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에서 여성노숙인 시설로 옮기다
어찌 되었든 일단 치료도 못하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멍들고 찢기어져서 대학병원에서 나온 뒤 정형외과에 입원을 하고 나서 치료를 받았다. 물리치료도 받고 일단 그 소굴에서 나왔다는 안도감에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녁에는 그 동네 병원 입원실에서 자는 것이 불안하여 근처 아는 친구 집에 와서 자기로 결정을 했다. 병원이 개방적이고 직원은 있지만 숙직은 형식적인 순회 정도이고 아무나 들락거리는 게 불안해서였다.
순미는 이렇게 나와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몸은 나와 있어도 머릿속은 전남편 송현진의 생각으로 꽉 차있었다. 그리고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실 세상에 미제사건으로 끝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죽이든 밀어버리든 방법은 쉬워. 그냥 대형 트레일러로 슬쩍 차 뒤를 밀어버리면 누가 밀었는지도 모르고 뉴스에 나오지도 않아. 번호표를 바꾸어 운전을 한다든가,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지 알아서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애들 아빠가 학교 끝나고 데리러 올 거 아냐?"
송현진은 그녀에게 자신을 배신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에 대해 은밀하게 표현해 주는 식이었다. 상상만으로도 드라마라든가, 영화에서 본 스릴러 물이나 공포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이야기 만으로도 순미는 끔찍하였다. 하지만 그 끔찍하다는 상상의 세계로 빠지면 아무 행동도 생각도 못하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이었다.
'저런 사람이 인간인가...' 싶었다. 어쩌면 저리도 잔인한지. 본인도 자식이 있으면서 어찌 그래도 부부라고 살면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지 도무지 순미로서는 이해를 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송현진에 대한 혐오감은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잘 못하다가는 애들이 희생되기 때문에 조용히 사는 게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생각하고 견디어 왔었지만 폭력은 이미 습관처럼 되어버려 분노거리가 생기고 때릴 이유가 생기면 어떤 상황에서든 손을 대는 것이 이미 버릇이었다.
사실 이혼은 6개월 전에 폭력으로 집을 나와 순미가 가지고 있었던 승용차를 팔아 변호사에게 돈을 지불하고 이혼 신청 후 쉼터에 들어온 것이었다. 숨어 있으면서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이 필요한 것을 보내 달라고 하면 이메일로 보내주고, 또 필요한 서류를 떼어 달라고 하면 쉼터 동료들과 양산을 쓰거나, 모자를 쓰고, 때론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와 일을 보았다. 이혼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날 무렵 생활비도 없고 앞길이 막막하기 때문에 그녀는 마주칠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그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서울에 있는 쉼터로 안내를 받고 그곳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곳 역시 여성들과 어린애들이 있었으나 규모는 작았다. 방에 들어와 그녀를 둘러싸고 왜 들어왔는지 묻기도 하는 신고식 과정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곳 역시 1주일 만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정폭력쉼터는 보통 1366이라고 하는 곳과 연계되어 있는 시설인데 무조건 안전과 보호기능이 있는 곳이라 외출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그녀는 돈이 필요해서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에 왔는데 3개월 동안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하니 다시 그곳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자신의 신세가 이렇게 되었는지 앞이 막막하고 돈 한 푼 모아놓은 것도 없이 때리는 남자와 사는 6년 반동안 철저히 생선 가시처럼 자신이 발리워지게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되었나 뒤 돌아보았다.
교도소에서 3년 만에 출소한 사람을 만났으니 돈이 있을 수가 없었다. 명함에 있는 그 '이사'라는 것과 직장에 다닌다는 것, 시골에 노모가 홀로 사는 것을 본 게 다였다.
순미는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여자였다. 하루에 백번 뽀뽀해 주겠다는 그 말에 넘어간 어린애 같은 여자였다. 간섭하는 시누이들이 없고, 자기 어머니만 바라보는 그런 남자가 아닌, 모와 분리되어 독립 적인 삶을 사는 남자라는 것이 그를 선택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후회를 해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짐을 챙겨 사무실에 가서 상담을 하니 서울에 있는 여성부랑인 시설을 알려 주었다. 전화를 하고 나서 그곳을 찾아갔다.
그곳은 약 40여 명이 생활하고 있는 종교재단의 여성 부랑인 시설이었다. 철제 대문이었다. 서류를 쓰고 방을 배정받았다. 2층이었다. 그 방은 1방에 4명 생활하고 있었다.
그곳도 텃세가 있다. 먼저 온사람이 가장자리에 자고, 나중 들어온 사람은 가운데 잔다. 겨우 요 하나 깔 수 있는 게 자기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집이라고 들어와서 숙식을 해결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마음먹었다. '지금은 국가의 수혜자이지만 나중에는 남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그런 사람이 꼭 될 거야!'하고 마음먹었다. 전에 있었던 쉼터에서의 가정적인 것과 달리 이곳은 매우 개인적인 곳이었다.
한방에 있는 사람끼리 겨우 말을 트고 이야기할 정도였고, 늦게 오면 밥을 굶던지 나가서 사 먹어야 했다. 하지만 사 먹을 돈도 없다. 생활하면서 썼던 카드요금이 제일 부담이었고. 간신히 휴대폰 요금과 교통비를 쓸 정도이고 신용불량자 전단계였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지만, 그 사람도 숨겨서 방에 갖고 들어오는데 걸리면 절대 안 되는 규칙이라서 식사 시간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