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내일 아침에 A 잠깐 왔다가도 되죠? A가 마지막으로 우리 반 친구들 얼굴을 보고 싶대요.”
갑자기, 우리 반 B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A가 우리 반 친구들이 많이 그리웠던 모양이구나! 선생님도 물론 A가 오면 좋지. 잠깐만 생각해 보고 답을 해줘도 괜찮을까?”
내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B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혹시라도 내가 거절할까 봐 조바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선생님, A가 교실에는 안 들어와도 된대요. 복도에서 친구들만 잠깐 보고 돌아간대요.”
우리 반 친구들을 꼭 만나고 싶어 하는 A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전학을 앞두고 새로운 만남에 대한 부담이 커질수록, 익숙했던 친구들과의 만남이 더 그리워졌던 것은 아닐까? A의 마음을 생각하니 짠했다.
A는 지난 1학기를 마치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우리 반 학생이었다. 2학기부터는 다른 학교로 등교를 해야 했지만, 공교롭게도 그 학교가 우리 학교에 비해 개학을 며칠 늦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A가 우리 학교에 갑자기 오겠다고 한 것이다. 내가 잠시 망설였던 이유는 현재 A가 어느 학교 소속인지가 헷갈렸기 때문이었다.
‘코로나19로 민감한 시기에 다른 학교 소속인 A가 우리 반에 방문했다가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지? 전적으로 내가 다 책임져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A는 아직 우리 학교 소속인 듯했다. 멀리 이사를 가서, 현재 우리 학교로 등교를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생각이 정리가 되어, B에게 얼른 대답을 했다.
“A에게 내일 학교에 와도 된다고 이야기해주렴. A가 온다고 하니, 선생님도 참 반갑고 좋다!”
다음 날, A가 쭈뼛대며 교실에 들어왔다. 지난 학기에 정식으로 작별 인사까지 했는데 다시 등교를 하려니 마음이 불편한 듯 보였다. 그러나 친구들이 자신의 주변으로 모여들자, 금세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해맑은 모습으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A의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아직 친구들과 못다 한 말이 남아있었을까? 1교시 시작 전 A가 나에게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1교시도 하고 가도 되나요?”
“당연히 되지. 수업도 다 듣고, 점심도 먹고 가도 돼."
“1교시 체육만 같이 하고 바로 집에 갈게요.”
“그래, 네가 편한 대로 하렴.”
친구들 틈에서 밝은 모습으로 함께 체육 활동을 하는 A의 모습을 보니, 나도 뿌듯했다. 그런데 A가 1교시를 마치고도 집에 갈 채비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A가 쭈뼛대며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그냥 오늘 수업 다 받고 갈게요.”
그렇게 A는 교실에 남아서 나머지 수업도 다 듣고, 점심까지 맛있게 먹었다. 하교할 시간이 다가오자, 그의 얼굴에 서운한 표정이 드러났다.
“A야.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니까 좋았어?”
“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친구들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서운해요.”
A의 말투에서 진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더 이상 못 만난다니. 주말이나 방학 때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야. 기회가 된다면 또 학교로 놀러 와도 좋고."
내일부터 새로운 학교로 가야 하기 때문이었을까? 어깨가 축 처져있는 A를 보니 안타까웠다. 마음을 담아 한마디 덧붙였다.
"선생님은 네가 새로운 학교에 가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 분명히 새로운 친구들도 네가 가진 매력들을 알아볼 거야. 힘내!”
“선생님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봬요.”
A가 인사를 하고 돌아가자 나도 한동안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매년, 학생들과 정이 들만하면 제자들이 떠나갔고, 학생들을 떠나보내면 오래도록 마음이 허전했다. 그래서 한때는 학생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한 적도 있었다. 내가 마음을 많이 줄수록, 그만큼 마음에 허전함도 컸기 때문이다. 마음을 주지 않으니 상처 받을 일도 없었지만, 아이들에게도 내게도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후로는 헤어짐을 생각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마음을 쏟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저 하루를 학생들과 충실하게 보내고, 또 주어진 시간 동안 조건 없이 마음을 내어 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문득, 본인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부모님의 사정상 갑자기 새로운 지역, 새로운 학교로 떠나게 된 A가 가엾게 느껴졌다. 그래도 새로운 출발을 하는 A에게, 특별했던 오늘이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우리에게 지극히 평범한 하루가 누군가에겐 특별한 날이 될 수 있다. 평범함 속에 감춰진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 삶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 특별한 날을 떠올리며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최선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