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피해자의 행동패턴
피투성이 그녀는 46세의 이름은 김순미였다. 그녀는 사실 철이 없었고, 너무 순진하여 쉽게 생각하고 겁이 없었다.
그녀의 배우자 송현진과의 만남은 그가 교도소 출소 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현진의 친구네 집에 갔다가 우연히 건너편 가게 셔터를 내리고 있던 순미를 지켜보게 되었고, 늘 혼자 셔터 문을 닫는 그녀를 지켜본 뒤, 혼자 내리는 것을 보면서 어려울 때 도움을 주며 접근하였다.
사실 순미는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이해해 주고 힘든 일은 말하지 않아도 남자가 해주고, 또 속마음을 표현하는 남자를 원하였다. 송현진은 순미에게 그렇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도와주며, 강인하게 살아남은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자수성가했다고 말하는 그가 대단해 보였다.
그녀에게 배우자의 학력은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았고, 자상하고 든든하고 도와 달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도움을 주는 남자가 멋있어 보였다. 자신이 만든 이상적 배우자상은 그녀의 아버지와 많이 닮아 있는 남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그 위선은 서서히 벗겨졌다. 손현진이 보기에 전남편이 싫다면서 그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순미의 행동과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위선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두 딸에게 모성애가 있어 좋은 엄마로 보여서 내 딸아이도 잘 길러주리라 믿는다는 첫 마음은 사탕발림이고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그녀의 애들은 남의 자식이라 백날 자신의 인생에서 돈만 없애고 발목을 붙잡는 걸림돌이라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눈에 가시 같던 그 애들과 함께 산다는 건 너무 비극이고 암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순미의 큰딸은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
순미보다 3년 연하였던 그는 순미의 큰딸을 자기 자식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에 자식을 둔 남자가 되어버린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아이 둘을 잘 양육하고 싶었던 순미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일은 1년이 조금 지날 무렵이었다. 아이 둘을 애들 아빠에게 보내라는 것이었다. 순미로써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고 자식과의 이별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제안을 거부하고 따지면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고 트집을 잡고, 분위기를 무섭게 몰아가다가 결국은 순미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서 입술은 찢어지고, 종일 나가지 않고 술이 깨어 컨디션이 회복될 때까지 집에서 쉬며 말을 하지 않았다.
생각하면 초등학교 4학년 딸 하나였던 그로서는 자기 애보다 4살과 2살 위로 중학교 다니는 두 딸의 아빠로 살아야 하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사실 그는 폭력전과로 3년 2개월 출소 후 고향에서 아는 동생이 운영하던 사무실이 있는데 명함도 일자리도 필요해서 그들에게 부탁해서 만든 직장이었다. 그는 조경 일거리를 따서 주겠다고 하면서 '이사'라는 직함을 얻고, 직장 의료보험도 가입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갈 곳이 없었다. 사실 순미는 도망쳐서 나오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냥 경찰서에 뛰어 들어와서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하고 나서 조사를 받고 또 경찰은 순미에게 어디로 데려다 줄지를 물어봤다. 순미는 자신도 몰래 송현진의 누나가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경찰들은 김순미를 태워 송현진의 누나네 집 앞에 태워다 줬다. 홀로 가슴을 진정할 겨를도 없이 아파트에 가봤지만 누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얼굴을 숙이고 정신없이 거기서 나와 근처 정형외과에 갔다.
전날 저녁 숟가락이 날아와 막았던 찢기어진 손바닥은 마치 계란찜처럼 부풀어 올라있고 쓰라렸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띌지 몰라 불안해하면서 송현진의 누나를 안 만난 게 다행인지 아닌지 정신이 혼미했다. 그녀의 손에는 들고 나온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이른 아침에 갑자기 나온 바람에 그 흔한 손가방도 없었다. 가진 거라곤 그냥 입고 나온 바지와 티셔츠가 다인 맨 몸이었다.
그리고 근처 정형외과에 가서 손을 보여 줬지만 손을 댈 수가 없다고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하였다. 염증이 생기면 위험하고 부위가 너무 넓다고 하였다. 10원짜리 동전 한 잎도 없는 그녀는 병원 직원에게 3천 원을 빌려 줄 수 있겠냐고 하자 그 병원 직원은 천 원짜리 3장을 주었다. 그 돈은 공중전화를 걸기 위한 돈이었다. 대중교통을 탈 수 없어 다시 112 경찰을 불렀다. 그리고 경찰차는 대학병원 앞에서 내려주고 갔다.
그러고 나서 처음 전화를 건 곳은 송현진의 시골 고향집이었다. 그 집에 사는 어머니는 따뜻했기 때문에 사실을 말하고 인사드리려고 생각했다. 자신도 몰래 길들여져 있던 배우자에 대한 무서움과 폭력에 길들여진 순미의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전화는 연결되지 않아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시 연결되지 않고 나올 수 있었다.
그 뒤에 순미는 같은 지역에 사는 친정어머니에게 연락을 하였고 가족들은 놀라 대학병원으로 왔다. 그동안 혼자 눈물을 닦으며 순미는 여의사와 진료를 하고 있었다. 그 여의사는 가정폭력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증거를 수집하며 여러 군데 맞은 곳을 사진 찍어 두었다. 종합병원이라서 여러과를 진료하였다. 두 눈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시력이 안 좋아질 수도 있다고 하였다. 이마는 부풀어 있었고 손은 계란처럼 찢기 운 채 부어 있었다.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밖은 행동이라는 것을 순미도 알았다. 가족들은 1년 전에 송현진과 이혼을 시작하기 위해 쉼터에 갔을 때처럼 멀리 가서 숨지 말고 이제는 가족들 곁에 있어야 한다고 하며 안타까워하였다. 그녀의 삶 속에는 잊히지 않는 역사적인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