보고 잊지 않기 위해 씁니다. 이때 글은 단지 제 자아실현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아이들을 다시 만나는 창이 됩니다. 독자에게도 “아, 이런 교실이 있구나” 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이야기로 닿을 수 있습니다.

결국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겪은 살아 있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장면 속에서 발견한 의미를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을 때, 글은 비로소 생명을 얻습니다.

여러분은 왜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아마도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일 겁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쓰고 싶으신가요?

그 순간에 담긴 마음을 혼자 간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군가와 나누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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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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